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결핍중2
저렴하게 구매했다. 따뜻했으니 봄이었고, 봄의 시가는 23,800원이었다. 우리 거래에 손해 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씨앗을 주고 열매를 거뒀으니 내가 더 이익이었다. 기사님이 돌려준 열매 속에는 더 많은 씨앗들이 옹골져 있었다. 나는 파종 준비가 되었다.
“현금은 그냥 가져가 주세요.”
지갑을 잃어버려 신분증과 각종 카드 재발급 수고를 대신하는 ‘멍청 비용’을 치르는 내 산수는 공정했고, 나는 ‘정의로운 나’를 구매할 만큼은 먹고 살았다. 지갑에 현금 3, 4만 원쯤 있었던 것으로 기억했다. 내 윤리의 산수가 보상을 주는 쪽의 오만함으로 왜곡되지 않도록 정중했다. 받는 쪽이 소소한 행운으로 하루가 반짝이길 바랐다.
평일 오전 8시에 버스에서 내렸고, 25분 후에 지갑 분실을 인지했다. 9시에 맞춰 버스 회사에 분실신고 했지만 사실상 포기한 상태였다. 카드는 정지시키고, 신분증 새로 만들 때 쓸 증명사진이라도 서랍 한구석에 무사하길 바랐다. 30분이 지나지 않아 회사 측에서 연락이 왔다. 내가 탔던 버스 기사님이 지갑을 습득했다며 기사님 개인 전화번호를 알려줬다.
“원래 우리 다 하는 일입니다.”
기사님은 더 정중하셨다. 차고지에 들어온 후 빈 버스 안을 통해 분실물을 챙기는 것도 당신의 업무라는 것이었다. 업무는 월급으로 보상받고 있으니 그 외의 대가는 필요 없다는 기사님의 윤리에는 틈이 없었다. 그저 나는 감사하다고 했다.
종착역 컨테이너 사무실 안 낡은 화이트보드에 내 지갑은 ‘저녁에 찾으러 옮’을 달고 안녕했다. 그 안녕함이 얄미웠다. 시(市)를 넘어 오는 동안 계산해 보니, 나는 지갑을 버리는 게 나았다. 지갑을 찾으러 종착역 사무실에 오갈 시간은 신분증과 카드 재발급에 쓸 시간을 넘겼다. 지갑도 15년여 전에 헌혈 기념품으로 받은 거라서 아쉽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며 오후 일정 날린 생각을 하니 짜증이 치밀었다.
지갑 안에 든 현금을 확인하고 보니 아차 싶었다. 머리 깎고, 붕어빵 사 먹으며 현금 썼던 걸 깜빡했다. 누군가의 직업윤리를 21,000원에 매수하려 했다는 사실이 죄송했고, 되찾은 지갑 안에 담긴 건강한 윤리관을 보지 못한 채 시간 손익만 계산하며 투덜대는 내가 부끄러웠다.
감사함, 죄송함, 부끄러움이 복합된 우발적 의무감이 번뜩였다. 기사님의 전화번호를 저장했다. 일회성 관계가 카카오톡에서 영원히 연결되는 것을 극단적으로 싫어하기에 평소라면 없을 일이었다. 카카오톡에서 확인되는 기사님은 마침, 거짓말처럼 그날이 생일이었다. 초코 맛 케이크 기프티콘을 드렸다. 기사님 취향은 아닐지 몰라도, 프로필에 저장된 예닐곱 살 된 여자아이의 취향일 가능성은 높았다. 딸인지 손녀인지 모를 그 아이가 달다면 기사님도 달 것이고, 그 달달함은 기사님의 마땅함에서 나온 당당함이니 한없이 달기를 바랐다. - 기사님의 마땅함에 저는 감사의 마땅함을 전합니다. 덕분에 번거로운 일들을 덜었습니다. 오늘, 마땅해 주셔서 마땅히 감사드립니다.
기사님은 하루가 지나도 수령하지 않으셨다. 배송지를 입력하는 기프티콘 수령 방법을 모르시는 건지, 내 선물이 직업윤리를 모독하는 연장선에서 읽히는 것인지 알 수 없어 나는 다음 톡을 보낼 수 없었다. 그 순간에도 잠깐, 환불될 23,800원의 손익을 계산했다.
