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꽃’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어떤 책에서는 고유어라고 했고 다음 사전에서는 북한어라고도 한다. 출처가 어떻든 의미는 ‘비가 내리기 시작할 때 성기게 떨어지는 빗방울’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 그는 몸짓에 지나지 않은 것처럼, 비가 막 들을 때 창문에 맺힌 풍경은 어떤 이에게는 물방울의 몸짓이며 어떤 이에게는 투명하게 피어나는 꽃밭이 된다. 이름으로 풍경의 농도가 갈린다.
이름이 없는 것을 생각하거나 느끼기는 힘들다. 우리는 ‘새벽’과 ‘아침’의 경계를 자를 수 없고, ‘고맙습니다.’와 ‘감사합니다.’의 사이를 알지 못하며, ‘우정’과 ‘사랑’ 사이의 감정 속에서 헤맨다. 물론 햇볕과 햇살과 햇발을 구분하지 못해도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하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나 이름을 안다면 태양을 온도, 빛의 무거움, 빛의 너비로 인식할 수 있는 것처럼 내 삶의 구성성분들을 다각화함으로써 삶을 입체적으로 구체화할 수 있다.
삶의 물리적 크기는 시간의 총합이어서 현재의 삶은 과거만큼 존재한다. 그러나 과거는 그 비중이 동일하지 않아 삶은 단순히 과거가 아니라 기억에 비례한다. 기억은 과거 중에서 잊히지 않고 살아남은 것으로, 시간에 새겨진 이름들이다. 인간은 일기를 쓰고, 기념품을 모으고, 사진을 찍는 것으로 시간에 이름을 부여한다. 그렇게 노력해도 인간의 시간은 - 잠든 시간을 제외한다고 하더라도 - 기억되는 것보다 망각되는 양이 더 많다. 나는 지금 내게서 잊히고 있을 확률이 더 높다.
대부분의 경우 생계와 직면한 순간부터 시간의 상실은 가속화된다. 목구멍에게 필요한 것은 익명의 에너지일 뿐이어서 생계는 시간의 늪이다. 종종 생계에서 기억이 발생하기도 하지만, 특별한 약속을 잡은 휴일에 비하면 효율이 떨어진다. 물론 대부분의 휴일조차 TV 앞에서 멍하니 엉덩이만 뭉개다가 삭제되기 일쑤다. 지지난주도 그랬고 지난주도 그래서 내일부터도 지난주에 살았던 비디오테이프가 조금 더 늘어난 형태로 재생될 것을 안다. 알아서 더 무력해진다. 붕어빵 찍히듯이 엇비슷한 오늘들은 한 달에 한 번 찍히는 월급으로 간략하게 기록될 뿐이다. 나는 참 가난한 숫자였다.
내 목구멍에 닿아있는 숫자를 보면 ‘살아가다’가 ‘죽어가다’와 동의어임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생존의 대가로 하루하루 삭제 당하는 모순이 허망했다. 대하소설 <토지>를 쓴 박경리 님이 자신의 잃어버린 시간들이 허망하다고 한 것보다 더 원초적인 공백이었다. 그녀는 쓰는 동안 서희, 길상, 봉순 등과 공존했고 그녀의 두꺼운 시간에는 <토지>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러나 마트에 가고, 밥을 먹고, 똥을 누고, 월세를 입금하는 일에는 이름을 붙일 수 없었다. 이러다가는 스스로에게서도 잊힌 채 인생이 끝나버릴 것 같아서 아찔했다. 기억을 가지고 싶었다.
1
내 많은 기억은, 특히나 2011년은 MBC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에 빚지고 있다. 방에 TV가 없어 아프리카TV로 봤다. 아프리카에 접속하면 BJ들이 랜덤으로 항상 방송을 해줬다. 혼자 있는 자취방에는 사람 사는 소리가 필요해서 외출했다가 들어오면 접속했고, 책상 앞에서 밥 먹을 때도 접속했고, 청소할 때도 접속했고, 인터넷 서핑 할 때나 논문 자료를 찾을 때도 ‘항상 위’ 기능을 사용해 우측 하단에 띄워 놓았다. 내가 보든 안 보든 멤버들은 신나게 떠들어댔다. 특히 2011년은 방구석에 처박혀 있는 일이 많아서 <무한도전>은 기억 속에 가득했다. 소리를 채워 넣는 것이 중요했고, 이왕이면 익숙한 소리가 편안했다.
