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은 멈춰 있었고, 나는 달렸다. 페달에 온 힘을 실어도 속력이 나지 않았다. 알고 있던 역풍이 불어 왔다. 매년 봄, 이 시간 강가의 계절풍이었다. 계절을 거스르는 퇴근길은 체중보다 무거웠다. 출근길은 순풍을 탔으나 출근 자체가 무거웠으니 이 길은 늘 버거웠다. 삶은 온통 되알져야 순류인가, 궁시렁댈 나이는 지났다. 해야 할 것에 순응하는 자포자기의 윤리만 받아들이면 무려, 별일 없이 살 수 있었다. 그러나 그날, 두 봄 처녀 때문에 계절에 머물지 못한 죄책감이 역류해 들어왔다.
‘봄 처녀’가 불편하다면 ‘봄 총각’으로 각색해 읽어도 좋다. 남성인 내게, 새 풀옷 차려 입은 20대 초 여성의 생물학적 아우라는 멀리서도 압도적 꽃이었다. 생물학적 절정, 혹은 절정 직전의 여성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봄은 한없이 싱그러웠다. 그들은 개나리를 배경으로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있었다. 들리지 않아도 들리는 듯한 그들의 웃음이 세상을 사방으로 킁킁대는 강아지들처럼 올망졸망 뒤엉켰다. 그들은 개나리 앞에서도 감히, 겨울을 뚫고 나오는 더 짙은 봄빛이었다. 정작 당사자는 자신이 봄인지 모를 때였다.
전력으로 질주하나 풍압에 막혔으므로 풍경이 천천히 닥쳐오되 온난화 때문에 예년보다 이르게 닥쳐왔다. 금호강변은 강둑 아래로 개나리가 노란 선으로 뻗어 있었고, 강둑 위에는 벚나무가 다음을 대기 중이었다. 매년 봐 왔던 풍경이 지긋지긋하지는 않았다. 매서웠던 계절 끝에 잇대지는 온기를 느끼면, 어미젖을 찾아 꼬물거리는 강아지의 기분을 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내가? 괜찮아도 괜찮다고? 그러면, 내가 그동안 괜찮지 않았나? 시간이 딸꾹질이라도 한 듯했다.
자전거를 멈춰 세웠다. 개나리 앞에서 너덧 살 된 딸아이 사진을 찍는 엄마와 개나리를 멀뚱히 바라보는 할머니 무리와 돗자리를 펴고 봄볕을 쬐는 사람들을 지나쳐 온 사실을 상기했다. 그들은 봄을 했고, 나는 봄을 하지 않았다. 본의 아니라고 하기에는 내가 달리던 속력과 내가 달려야 할 직선은 지나치게 속력이었다. 봄은 속력 바깥에 있었다. 나는 요일은 알되 날짜는 모르는 것처럼 기온 변화는 알되 계절을 몰랐다. 목련, 개나리가 순서대로 피는 것을 목격하고, 벚꽃이 갓 씻은 머리의 샴푸 향처럼 끝없이 흩날릴 걸 예상하면서도 봄은 롱패딩을 세탁소에 맡겨야 하는 숙제로 성가셨다.
무심코 내뱉은 ‘봄을 한다’를 주워들었다. 개나리를 배경으로 자전거를 찍는 척, 두 봄 처녀를 인물이 특정되지 않을 작은 배경으로 담으며 꾸깃꾸깃한 생각을 폈다. - 존재는 동사로만 실존한다. 봄은 겨울과 여름 사이의 3-5월의 포근한 기온이 아니라 무언가를 하는 당신들에게만 (온난화로 인한) 찰나였다. 봄을 하지 않는 나는 봄에 뚫린 구멍이었다. 구멍으로 새는 것은 봄이 아니라 나였다. 무화(武火) 해야 할 시절이 마냥 무화(無化)되고 있었다. 매년, 봄은 정의되되 의미된 적 없이 아지랑이처럼 사위었다.
내년을 기약해 왔다. 기약의 기척은 연약했다. 고약하고 나약한 나태주의는 아프지만 다시 봄, 그래도 다시 시작하는 거야라고 매년 꾀병을 닮은 합리화를 결의할 뿐, 미약한 도약도 없이 계절은 온난화를 핑계로 비약했다. 내 봄 산수화(山水畵) 속 산수화(山茱花)가 또 갈 봄 여름 없이 지고 말 것은 명약관화했다. 다시 먼 길 떠나보내지만 어떠한 경우에도 내가 내 편이 아님을 묵약하며 삐약삐약, 노계가 아닌 척했다. 무엇을 위한 고육지계인지 모른 채 봄은 오리무중이었다. 나는 또 내게 오리발을 내밀었다. 내년에는 제주도라도 가자.