하루가 지나고도 오후가 되어서 톡, 봄이었다. 기사님은 수령하시고 고맙다고 답장을 주셨다. 또 톡, 케이크 값에 준하는 커피 기프티콘을 보내주셨다. 내 카톡 프로필에 슬쩍 걸쳐진 그 브랜드였다. 왜 답장이 지체되었는지는 묻지 않았다. 그저, 속수무책으로 감사했다. - 어제 잃은 지갑이 이런 몽글몽글함으로 돌아오다니요. 제가 조금 더 착하게 살아간다면 덕분입니다. 잘 먹겠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다는 섬의 계절, 봄맛이 좋았다. 기사님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아서 요즘은 그 버스를 탈 때마다 모든 기사님에게서 봄을 봤다. 이토록 가성비 좋은 곳을 일회성 관광지로 삼는 것은 손해 보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이사 준비 중이다. 보이지 않는 손의 결론이니 모든 날이 손 없는 날이다. 차근차근, 그 섬에 있고 싶다.
-라고 써서 응모했던 [좋은생각] ‘생활문예대상’에서 떨어졌다. 낙심하지는 않았다. 어중간한 상을 받지 않았으니 [좋은생각] 문체와 어울리지 않아서 내 문체를 밀어붙인 탓이라고 합리화 할 수 있었다. 소재가 좋아서 고집을 부려 봤었다.
언행일치를 미덕으로 여겨도 글에서는 주제를 위해서라면 거리낌 없이 MSG를 치지만, 사연은 모두 사실이었다. 작위적으로 보이는 기사님의 생일도 진짜였다. 더 사실을 말하자면, 저 날은 2023년 2월 1일 수요일, ‘서사결핍증’에 저항한답시고 ‘18끼 연속 국밥 먹기 챌린지’를 나 혼자 진행 중이던 때였다. 그러니까 쓸데없는 짓하다가 벌어진 일이라 서술된 것보다 더 짜증난 상태였었다. 더더 사실을 보태자면 내가 기프티콘을 드린 결정적 이유는 ‘서사’ 하나를 추가함으로써 글감 하나를 건지겠다는 직감 때문이었다. 더더더 사실을 까자면 [좋은생각]에 응모할 때, 상금 받으면 기사님께 우리 사연이 책에 실린 걸 알리며 상금을 얼마나 나눠드리면 좋은 글감이 만들어질지 진지하게 고민했었다.
기사님으로부터 받은 쿠폰은 석 형과 김을 만난 저녁에 썼다. 그리고 기사님에게 말했던 ‘제가 조금 더 착하게 살아간다면 덕분입니다.’는 줄곧 부채감으로 남아 있다가 튀르키예 지진에 102만 원 기부로 청산했다. 100만 원 뒤에 2만 원 꽁다리를 단 이유는 내 월세 반 년어치를 완성하기 위해서였다. 반 년어치 월세의 선행이라면 기사님이 뿌린 씨앗의 과실로서 괜찮은 수율일 듯했다.
나는 [인피니티 워]의 타노스를 동경한다. 내게 ‘측은지심 vs 지구 인구가 줄어야 하는 공리’ 대결은 후자의 승리였다. 코로나 때도 인류 절반쯤 사망하는 것이 환경 재앙으로부터 인류가 살아남는 14,000,605가지 가능성 중 유일한 해답일지 모른다고 여겼다. 물론 엄마를 모시고 팬데믹이 끝날 때까지 고립된 채 생존할 자신감에서 비롯된 이기심임을 깨닫고 철회했지만, 뉴스를 보지 않는 한 숫자로 인지되는 타인의 죽음에는 그다지 감정이 동하지 않았다.
더더더더 사실을 이야기하자면, 그저 ‘18끼 연속 국밥을 먹어봤다.’는 말을 갖고 싶었듯, ‘반 년어치 월세를 기부했다.’는 말을 갖고 싶었다. 더더더더더 사실을 이야기하자면, 두어 달 후 엄마 침대 사 드리려고 알아보면서 몇 십 만 원 때문에 상품들을 비교할 때, 102만 원이 아쉬웠었다. 하지만 나는 지켰다, 당신과의 약속. 당신에게 말한 ‘살아가다’는 지속적인 행위지만, 내 깜냥에서 이만 하면 상당 기간 선행을 일시불로 치른 셈은 된다.
돈을 더 벌고 싶다. 경제적 여유로, 밑천이 얄팍한 도덕성을 간단하게 가리고 싶다. 인간은 결국 타인의 욕망을 구매하고, 도덕성은 다수가 욕망하는 명품이다. 물질적 쾌락은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효용성이 떨어지지만 도덕성은 인격 그 자체여서 가성비가 크다. SNS 덕분에 구매력을 과시할 수 있으니 더없이 좋은 수단이다. 돈 쓰기 좋은 시대다. 그러니 눌러 주시라,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