<무한도전>은 황소와 씨름할 때부터 봐왔다. 전편을 다 보지는 못했겠지만 두 번 이상 본 방송이 9할은 되고, 세 번 이상 본 방송이 절반은 넘으며 다섯 번 이상 본 방송이 2할이 넘는 것에 내 손목이라도 걸 수 있다. 2006년 10월 <농촌특집>에서 바지에 고구마를 넣고 달리다가 넘어지는 노홍철과, 2007년 1월 <토정비결>에서 정준하와 박명수를 멀리해야 한다는 유재석의 사주와, 2008년 1월 <이산>에서 박명수의 비싼 발 연기와, 2009년 2월 <정신감정>에서 정준하의 가장 높은 IQ와 2010년 9월 <WM7>에서 경기가 끝나자 유재석과 정형돈이 포옹하며 흘리는 눈물과 2011년 2월 <TV는 사랑을 싣고>에서 리포터로 나간 노홍철의 발정이 내 2011년의 대부분이었다.
나는 <무한도전> 멤버들이 부럽다. 이들은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서 가장 많은 기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무한도전>은 매 회 다른 주제를 채택하기 때문에 모든 촬영이 특집으로 명명되었다. 생계와 기억이 직통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부러운데 그들은 매주 하나씩, 2006년 5월부터 지금까지 무려 280여 개의 기억을 적립했다. 나는 내 5년 반 속에서 280여 개의 명명된 기억을 끄집어 낼 수 없다. 아니, 이름 없는 사소한 것들도 280개를 채울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실제로 2010년 겨울에 <무한도전> 사진전에 갔을 때, 두 층을 가득 매운 그들의 사진들과 업데이트 되지 않는 내 미니홈피 사진첩의 간극이 무참했다. 그나마도 많은 사진들 중에서 가려내고 편집된 사진들일 텐데도 말이다. 노홍철은 나보다 기껏 한두 살 많을 뿐인데, 그는 벌써 내 고조할아버지만큼 산 것 같았다.
기억의 질도 달랐다. 기억의 질은 감정의 강렬함으로 결정된다. 2011년 <조정>에서 배가 결승선을 통과하자 정형돈이 외친 “easy oar!”는 다른 세계의 울림 같았다. 나는 내 어느 기억에게도 물기 가득한 울음을 외칠 수 없었다. 일상의 반복과 엄습하는 외로움 속에서 감정의 진폭은 그리 크지 않았다. 좀 심심하고, 적당히 짜증나고, 간혹 웃었을 것이다. 내가 겪은 과거를 추측해야 했고 추측 속에는 부정적인 것들이 더 많았다. 물론, 최선을 다해 사랑했던 사람과 시작하자마자 불발되어버린 기억은 구체적으로 각인된 이름을 갖고 있지만 이 역시도 통증에 가깝다. 그녀 이후에 내가 흘린 눈물과 조정 이후에 유재석이 흘린 눈물은 명도와 채도가 다른 것이다.
그들의 체험이 내 경험이어서 내가 <무한도전>을 기억할수록 나는 간접인간이 되어가는 것 같았다. 내 기억은 실체와 아무런 상관성을 가지지 못했다. 설령 박명수나 길이 노홍철이 말레이시아의 레이싱에서 3분 4초를 기록한 것이나, 정준하가 소지섭 앞에서 앙탈을 부릴 때 정형돈이 그의 엉덩이를 걷어찬 일을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박명수와 길은 노홍철과 정형돈과 관계했다. 나를 빼놓고 나는 점점 내 기억과 관계없는 인간이 되어갔다.
내 삶에는 이름이 없다. 내가 가진 것은 내 의지와 무관하게 얻어진 내 이름 석 자와 주민등록번호가 전부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삶의 이름을 스스로 만든다, <무한도전>이라고. 언젠가 그들의 무덤 앞 비석에는 <무한도전>이라 새기고, 조문객들은 외쳐도 된다.
“easy oar!”
