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윤이 올해 결혼하면 안 되는데.”
“니도 그 생각했나?”
나와 영웅이는 맥없이 낄낄댔다. 영웅이는 대학 졸업 후에 고시원에서 한 몸 같이 지낸 친구였다. 제발 우리 취업 후에 결혼하라고 입을 모았다. 수입 없는 수험생이기에는, 서른하나, 스스로 부담스런 나이였다. 하객으로 만날 선후배들과 주례를 서실 지도 교수님을 뵐 낯이 없었다. 친구에게 줄 축하 선물조차 생활고의 산수 속에서 루트(√)를 연거푸 뒤집어썼다.
‘태윤’은 내 20대의 핵심 성분이었다. 같은 과, 같은 동아리에 소속되어 있어 도서관에 처박혀 있던 영웅이보다 부대낀 시간이 많았다. 시험기간마다 한 밤의 탁구장을 점령하고, 동아리 방에 불내고, 가요제에 나가고, 오락실 노래방에 동전을 쏟아 붓던 한 몸이었다. 내가 기숙사에 있을 때, 밤이면 학교를 가로질러 와 ‘한잔 할까?’ 했다. 맥주 한 캔은 내 주량이어서 태윤이는 편의점 앞에서 입가심만 하고 어슬렁어슬렁 돌아가곤 했다.
태윤이의 신부, 솔비도 동갑내기 친구였다. 내 20대의 여성 구성 성분으로 나예와 1·2위를 다투는 ‘놈’이었다. 이름보다는 남석이나 남군으로 불렀다. 남군은 천성적으로 퍼주길 좋아해서 내가 고시원에 살 때 물심양면으로 도와줬었다. 태윤이와는 서로 주먹을 나누던 사이였는데 밤늦게까지 함께 과제에 매달리더니 둘은 연인이 되었다.
사귄지 3년째로 접어든 나이 찬 연인들의 결혼은 예상 가능했다. 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터질지는 몰랐다. 영웅이와 말장난 한 지 한 달 후쯤 태윤이는 내게 사회를 부탁했다.
결혼 소식이 전해진 그 주에 만난 영웅이는 헛웃음을 지었다. 축하도, 그에 맞선 부담도 모두 팽팽한 진심이었다. 주고 싶어도 줄 게 없었다. 차라리 3, 4년 전이라면, 신랑 신부가 행진할 때 그 앞을 가로 막고서 ‘솔비야, 못 보내!’ 하며 퍼포먼스라도 펼칠 텐데, 지금은 주눅이 몸에 배어 집중될 눈들이 무서웠다.
태윤이는 박사 3학기에 접어들었다. 지도 교수님의 평판과 행정적 수완이 좋으셔서 연구 과제를 많이 따오셨다. 사업 중심에 태윤이가 있어서 한 달 먹고 살 정도의 연구비를 받을 것으로 추측했다. 남군은 타 캠퍼스 타학과 조교로 근무했다. 지도 교수님의 연줄로 들어간 자리여서 흔들릴 일은 없어 보였다. 우리의 축하쯤은 생략되어도 이 녀석들의 결혼은 여전히 풍요로울 것이라고 쓰고 지우기를 반복했다.
집안 간에 구체적인 일정을 잡는다고 한동안 분주하더니 태윤이가 밥을 먹자고 했다. 지난 주말에 반 년 만에 예비 부부와 만났다. 나를 시내의 패밀리 레스토랑으로 끌고 갔고, 나는 부담 없이 가장 비싼 메뉴를 골랐다. 결혼 이야기보다는 일상 이야기가 주로 오갔다. 하나의 화제가 잠시 저물 때, 솔비가 넌지시 물었다.
“하루오군, 니 양복은 있나?”
“응? 있을 걸? 사회 보는데 옷 못 입을까봐?”
“어떤 거 입는데?”
