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포티(young -forty)의 조건

by 하루오

10년만 젊었어도. 기어이, 나도 이 말을 하고 말았다. 덕분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전화번호 물어볼 넉살은 막 생기기 시작했지만, 주름살과 뱃살은 이미 본격적이었다. 영포티(Young-Forty)는 관리 받는 연예인들의 세계였다. 선크림 없이 스킨으로만 버틴 내 피부는 노티 났다. 상의를 탈의하면 흘러내리기 시작한 생물학적 완성도가 적나라해졌다. 나는 ‘자기가 젊은지 알고 20대에게 껄떡대는 40대’는 아니고 싶었다.


“대학생처럼 입고 다니네?”

40대 중후반의 진짜 영포티에게서 종종 들었다. 젊게 보이려는 노력을 추궁하는 것 같아서 억울했다. 나이가 요구하는 의례를 성실히 수행한 당신들과 달리, 나는 그 나이에 멈춰 있을 뿐이었다. 스웨이드 재질의 자줏빛 스니커즈를 신고, 검정색 청바지, 회색 후드티에 빈티지 청자켓을 걸치고 있었다. 사람이라도 만나니 청바지라도 입었지 평소에는 검정색 추리닝 세트에 흰색 크록스를 끌고 다녔다. 공부방을 얻은 이후로는 구두를 끊었고, 요즘은 셔츠와 슬랙스 차림마저 줄이는 추세다. 예쁘게 봐 주면 청년 피터팬이지만, 그건 내 생각일 뿐이다.


나이는 시간으로 먹는 게 아니라 경험으로 먹는다. 고3이었던 학생이 대학을 졸업하고 엄마 차를 끌고 왔을 때, 나는 그 학생이 누나 같았다. 옷도 ‘오피스, 오피스’ 해서 마음속으론 좀 당황했다. - 저 누나가 나를 선생님이라 부르다니?


나이에 기대하는 수행은 그 나이가 보편적으로 현상해낸 상(狀)를 따른다. 시간은 직선으로 흐를지 모르나 나이는 마디가 있어 단계적으로 돌파된다. 마디는 출생, 진학, 취업, 결혼, 출산 등으로 현상된다. 나는 15년 넘게 버스나 지하철, 그리고 두 다리로 강의실-도서관-내 방만 오갈 뿐 마디를 만들지 못했다. 내게는 운전도 넘지 못한 하나의 마디였다.


나를 떠난 학생들이 선생이랍시고 나를 기억하고 찾아주는 건 고맙되 난감했다. 학생은 교실의 담화를 기억하며 내게 선생을 요청하겠지만, 수업 내용이 없으면 나는 선생이 아니었다. 선생이 아닌 모든 나를 모은 후 하루오를 세금처럼 떼고 나면, 할 말이 몇 안 되었다. 단, 취준생과 비정규정직의 불안에 대해서라면 할 말이 있었기에 ‘누나’에게는 먼저 살아본 선배를 수행했었다.


30대는 연애, 결혼, 출산이 집약될 수 있는 나이다. 이 의례를 ‘정상적’으로 통과한 김과 송을 보면, 우리는 종(種)이 달라진 것처럼 생활양식이 달라졌다. 특히 송은 같은 고시원에 살며 함께 도서관을 다니던 사이였다. 송은 떠나고 나는 남았다. 고시원이 원룸이 되고, 도서관이 스타벅스가 되었으나 서식지를 대하는 생태적 습성은 동일했다. 200X년 12월이 길었다. 31일 다음에 32일, 33일, 5,110일……이 잇대졌다. 쓰다 보면 뭐든 될지 알았지만, ‘1만 시간의 법칙’만 온몸으로 논파했다.