2
기억이 없는 날들을 쌓아간다는 것은 내가 오늘을 사는 것이 아니라 오늘이 나를 소비하는 것에 가깝다. ‘나’는 대명사지만 ‘나의 오늘’은 소비재 같은 보통명사처럼 여겨진다. 그러니까 나는 비밀 금고 속에 잠들어 있는 콜라 제조법이고 나의 오늘은 일련번호만 다르게 찍혀 나오는 콜라 캔 같다. 매일이 닥쳐오는 콜라 떼들이다. 나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똑같은 콜라를 허겁지겁 마시고 빈 캔을 쓰레기통에 던져 넣는다. 결국 내 삶은 찌그러진 알루미늄 통 속에 고인 오늘들로 채워진 쓰레기통 같은 것이다.
쓰레기통에 가득 차 있는 이름 없는 것들에 이름을 부여하면 쓰레기통은 쓰레기통이 아닐 수 있다. 네 맛도 내 맛도 없는 물에도 샘물, 석수, 마신다, 퓨리스, 삼다수, 스파클, 에비앙, 아이시스, 미네마인, 블루마린, 워터라인 등의 이름을 갖다 붙이는데 어제와는 조금이라도 다를 여지가 있는 나의 오늘에 이름이 없는 것은 더 이상한 일이다. 오늘은 반복된 시간들의 떼거리가 아니라 개별성 가진 삶의 단위이다. 그런데도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오늘에 이름을 부여하는 일은 하지 않는다.
‘오늘’이 가장 많은 이름을 가지던 때는 초등학생 때였던 것 같다. 강제이기는 하지만 그때는 일기를 썼다. 일기 자체가 시간에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이어서 오늘들은 개별적인 기억으로 편집될 수 있었다. 또한 시킨 것도 아닌데 꼬박꼬박 제목을 붙여 기억을 포장했다. 제목은 오늘의 이름이자 기억의 입구였다.
교과서에서는 자아 성찰을 들먹이며 일기를 쓰라고 하지만 생계와 싸우며 매일 기억을 남기는 것은 현실적으로 부담스럽다. 그렇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이나 잠들기 전에, 오늘의 제목을 1, 2분 정도 생각하는 수고는 어렵지 않다. 그것을 달력에 기록해 나가면 오늘이 삭제되고 있는 위화감을 덜 수 있다. 최소한 감옥에 갇힌 죄수가 칠이 벗겨진 시멘트 벽에 표시하는 ‘X'보다는 의미 있을 것이다.
독서도 하나의 방법이다. 틈틈이 읽는 독서도 지속성의 측면에서 좋지만, 나는 날을 잡아 집중적으로 책을 읽는 것을 즐기는 편이다. 하루 한 권의 책은 그 날의 이름으로 부족함이 없었다. 책은 내가 아니라 작가의 압축된 기억이지만 독서는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듣는 것과는 달리 독자의 1인칭으로 시점을 바꾸어 의미를 재구성하기 때문에 타인의 기억을 내 것으로 포섭하는 일은 부끄럽지 않다. 나의 2011년 11월 29일은 <흑산>이었고 2011년 12월 1일은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였고, 2011년 12월 3일부터 6일까지는 <1Q84>였다. 드디어 숫자보다 단단한 글자가 내 오늘에 남았다.
그러나 부족했다. 달력에 기록할 만한 제목은 만들어지지 않는 날이 더 많았다. 책을 몰입해서 읽을 수 있는 날들이 그렇게 흔하게 주어지는 것은 아니었고, 점심으로 간짜장 먹은 이야기는 여전히 평범했다. 또한 하루 한 권의 책을 읽어도 책의 기억은 여전히 나 혼자만의 것이었다. 고립된 기억은 세상에 점착되지 않아서 가벼울 수밖에 없다. 콜라 캔이 찌그러질 때의 소리를 아무도 듣지 않았다면, 소리는 난 것일까 나지 않은 것일까. 밖으로 빠지지 못하는 트림이 뱃속에서 부걱댄다.