모른다. 양복은 면접 때나 입는 검은 것이었다. 사회 관습에 대한 지식도 비어 있어서 결혼식 사회를 보면 양복을 얻어 입는 것도 그 자리에서 알았다. 솔비는 나중에 필요한 것 있으면 그걸로 줄 테니 말하라고 했다. 필요하면 돈으로라도 준다고 했다. 줄 것도 마땅찮은데 받아야 하다니 난감했다. 나는 대답을 대충 얼버무렸다.
자리가 파할 즘에 지하철 시간이 간당간당했다.
“태윤군 집에서 자고 가라.”
예전 같으면 남군이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기어들 집이었다. 그런데 그 집은 그들의 신혼집이 될 ‘방’이었다. 태윤이와 솔비는 원룸에서 시작한다고 했다. 사정 봐가면서 큰 데로 옮겨 갈 것이라고 했다. 내 추측과 달리, 교수님은 정년이 다가와서 연구 과제를 안 따오셨다. 태윤이는 수입원이 없었다. 솔비는 소속된 학과가 통폐합 될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솔비를 먼저 보내고 모교 앞에 있는 태윤이 집까지 걸었다.
“한 잔 할까?”
“그러려고 남았지. 이것도 마지막 아니겠나?”
“같이 마시면 되지.”
“아니, 니 ‘한 잔 할까’ 그거 말이야.”
피식. 시내에서 모교까지 도보로 30분 쯤 걸렸다. 학부 때, 같이 꽤나 걸어 다녔었다. 돈이 없어서라기보다는 그때는 그냥 걸었다. 그 길을 되걷기는 오랜만이었다. 그때는 어땠는지 모르겠는데, 나는 차가 오지 않으면 빨간 불은 무시하는 쪽으로, 태윤이는 일단 지키는 쪽으로 변해 있었다. 미혼과 기혼 예정자의 차이인가 싶기도 했다.
태윤이는 잘 모르겠다고 했고, 불안하다고 했다. 솔비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내 백수에 비하면 태윤이의 앞날은 투명하다고 생각했는데 당사자는 아닌 모양이었다. 박사를 졸업해도 일자리가 마땅치 않다고 했다. 우리가 입학할 때만 해도 선배들은 학사 졸업으로 제 밥그릇들을 챙겼고, 9급 공무원은 ‘쪽 팔린다.’고 했었다. 그러나 취업 시장은 가학적으로 변해갔고, 취업의 서슬 앞에 바싹 엎드려 있는 동안 나이만 많아졌다. 추억을 도난당한 나이는 사람으로 익어가지 못하고 책과 스펙의 냄새만 풍겼다. 취직하기에는, 결혼하기에는, 우린 꽤나 인간적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결혼은 인간이 하는 것이 아니라 돈이 하는 것이다.
“아……, 그냥 돈이 되고 싶다.”
피식. 피식.
스무 살에는 한 밤에 깡통을 차며 캠퍼스를 횡단하기도 했고, 운동장에서 북을 치다가 경비 아저씨로부터 쫓겨나기도 했다. 캠퍼스는 그때와 달라진 게 거의 없는데 이제 우리는 조용히 걸었다. 광장을 부수고 20층짜리 건물을 올리는 북문을 지나 편의점으로 갔다. 나는 맥주 작은 캔, 태윤이는 큰 캔, 새우깡까지는 똑같았다. 육포 한 봉지가 나잇값처럼 더해졌다.
신부 없는 신혼 방에서 그때처럼 마셨다.
“남군한테 잘해라.”
“잘 해야지.”
태윤이는 그때보다 움츠려져있었다. 원시 시대부터 남자들에게 유전되어 온 가정에 대한 책임감은 그토록 무거운 것인가 보았다. 결혼하는 친구에게 변변한 선물도 못 주는 내 미안함도 이토록 묵직한데, 결혼하는 사내가 사랑만 예물로 건네는 죄책감은 내가 젤 수 있는 무게가 아니었다. 내 앞가림도 못하는 주제에 별 다른 위로를 전할 수 없었다. 힘내라, 속으로 말했다.
“자, 한 잔 하자.”
“Cheers.”
불확실뿐인 우리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