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에 감흥을 잃었다. 벚꽃은 프로야구 개막과 더불어, 꽃샘추위가 끝날 테니 안심하고 패딩을 세탁소에 맡겨도 된다는 화려한 신호로 전락했다. 꽃잎 하나하나는 소곤소곤했지만 군집한 꽃잎은 관중들의 응원가처럼 시끄러웠다. 나를 향한 응원이 아니었기에 우글대는 화사함은 지나치게 요란했다. 좀비처럼 살아나는 봄노래와 여기저기서 열리는 축제에 흥이 돋을수록 나는 봄 바깥으로 밀려났다. 늘 너희들끼리 봄이었다. 안다. 봄이 나를 따돌린 적 없었다. 내가 봄인 적 없을 뿐이었다. 봄 속에서 봄이 아닌 내게 묻는다. 난 누군가? 그리고,
넌 누구로 살고 있니? - 그 아이를 만난다면 묻고 싶다. 나와 동족이라고 생각했던 2014년의 고3은 그 재능과 무관하게 2022년에 시가총액 5조에 육박하는 기업의 사원이 되었다. 지방사립대 출신의 서울 입성은 지난했을 것이다. 더군다나 졸업 후 전공과 무관한 영역을 공부해서 쟁취한 성과였으니 파우스트적 거래가 동반되었을 가능성이 컸다. 그런데,
네 음악은 무사하니? 너는 고등학생 때부터 기타를 치고, 작곡을 하고, 노래를 불렀다. 싱어송라이터가 꿈이라고 한 걸 들은 기억은 없지만, 그렇게 살아간다면, 그 삶이 꿈이 아닐 이유가 없어 나는 너의 꿈을 싱어송라이터로 단정했다. 내가 주변 사람들에게 내 글 이야기를 하지 않듯, 너도 자기 음악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다만 내가 잠을 잘 못 잔다고 한 날, 자작곡 하나를 보내줬다.
고1 때 작곡했다는 ‘꿈바다’는 내 손바닥에 살포시 내려앉은 단 한 잎의 초속 7cm였다. 느린 기타 반주에 얌전히 읊조리는 목소리는 자신을 주장하지 않고 여백의 가장자리에서 얌전히 소곤소곤했다. 음악 편식이 심해 음악 영화나 뮤지컬, 오페라도 싫어하는 내게 거슬리지 않고 무해한 온기로 다가왔다. 음악은 잘 몰랐지만, 글에서 내가 성과를 거두는 것보다 음악에서 네가 성과를 거두는 시기가 더 빠를 것으로 예상했다. 내가 담을 수 없는 나긋나긋, 토닥토닥 한 가사는 질투도 났다.
내 주변 사람들이 내가 하루오인 것을 모르듯, 나도 너의 다른 이름을 모르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취업을 준비하면서, 대기업 사원으로 사회 초년생을 살면서, 음악 할 여유가 없다고 가정하는 것은 통념적으로 타당할 듯하다. 음악이 없는 그 사람이, 너는 괜찮을까? 나보다 나은 재능이 묻혀도 괜찮은 것이 우려된다. 그렇다고 괜찮지 않으면 네가 괜찮지 않을 테니 그 또한 적절하지 않다.
너 이후에도 많은 재능들이 국영수로 매몰되는 것을 목격했다. 어렸을 때부터 영상을 촬영하고 편집하던 중학생은 IB가 아닌 일반고로 가서 국영수와 씨름했고, 초등학생 때부터 그림을 그리며 유튜브까지 운영하던 중학생은 수학 숙제에 파묻혔다. 둘 다 학부모님의 강압이 아니라 본인의 선택이었다. 반짝이는 적성과 재능들이 평범한 우등생으로 다듬어지는 것을 보면 안타까웠다. 내신과 수능은 토익처럼 쓸모없는 것을 인내하는 성실함을 측정하는 양치기(‘양’으로 ‘쳐’낸다) 잡기술에 불과함을 알지만 대학이 인질이기에 별 수 없었을 것이다. 챗gpt의 시대, 대학의 유효성을 의심하더라도, 이곳은 일단 대한민국이었다.
그렇다고 막무가내로 ‘네 꿈을 펼쳐라.’고 권할 수 없었다. 지금은 486세대, X세대가 살던 성장기가 아니다. X세대인 김범수(카카오), 김택진(NC), 이해진(네이버), 유재석, 박진영(JYP), 방시혁(하이브)은 이미 시대를 선점했다. 88만원 세대 등장으로 ‘헬조선’이 열린 이후 자아실현을 향한 ‘노오오오오오력’의 가치는 재평가 되었다. 유튜브에 새로운 길이 열렸지만 앞선 세대만큼 높이 날 가능성은 희박했다. 노력은 배신하고, 꿈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없으므로 무쏘의 뿔처럼 직진하다가는 나처럼 된다. 나는 운 좋게 무려, 먹고는 살면서도, 열패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자아실현은 자유와 한 번뿐인 인생에 대한 예의로서 명목상 ‘나’의 윤리적 존재 방식이다. 문제는 그 자아는 미래형이라 현재 대부분을 ‘고도를 기다리는 시간’으로 처분되는 데 있다. 미래를 기다리는 시간이 지연되며 내 이름으로 된 서사가 휘발되지만 간간히 고도가 기척을 드러내기 때문에 별 수 없이 무의미를 자처한다. 나는 내 무능함의 증거이자 서사할 게 없는 것을 서사하는 ‘하루오’가 민망하다.