3
이 글을 구상하고 쓰는 동안 기억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기억 속에서는 날짜가 불분명해서 시간은 순서가 없었다. 지나간 시간들은 직선이 아니라 입체로 소환되었다. 입체의 중심에는 인물이 있었고 시간은 인물의 주변에서 인과율 정도로만 존재했다. 가장 먼저 부닥뜨린 입체는 그녀였다. 지금 무덤덤하다고 해서 기억이 퇴색되는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아니, 그녀에게 집중한 순간, 심실과 심방 사이에 박힌 가시 같은 것이 느껴졌다. 가시는 오래되어도 가시여서 현재의 심박은 낡아서 무뎌진 통증을 남겼다. 심박마다 짓무른 그리움과 눅눅한 무력감이 복합된 끈적끈적한 이물감이 퍼졌다. 기억은 늪처럼 현재를 집어 삼켰다.
봉인해도 시원찮을 기억을 되새기며 괜한 청승을 떠는 것 같았다. 다른 입체를 소환해서 그들의 기억을 직조했다. 친구들을 더듬는 일은 의외로 따분한 작업이었다. 태윤이와 단대 가요제에서 입상한 일도, 나예와 <무한도전> 사진전을 관람한 일도, 영웅이와 죽도 시장을 헤맨 일도 손에 잡히기는 하지만 그녀보다 성글었다. 그들이 주는 기억은 삭제된 풍경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을 막아주지 못했다.
혼자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감정이란 상보적인 것이어서 대체로 내가 내게 감정을 느끼지는 않는다. 혼자 만든 기억은 무감정해서 무게 없이 바람에 휘날려 더 스산했다. 사람은 결국 감정으로 살아가며 감정을 느끼기 위해 타인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게 사람을 생각하자 죽은 전구에 들어온 불처럼, 그녀는 가시가 아니라 체온이었다는 사실이 깨달아졌다. 심야 영화를 기다리며 극장 귀퉁이에서 각자 수험서를 펴들고 있던 기억, 모닝콜을 받지 않아 그녀의 고시원까지 찾아가 깨웠던 기억, 내 방에서 식사를 준비하고 같이 나눠 먹던 기억, 눈길에 나란히 발자국을 남기던 기억을, 나는 한 겨울의 이불처럼 덮고 있었던 것이다.
기억으로서의 그녀를 수락하고 나자 삶은 흘러가는 시간으로 된 직선이 아니라 사람으로 엮인 사람의 입체라는 생각을 정리할 수 있어 이 글의 서두를 열 수 있었다. 내 삶의 밀도와 농도는 타인과의 점착력으로 결정되는 것이다. 그 점착력을 위해서, 자기 보존을 위해서, 사람들은 치열하게 사랑하는 것이다. <무한도전>을 꿰고 있어도, 하루 한 권의 책을 읽는 것도, 오늘에 이름을 부여하는 것도 사람 결핍에 대처하는 차선일 뿐이다. 사람의 최선은 사람이다. 박경리 님의 <토지>도 그녀의 기억이 아니라, 그녀가 살았던 흔적일 뿐이었을 것이다. 당장 나 역시도 이 글을 쓰는 5일 동안의 기억이 없다. 기억을 삭제 당한 대가로 이 글이 내가 살았다는 흔적으로 남았다. 흔적과 기억은 다르다. 눈길을 걸을 때 내게 남는 것은 발자국이 아니라 눈앞에 펼쳐진 설경이다.
물론 차선투성이의 삶을 꼭 실패라고만은 볼 수도 없다. 차선의 시간 중에는 타인과 관계할 내 정체성을 다듬는 시간도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이 글을 씀으로 해서 당신들과 관계를 가지는 것처럼 말이다. 즉, 차선의 시간은 내가 획득할 사람의 양과 질을 담금질 할 때만 의미가 있는 것이다.
삶은 끝내 사람이어서, 세종대왕의 삶은 <훈민정음>이 아니라 광평대군, 정인지, 최만리에 가깝고, 유재석의 삶의 이름은 <무한도전>이 아니라 박명수, 정준하, 정형돈, 노홍철, 하하, 길에 가깝다. 이처럼 개인이 획득한 삶의 이름은 타인의 이름으로만 구성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의 이름을 가져오기 위해서 서로를 사랑해야만 하고,
내 차선의 시간은 조금 길다. 휴대 전화 속 이름들을 깨우지 않아서 못해서 글이라도 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