코로나 팬데믹이 끝나버린 이상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시험 기간에 휴강할 테니 4월 말 무렵이면 시간도 났다. 그러나 역시, 귀찮았다. 아니, 바빴다. 자기 손으로 밥 벌어 먹는 사람 중에 시간은 많은 편이지만 늘 쫓겼다. 전업 작가도 아닌 주제에 ‘친절-손’, ‘여백-경향성’, ‘자전거’, ‘관계의 물리학’, ‘적정 식사비용’, ‘연애 불능 인간(2)’, ‘새우깡’에 압박당했다. 이 중 몇 개가 글로 소화될지 모르는 불확실성이 의무감에 무게를 더했다. 써야 할 것들이 없어도 초조했고, 요즘처럼 밀려도 초조했다. 제주도행에 내가 따지는 것은 단 하나다. 몇 편의 글감을 얻어낼 것인가.
내가 달려온 길에서 달려갈 길로 눈을 훑었다. 올해는 작년과 달랐다. 내 일상에 강마에, 이도, 김신, 장그레, 토니 스타크가 사라졌다. 내 방 안의 공기 같던 [무한도전]까지 끊었다. 과거에 침식당하지 않은 현재가 온전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침투해 들어오는 미래에 무방비로 당했다. 3월 초에 브런치 today pick에 [늙은 자취생의 식문화3]이 잠깐 이름이 오르자, 맛이 가버렸다. 행운은 지나치게 달달했다. 또, 속아주기로 했다. 수업을 줄이기 위해 이 퇴근길은 이번 학기가 마지막이기로 했다. 이가 썩듯, 현재가 썩어갈 것이 자명했지만, ‘현재란 의무감의 넝마’가 떠올라 빙긋 웃었다. 봄이 간다는 아쉬움보다 ‘봄이 간다’는 글감 하나 건진 흥분이 더 컸다. 물론, 글을 쓰고 나면 가버린 봄이 허기지겠지만, 당장은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과 한용운의 ‘님의 침묵’을 섞으면 되겠다는 아이디어가 배불렀다.
그래서 나는 괜찮은가? 그럴 리가. [늙은 자취생의 식문화3]는 오래 버티지 못했다. 역시 내 글은 브런치로 먹기 무거운 음식이었다. 기후 붕괴로 짧아진 봄이 언젠가 전설의 계절이 될 것이고, 나는 전설의 기회를 매일 착실하게 잃어가는 중이다. 그러나 별 수 없다. 어차피 한두 번 속은 게 아니다.
‘의무감의 넝마’는 그날 밤 ‘미래의 식민지’로 재정리 되었고, 6일 후 스타벅스 3층에서 초고로 씌었고, 몇 번의 수정을 거쳐 7일 후 공개 되었다. 나는 미래의 식민지인에 불과했다. 현재 입장에서 ‘해야 할 것’은 현재를 위한 것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것이므로 미래 시제였다. 미래는 카르페디엠(carpe diem)을 해충처럼 박멸하려 들었다. 현재의 행복은 미래를 좀 먹을 가능성이 컸다. 이미 쓰고, 쓰고, 쓰며 과거가 되어버린 현재들이 가져온 현재는 고작 무명의 ‘하루오’지만, 식민지 해방을 꿈꾸는 독립군은 본래 무모하다. 그렇게 나를 세뇌한다. 스타벅스 3층에서 계절은 상관없었다. 괜찮지 않음이 역시, 괜찮았다.
다시 자전거에 올랐다. 퇴근길이자 온라인으로의 출근길이었다. 비대면 수업 하나 하고, 뭘 어떻게 쓸지 혼자 깨작대는 아주 보통의 상실을 수행하는 밤에 봄은 성실히 질 것이다. 내 인생도 질 것이다. 누구와 싸웠는지도 모른 채 패배감만 쌓여 간다. 내가 봄을 보내지 아니했다고 변명하지는 않을 것이다. 내 곡절을 이기지 못하는 변명의 노래는 봄의 침묵을 휩싸고 돌 것이다. 왜냐면 식민지인도, 피식민지인도 나니까. 빼앗긴 봄에 글로 된 잡초만으로 우글댄다. 또, 맥수지탄을 쓴다. 봄이 간다, 또.
(하지만 봄을 주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