운명 불평등에 관하여
한비광이 죽었으면 좋겠다. 특별히 그가 싫은 것은 아니다. 손오공도 자신의 맞수가 없어 허무 속에서 시들어 가길 바라고, 강백호도 부상에서 회복되지 못한 채 양아치로 전락하길 바란다. 운명에 맞서서 목숨을 거는 그들의 당당함이 어이없다. 정해진 해피엔딩으로 갈 거면서 호들갑이다.
어렸을 때는 주인공만 응원했다. 내가 삶의 주인공이라고 착각하던 시절이었다. 나이를 먹어 가며 내 삶에서 내 권한이라고는 후라이드와 양념 사이의 소소한 선택뿐이라는 사실을 체감했다. 그나마도 서른이 넘어 획득한 선택지지 그 전에는 500원, 1000원 때문에 대체로 후라이드였다. 휴일에 아무 것도 하지 않을 자유, 감정에 충실한 진상을 팩트로 조져버릴 자유, 직장을 그만 둘 자유 같은 건 내게 없었다. 무엇보다도 주인공들이라면 응당 지녀야 할 투철한 사명감, 미친 재능, 목숨을 건 노력들도 나와 무관했다.
[열혈강호]는 2021년 2월 1일에 600회가 연재되었다. 월 2회 연재되므로 25년치였다. 16일 601회가 휴재되었듯 작가 사정으로 휴재가 끼어서 실재 연재 기간은 27년이었다. 내가 중학생 때 연재되기 시작했지만 나는 1~2년 후에야 접하기 시작했다. 당시 큰 형 같았던 한비광은 이제 갓 전역한 늦둥이 동생 같아져서 용돈이라도 쥐어 주고 싶고, 천마신군(天摩神君)도 될 수 있을 것 같았던 26년 전 중학생은 천마신군의 부하 흑풍회235는커녕 산적 하두보일도 금태관만 못한 중년이 되어버렸다. 한비광의 무공과 작가의 작화력이 성장하는 동안 나는 체중이 거의 두 배로 늘었다.
나는 어린 천마신군과 중년의 금태관 사이에서 600개의 일화를 건져낼 자신 없다. 소설가가 되겠다고 깝죽댔기 때문이다. 체증에 걸린 글자를 쌓아 나가던 내 시간을 아무도 읽어주지 않았다. 내 인생은 존재한 적 없는 시간이 되어버렸다. 내가 손에 쥔 펜은 꿈이라는 이름의 화룡도(火龍刀)였던 셈이다. 화룡도는 주인이 아닌 자가 자신을 만지면 그를 태워버리듯 내 화룡도는 내 인생을 태워버렸다. 꿈이 머물기에 나는 무능했다. 어린 천마신군에게 지금 내 모습을 예언했다면, 믿지 않았거나 자살했을 것이다. 나는 이런 내가 되고 싶은 적 없었다. 주인공의 자질도 없는 주제에 화룡도를 20년 가까이 손에 쥔 죄로, 남은 생은 꿈이 불타고 남은 찌꺼기의 시간을 버텨가야 한다.
연재를 따라 갈 때는 한비광에게 몰입했다. 그러나 정주행을 반복할수록 한비광은 ‘운명의 금수저’처럼 보여 몰입이 깨졌다. 그는 목숨을 걸어도 결코 죽지 않았다. 주인공이므로 승리가 보장된 싸움만 한 셈이었다. 그의 위풍당당함은 조금만 삐끗해도 밥그릇이 날아갈 ‘운명의 흙수저’에게 자신처럼 목숨 걸고 싸우라며 요구해오는 듯했다. 재벌 2, 3세들이 칠전팔기 성공기를 과시하는 모습이 얼마나 역겹고 허탈했는데, 그걸 만화 속에서 또 확인하는 것이었다. 한비광이 성장할수록 나는 조롱당하는 기분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자기 여자에 목숨을 걸고, 무례해 보이지만 속정 깊고, 천부적인 재능으로 고속 성장하는 한비광은 『슬램덩크』의 강백호와 다를 게 뭐냐며 비아냥대는 정도였다.
나는 거듭된 낙방에 우울했고, 학원에서는 진상과 원장 앞에서 웃으며 잘릴까봐 전전긍긍했다. 그렇게 살아온 것이 나인가? 괴개 같은 자문을 하고, 괴개 같은 후회를 했지만 운명의 흙수저들은 어쩔 수 없었다. 천마신군에게 패하고 괴개가 무림을 떠나 살았듯, 나는 운명과 싸우기도 전에 패하여 내가 아닌 직함으로 살았다. 직함 안쪽은 비루하되 안전했다. 내 인생이 아니라 내 월급의 인생이 나를 거쳐지나간다는 자조가 일상을 지배했다. 거침없는 주인공들이 미웠다.