애초에 자아실현이라는 건 문명이 만든 오류가 아니었을까, 그렇게 변명해본다. 인류는 수렵채취 시절부터 수십 만 년 간 생존을 목표로 살아왔다. 농경시대에 접어들어서도 수 천 년 간 계급에 충실했다. 왕의 자식은 왕이 되어야 했고, 양반의 자식은 양반이 되어야 했고, 농민의 자식은 농민이 되어야 했다. ‘입신양명’이 존재했으나 ‘나’가 아니라 ‘가문의 일원’으로 수행된 의무였다. 혹은 인류사에서 입신양명의 시간은 유전자에 새겨지기에 얄팍한 시간이었다. 인류에게는 기대할 미래가 없으므로 카르페디엠(carpe diem)이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인류가 ‘나를 선택할 자유’를 획득한 지 몇 백 년 안 되는 것이다. 자아실현의 서사를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정신문화 발전 속도를 유전자가 따라 가지 못하는 유전자 지체현상이다. 게다가 자아실현은 반(半)사회적이다. 사회적 존재가 아니라 독립적 존재의 ‘나’만 반영된 반쪽짜리 개념인 것이다. 직선의 속도를 닮은 자아실현은 시간의 입체를 설명하지 못한다.
나는 절반을 위한 투쟁 동안 사람과 먹는 끼니가 1년에 20끼 남짓으로 제한될 만큼 도태되었고, 투쟁마저 결국 패배로 정산되었다. ‘인간은 파괴될지언정 패배하지 않는다.’를 냉소하며 ‘나’를 찾겠다며 산티아고 순례길로 떠나는 이들의 패배를 바라는 반(反)사회적 인간이 되었다. 블라디미르의 말처럼 이런 지랄에는 이제 넌더리가 난다. 산티아고에게 영감님의 영광의 순간은 언제냐고 물었을 때, 참다랑어와 사투한 84시간이라거나 참다랑어 뼈를 가져온 지금이라고 말할 수 있었을까? 뿡이다.
그래서 [봄이 간다, 또] 따위를 썼다. 그러다 공터를 지나치다 바닥에 찍힌 자줏빛 점을 보고 문득, ‘봄이 남긴 부스러기’를 읽었다, 자줏빛 야생화는 손톱 길이의 대롱 같은 꽃은 음표 같았다. 버려진 땅, 자갈과 잡초가 듬성듬성한 바닥에 ‘소곤’거림보다 더 작은 소리로 피어 있는 꽃에서 너의 ‘꿈바다’가 떠올랐다. 자줏빛 멜로디로 그곳은 작은 봄바다였다. 꽃이 꿈을 꿀 수 있다면, 누구도 그 꽃과 그곳을 꿈꾸지 않았을 것이었다. 몰래 핀 듯한 그 꽃은 조금 반짝이는 내 동족 같았다. 돌이켜 보면, 공터뿐만 아니라 보도블록 틈이나 공원 화단에 민들레, 제비꽃 외에도 이름을 알 수 없어 잡초로 폄하되는 꽃들이 각자의 모양과 색으로 성실히 생존 신고 중이었다. 사람들의 부주의 맹시 속에서 너희는 매년 작고, 순하고, 담담하게, 그저 있을 뿐인 듯 자기주장을 성실히 완성했을 것이다.
그 하찮지만 성실한 자기주장 사이에 내가 슬쩍 끼어들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벚 꽃잎이 말라비틀어진 봄 부스러기로 만들어진 것 같은 자주색, 노란색, 하얀색 음표가 하늘대는 봄바다와 꿈바다 부스러기 하루오는 제법 잘 어울렸다. 돌이켜 보면 지금보다 더 하찮았던 시절, 현실자아는 이상자아와 잡은 두 손 혹시나 놓칠까봐 깍지 끼고 마주친 두 눈 찡긋할 때도 있었다.
축제가 끝나도 구석구석 봄이었다. 기나길던 꿈바다를 함께 걷고 함께 느끼며 쓴 일기조각, 퍼즐, 다시 맞춰대는 것은 내 잘못이 아니다. 나는 그러했고, 그러하고, 그럴 것이다. 20년 넘게 꾸준히 실패 중일 수 있는 것도 이상자아의 시은(施恩)이었다. 실패한 것에는 실패한 것의 서사가 있다. 서사되는 한, 나는 패배하지 않았다. 어쩌면 이상자아야말로 오지 않는 현실자아를 기다리며 무의미를 견디고 있을지도 몰랐다.
안녕, 무의미, 내 오래된 불쌍한 친구. 외로운 것은 오지 않는 현실을 기다리는 이상자아 쪽일 듯했다. 최소한 현실자아는 봄이 내 편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비열하게도 나는 좀 괜찮아졌다. 네가 무엇을 하든 너도 괜찮기를 바란다. 영광? 굴비 같은 건 몰라서 싱겁지만, 비굴하더라도 말하면 그뿐이다. 낮은 자리에 봄이다, 아직. 너의 쓸쓸함에 봄을 나눠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