마지막 여자 친구는 26살이었다. 이제는 그 친구보다 10살 더 많은 사람을 만나도 감지덕지해야 하고, 조만간 20살 더 많은 사람과 짝을 맞춰야 공정함을 알지만, 영점조절이 되지 않았다. 연애 상대를 26살에서 36살로 건너뛰는 것도 쉽지 않은데, 46살로 건너뛰는 것은 현실감이 없었다. 하지만 연애 시장에서 내 몸의 사용가치는 딱 그 정도였다. 연애보다는 불륜이 어울릴 나이라고 해도 딱히 반박하고 싶진 않았다.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으면 내 나이 먹는 줄 모른다. 학생들의 얼굴은 바뀌되 나이는 한결같았다. 자아는 고정된 주체가 아니라 타아와 상호작용으로 만들어진 화합물이다. 내게 한결같은 나이들은 내게 한결같은 얼굴을 호명해서 내 자아는 고정되다시피 했다. 혼자 살며 혼자 일하다 보니 나이의 거울이 되어줄 타아가 없었다. 오히려 학부모님들이 어려져 기어이 나보다 어린 분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나는 대학가에 살았다. 익명의 풍경들도 사계절 내내 20대였다가 다음 해에 또 20대였다. 대학생들과 식당, 카페, 마트, 세탁소, 오락실, 코인노래방, 미용실 등 공간을 공유하는 동안 동질성에 전염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몇 달에 한 번쯤 김, 송을 만나면 저 무방비한 아저씨들이 내 나이인가 싶어서 아찔했다. 필라테스 강사 분이나 스타벅스 직원 분 눈에 나는 더 낡게 보일 게 뻔했다. 그러나 다시 일상이 시작되면 잊었다.


그들은 내가 유일하게 접하는 성인 미혼 여성이었다. 우리는 서로 사적 존재가 아니라 공적 존재로서 강사-수강생, 직원-손님의 담화를 수행했다. 이 상호작용에는 개성이 아니라 인격만 관계한다. 이런 역할극에 나이가 개입되지 않는다. 강사와 직원의 인격은 시장 자본주의의 친절을 배태하고, 나는 그것을 개성으로 착각할 나이는 아니다. 내가 치른 비용만큼 친절을 소비할 뿐이다. 안다. 다 안다. 그냥 아쉬운 거다. 해도 되는데 안/못 했던 시절과, 할 수 있는데 하면 안 되는 지금의 격차가 허허로운 거다. 5,000일 넘는 시간이 지긋지긋하다.


내가 20살 때, 40살이 압도적 아저씨, 아줌마였음을 역지사지한다. 결코 오지 않을 세월 같았음을 기억하고 있기에 영포티는 어렵지 않게 뭉개진다. 우리에게 주어진 담화만 충실하며 선을 넘지 않는 일이라면 지금껏 잘해 왔다. 돌이켜 봤을 때서야 그린라이트였던 몇 개를 발견할 만큼 선은 과하게 지켜 왔기에 지금에 이를 수 있었다. 그래서 필라테스를 그만두기로 했다.


여대생 사이에 끼어 있는 아저씨 하나는 같은 수강생일 수 없었다. 레깅스로 감싸진 20대 여성의 생물학은 속수무책의 압도적 개성이었다. 아침에 면도해도 저녁이면 곰돌이존이 푸르스름하게 돋아난 배불뚝이 아저씨는 초라했다. 우리는 어떤 상호작용을 하지 않았지만 내 존재 자체가 민폐임이 의식되었다. 매번 구석에 앉고, 시선도 멀리 뒀다. 이 사태를 실시간으로 전신거울로 목격해야 하니 나는 점점 위축되었다.


영포티의 성립 조건은 단 하나다. 우리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아니므로 ‘생물학적으로 폐기되었다.’는 것을 잊지 않을 것. 비용을 지불하지 않으면 누군가의 가짜 친절조차 받지 못할 나이라는 것만 명심하면, 무관심 속에서 존재할 수 있다. 몸에 매달린 성(性)은 유통기한 지난 20대의 흔적기관일 뿐이다. 알량한 사용가치가 남았을지 모르나, 우리는 시장 자본주의가 구축한 교환가치의 세계에 살고 있으므로 버릴 건 버리는 게 효율적이다.


나는 다음 나이를 못 먹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10년 후 또, 10년만 젊었어도를 읊조릴지 모르겠지만, 그건 그때 일이다. 후드티에 운동화는 편하고, 이번 생은 망했다. 감당할 만하다, 아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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