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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오 Oct 17. 2024

출근길의 노래

아침에 눈을 떴을 때 가장 하고 싶은 것은, 퇴근이다. 출근하기 싫다. 어렸을 때 상상하던 것과 달리 넥타이를 매기 시작하는 나이가 되면 내가 싫어하는 일을 내가 할 수 있는 일로 만들어야만 했다. 수험생 때는 부모님에 기대어 재수라도 했지만, 직장인에는 출구가 없다. 나는 매번 괜찮지 않은데, 출근은 매번 무사하다. 출근할 수 있어 다행이라는 사실이 무참하다.


출근길에는 꼭 철지난 노래를 듣는다. 일종의 방어기제인 듯하다. 익숙한 것을 듣고 있으면 무참함이 희석된다. 1995년에 발표된 서태지와 아이들 4집으로 잠시 후에 위장할 ‘반가워요.’가 충전된다. 1995년에는 내가 이렇게 될지 몰랐다. 이렇게 될지 알았다면, 자살이라도 하지 않았을까. 나는 이런 내가 되고 싶은 적 없었다.

[come back home]의 울림이 문득 크다. 출근길에 듣는 ‘집으로 돌아와.’의 역설 때문만은 아니다. 가출 청소년을 향했던 메시지가 15년여가 훌쩍 지나, 30대가 되어버린 직장인에게 꼭 맞아버린다.


난 지금 무엇을 찾으려고 애를 쓰는 걸까? 

난 지금 어디로 쉬지 않고 흘러가는가?


그러게 말이다. 무엇 때문에 이 ‘지랄’인지 모르겠다. 아니, 나나 당신이나 사실은 너무 잘 안다. 우리는 월급을 찾으려고 애를 쓰고 있으며 월급을 향해 쉬지 않고 흘러간다. 자소서에 ‘지원 동기’를 쓸 때 이 말을 쓸 수 없어 다들 막막했을 것이다.


언젠가부터 월급 이외의 것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 당연하게 되었다. 주체적인 자아 확립은 학생의 권리일 뿐이다. 고등학생 때나 내가 뭐가 될지 고민하고, 원서 쓸 때나 어느 대학에 가야 할지 괴로워한다. 그러다가 취업 시장에 들어섰을 때는 고민과 괴로움은 오직 ‘아무 것도 되지 못함’에 머문다. 취준생이 되면 돈이 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라도 되고자 하고, 어디라도 가고자 한다.


막상 무언가가 되고 보면 별 거 아니다. 우리는 커피/복사 심부름 근처의 가마우지다. 나는 원장의 통장 잔고를 위해 숨이 차도록 일하고 약간의 먹이를 받고 안도한다. 이런 자괴감도 언젠가 무뎌질 것이라는 걸 안다. 나와 같은 미생들은 그것을 자신으로 수용할 수밖에 없다. 출근은 고작 그런 인생을 수락하는 성실한 자해다. 나를 모른 척해야 나의 정신 건강에 이롭다.


난 내 삶의 끝을 본 적이 있어. 내 가슴 속은 갑갑해졌어. 

내 삶을 막은 것은 나의 내일에 대한 나의 두려움. 

반복됐던 기나긴 날 속에 버려진 내 자신을 본 후, 

나는 없었어. 그리고 또 내일조차 없었어.


난 내 삶의 끝을 본 적이 없다. 끝나는 중이기 때문이다. 이미 ‘되다’는 완료되어 이제는 이 ‘되다’를 버티는 것만이 인생으로 남았다. 보이는 길 밖에도 세상은 있다지만 그것은 오래된 방 한 구석에 앉아 쉽게 인생을 이야기하는 소리다. 혹은, 승자의 자기 정당화다. 지금은 386 세대들의 대한민국이 아니다. 내 가슴 속이 갑갑해져도 어쩔 수 없다. 이 직장을 나가게 되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


원장은 그 심리를 잘 이용했다. 때려치울까 말까를 고민하는 수준까지 몰아붙였다. 원장은 월급으로 내 목구멍을 겨눈 채 채용 사이트에 늘 강사 채용 공고를 냈다. 내가 아니라도 일 할 사람은 많다는 원장의 자신감 앞에 내 자존감은 밑바닥에 바짝 엎드렸다. 내 삶은 이미 막혀 있고, 월급이 없을 내일에 대한 나의 두려움은 언제나 나를 압도했다.


반복되는 수업과 원장의 행정 통제. 내 생각과 다른 원장의 지시를 따라야 하고, 비효율적인 행정 업무를 수행해야 했다. 마르크스가 이야기하는 노동자의 자기 소외는 체험적 진실이었다. 직장에 나는 없었다. 내 일만 있어서 나의 내일조차 없었다. 내일은 시작되기도 전에 오늘로 된 도장으로 찍혀 ‘반복됐던 기나 긴 날’ 속에 포함되었다. 절망하지 않는 습관이 들었다. 어차피 내일도 똑같을 테니까.


내겐 점점 더 크게 더해갔던 이 사회를 탓하던 분노가, 

마침 내 증오가 됐어. 진실들은 사라졌어 혀끝에서.


사회를 탓하기나 할까? 증오도 어렸을 때나 한다. 사회를 증오할 혈기라도 있었다면 직장에 침이라도 뱉었을 것이다. 밥은 먹고 산다는 사실과 타협하는 일은 쉽다. 비굴하지만 나는 딱 그 정도의 인간이 된 것이다.


꿈은 이루어진다거나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말은 삼가자. 내 꿈은 글쟁이였고, 글은 돈이 되지 않아 글을 쓸수록 인생이 잡을 수 없는 별처럼 멀어졌다. 꿈을 쫓던 인생은 헛것이었을까? 아무도 읽어주지 않는 내 글무덤을 보고 있으면 나는 헛것을 산 것 같았다. 그러다 최후의 꿈을 쓰는 각오로 이 글을 썼다. ‘내가 되고 싶은 나’는 점점 육안으로 보이지 않게 되더니 원장의 가마우지가 된 것에 안도하게 되었다. 떨어지는 갈매기를 구제해줄 완충 장치도 없으면서 함부로 높이 날라고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you must come back home. 떠나간 마음보다 따뜻한

you must come back home. 거친 인생 속에


문제는 돌아갈 집이 없다는 것이다. 불평등 수준이 커졌다고 해도 부모의 등골을 빼먹으면 굶어 죽지는 않으므로 참 좋은 나라다. 그러나 월세나마 house는 가졌으되, 노비도 가지던 home이 없다. 일 때문에 떨어진 주말 부부, 식구를 해외로 보낸 기러기 아빠, 애초에 가족을 꾸리기 힘든 N포세대들은 그들마다 퇴근하고 돌아가는 곳은 집이 아니라 각자의 빈 공간이다.


집이 없어서, 나는 지금 무엇을 찾으려고 애를 쓰는 건지, 나는 지금 어디로 쉬지 않고 흘러가는 건지 모르겠다. 주위를 둘러봐도 아무도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아무도 이제 그만 됐다고 말하지 않는다. 원장은 ‘더, 더!’를 외칠 뿐이다. 힘겨운 눈물은 하늘을 날고 싶을 때나 흘리는 거다. 괜찮은 미래가 없다는 걸 안다. 매일, 무모한 거품들만 날린다. 우리는 차가운 눈물만 흘린다. 그것이 양극화의 현실이라면 어쩔 수 없음을 수락한다. 그러나 돌아갈 수 있는 집은 남겨줬으면 좋겠다. 그래서 옛날 노래를 듣나 보다 하며, 출근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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