나는 초저가형 신공이었다. 천하오절로 불릴 만한 재능을 펼쳐 보인 적도 없으면서 열등감에 찌든 고약한 아저씨다. 신공은 자신을 부정한 무림에 복수하기 위해 신지 편에 붙었지만, 내게는 나 따위를 받아줄 신지조차 없다. 내가 가장 잘하는 것은 하루 한 번 똥 누는 것이다. 화장실에 들어가 응차, 한 번이면 끝내는 초고수다. 글똥이 내 똥 같았다면 조그마한 쓸모를 가졌을지 모를 텐데, 읽어주는 이도 없었다. 그런데도 똥만 싸고 있으니, 나는 화장실의 천하제일 똥마신군(-摩神君)이다.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는 진풍백이다. 진풍백을 필명으로 쓸 생각까지 했을 정도다. 진풍백이야말로 거침없는 안하무인의 결정체였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다 죽였다. 술맛을 떨어뜨린 대도문 소문주 일행을 몰살하고, 다음날 혼자서 대도문을 멸문시켰다. 지친 몸으로 또 혼자 송무문에 쳐들어갔다. 한비광이 아니었다면 멸문은 몰라도 괴멸 수준의 타격을 줄 수 있었을 것이다. 이때만 해도 성격 파탄자 같아서 썩 좋아하는 않았다. 그러나 신지에서 백강에게 사제로서 예를 올릴 때, 멋짐이 폭발했다. 진풍백은 사형의 명을 받들어 소형 벽력탄을 혈우환처럼 날려대어 초분혼마인이 날뛰는 전장을 급반전시켰다.
사실 한비광과 진풍백은 같은 종류의 인간이었다. 한비광은 혜화가 살아 있을 때의 진풍백이었고, 진풍백은 담화린이 죽은 후의 한비광이었다. 살생 여부는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자기 마음의 불을 켜주는 연인의 유무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래서 거침없는 두 캐릭터의 윤리관과 상관없이 그들에 대한 내 태도는 달라진 것이다. 진풍백은 마음의 불이 꺼진 나와 같은 삐딱 종자였다. 다행히 나는 싸움을 못해 사회화에 충실했다.
진풍백은 늘 스스로를 사선으로 몰아붙였다. 그는 주인공이 아니어서 작가가 언제든 죽일 수 있기에 그의 행보는 조마조마했다. 천음구절맥이어서 누구와 싸우다가 죽어도 이상할 것 없었다. 사음민이 마령검으로 베는 것도 자연스러웠고, 매유진이 활을 쏘아 죽이거나 묵령이 찢어 죽여도 개연성에 어긋날 것 없었다. 불확실성 속으로 직진하는 모습은 무기력 속에 열등감과 혐오를 품은 내게 고고하고 서늘한 울림을 주었다.
똥마신군에게 필요한 것은 차라리 진풍백의 무모함이었다. 이 나이쯤 되면 용기까지는 몰라도 겁에는 무뎌질 듯한데, 내 겁은 조금도 닳지 않았다. 다시 꿈을 꾸지 않는 것도 겁나서고, 연애 시장에 몸을 던지지 않는 것도 겁나서고, 내 일을 키우지 못하는 것도 겁나서다. 결국 또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이런 글로 자해성사 하는 것은 비겁해서다. 진풍백이 혈우환을 쓰기에도 한심해서 살려준 엑스트라38이 있다면 내 인생과 많이 닮았을 것이다.
열혈강호가 완결 난 후 다시 읽을 때 진풍백을 좋아할 수 있을까? 어쩌면 동령의 미고가 천음구절맥을 치료해줄 수도 있을 것이고, 끝까지 살아남는다면, 더군다나 매유진과의 러브라인이 결실을 거둔다면, 진풍백 역시 정해진 해피엔딩으로 돌격하는 한비광과 다를 게 없어진다. 그래서 좋아할 수 있을 때 열심히 좋아해두려 한다.
좋아하는 것을 모방하는 것은 본능이다. 청소시간에 빗자루를 휘두르며 내게 ‘천녀유혼’과 ‘잠룡등천’을 날려대던 녀석이 있었다. 나는 ‘광룡강천’과 ‘천마대멸겁’으로 대응했다. 누구든 실수로라도 넘어지면 옆에서 지켜보던 녀석들까지 가세한 ‘천마군황보’를 받아내야 했다. 도시락 반찬을 빼앗아 먹을 때는 굳이 ‘천마흡기공’이라고 외쳤다.
거의 25년여 만에, 이번에는 ‘혈우만건곤(血雨滿乾坤)’을 흉내 내려 한다. 혈우만건곤은 혈우환(血雨丸)을 사방에 흩뿌려 타격을 주는 진풍백의 기술이다. 진풍백은 신물인 화룡도 없이 혈우환이라는 시그니처 무기로 싸웠다. 나는 화룡도를 버리고 브런치를 열었다. 이 글은 모자란 대로의 내 혈우환이다. 독자에게 적중하는 것은 내 내공에 달려있다. 뻔뻔하게 쓰다 보면 나의 신지(新地)가 열리든가 말든가. 안 열리면 어쩔 수 없고. 그래도 화룡도를 쥐고 있던 시간이 헛되지 않기를. 시작한 이상 뭐가 됐든 내 인생이라는 단행본이 조금은 더 두꺼워질 수 있기를.
오늘도 40대가 독자 없이 덤덤히 연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