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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오 Oct 29. 2021

짬뽕 - 소박한 위대함

어머니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다. ‘야이야아아 그렇게 살아가고’ 할 일은 아니다. 돼지기름이 속에서 안 받는다고 하셨다. 중화음식을 주문할 때, 어머니는 늘 짬뽕을 드셨다. 아버지도 짬뽕을 시킬 때가 많았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 Top5에서 짜장면을 뺄 수 없던 시절, 짬뽕은 어른의 음식이었다.


짜장면과 짬뽕 사이에 입맛의 사춘기가 있다. 짬뽕의 시작은 호기심이었다. 짬뽕도 맛있었지만 짜장면을 포기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짬뽕 먹는 빈도가 늘어난 것은 어른을 모방하는 본능 때문이었다. 어른을 동경하며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던 시절, 짬뽕은 어른으로 향하는 레벨업 약물이었다. 짜장면에 환장하는 동생을 보며 으스댈 수 있는 기분에 익숙해지다 보면, 짬뽕은 중화음식의 정점을 차지했다.


짬뽕이 짜장면을 누를 수 있는 결정적인 이유는 국물이다. 한국의 가정식은 밥-반찬-국으로 구성되며, 나이 들수록 끼니의 국 의존도는 높아진다. 국 하나만 있어도 한 끼 뚝딱이고, 이 때 반찬은 왼손처럼 거들 뿐이다. 서양은 동아시아를 젓가락 문화로 분류하지만, 동아시아 삼국 중에 한국에서 유독 숟가락이 발달한 것은 국물 때문이다. 중국은 면 음식의 발달로 젓가락이 더 중요했고, 일본은 국물 요리에서도 건더기에 집중했지만, 한국은 국물 한 모금에 배 밑바닥에서 끌어 올린 ‘크~아!’를 포기할 수 없었다. 거의 모든 국물에 밥을 말 만큼 국물 친화적인 문화권에서 짜장면은 애초에 짬뽕의 상대가 될 수 없었던 것이다. 실제로 짜장면 전문점은 거의 없지만 짬뽕 전문점은 이제 흔해졌다.




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 음식, 짬뽕이다. 유전자에 짬뽕이 각인이라도 된 듯, 비가 오거나 기온이 떨어지는 점심에는 조건 반사처럼 짬뽕이 당긴다. 몸이 국물을 원했고, 그 국물은 얼큰해야 했고, 점심이기에 간편해야 했고, 짬뽕은 이 조건을 모두 갖췄다.


나는 사람들의 짬뽕에 대한 광기를 꿉꿉함으로 기억한다. 제대 후 복학 전까지 중국집에서 배달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평소에는 짜장면-짬뽕 비율이 엇비슷했다. 단, 짜장면을 주문한 곳에는 대체로 아이들이 있었다. 그러다 비가 오면 짬뽕 주문이 늘었다. 비는 사장의 축복이자 배달원의 재앙이었다. 일이 늘었고, 비옷까지 걸쳐서 몸에 실린 무게도 늘어 곱으로 힘들었다. 밀린 주문을 보며 짬뽕에 쌍욕을 퍼부으면서도, 늦은 점심으로 짬뽕을 먹었다. 비가 오면 어쩔 수 없었다.


짬뽕은 라면의 상위호환 음식으로서 라면 못지않게 관용적이다. 새우, 낚지, 오징어, 굴, 홍합, 전복 같은 해산물에서 차돌박이, 목살, 뒷다리 살 등의 육류까지 아우르고, 숙주, 콩나물, 배추, 부추, 양파, 당근 등의 채소도 다채롭게 조합된다. 어떤 조합으로 만들어진 변이든 고추기름을 중심으로 불맛이 더해진 짬뽕 본연의 맛을 잃지 않는다. 하긴 애초에 중국, 일본을 거쳐 한국에 들어온 음식이고, 고추를 통해 한식으로서 독립 분파를 이룬 다문화의 표상이다. 맛있는 관용이 입 안에서 얼큰하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 열 가지를 나열하면 짬뽕은 순위권 밖이다. 그러나 내가 자주 사먹는 끼니로 짬뽕은 잔치국수와 정상을 다툰다. 나는 면을 좋아했고, 얼큰한 것보다는 깔끔하고 담백한 것을 선호하는 편이다. 라면 국물이나 짬뽕 국물을 남김없이 마시는 것도 무모하게 생각한다. 짬뽕은 내 선호를 초월해 내 입안에 우격다짐으로 자리 잡은 무지막지한 생활 음식인 것이다. 단, 면을 좋아하되 퍼진 건 싫어해서 무조건 식당에 가서 사 먹었다.


가장 맛있게 먹은 짬뽕은 자전거 도로를 타고 1시간 30분~2시간 거리(풍향과 풍속에 따라 다르다)에 있는 중국집의 것이다. 운동 삼아 자전거를 타고 그 거리를 달렸다가 그 집 짬뽕의 담백한 맛에 꽂혔다. 대학가나 번화가로 나오면 무조건 돈을 끌어 모을 맛이 빛을 덜 보고 있는 것이 아까울 정도였다. 처음에는 운동 직후 먹는 짬뽕이라 맛있는지 알았는데, 집과 직장 근처 중국집과 짬뽕 전문점 여섯 군데에서 짬뽕을 먹어 보고 나서 그 집이 맛있다는 것을 알았다. 운동하기 싫을 때, 그 집 짬뽕은 운동 동기가 되어줬다. 자전거로만 갈 수 있기 때문에 봄, 가을에만 먹을 수 있는 게 단점이다.


먼 곳의 중국집에 있는 볶음 우동. 올 가을에는 바빠서 못 감.


최근에는 집에서 도보 2분 거리에 있는 짬뽕 전문점을 발견했다. 가깝지만 내 생활 동선과 반대 방향이라 5년 넘게 몰랐다가 우연히 사람들이 줄 서 있는 것을 보고 알았다. 내 입에 간이 세지만, 6,000원(현재 7,000원)에 풍부한 채소와 눈에 보일 정도로 한치, 조갯살, 돼지고기가 들어가 있어 먹을 만했다. 무엇보다도 밥 반공기가 기본 옵션으로 나왔다. 아침 10시에 문을 열기 때문에 줄 서기를 싫어하는 나는 일주일에 한 번 아침 10시에 가서 브런치로 먹었다. 테이블 다섯 개는 개장 5분이면 인근 자취생들로 가득 차고 때로는 대기자가 생겼다.


우리동네 짬뽕 전문점. 채소와 면의 분량이 거의 1:1


이 흠 잡을 데 없는, 비 오는 날이면 소울푸드로 격상되는 유전자 같은 음식에 대한 시장의 평가는 박하다. 음식에도 귀천이 있다. 짬뽕이 파스타보다 저렴해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 짬뽕에 들어가는 해산물의 양이 더 많다. 음식 가격 대비 해산물 양을 따지면 그 격차는 더 벌어진다. 짬뽕에는 채소도 더 많이 들어간다. 요리법은 비슷한데, 짬뽕 쪽은 불맛의 퍼포먼스가 추가되고, 웍도 무겁다. 물론, 자발적으로 먹을 일 없는 파스타가 1인 분에 10만 원쯤 해도 내 알 바 아니다. 그래도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듯, 이탈리아 볶음 국수가 젠체하는 모습은 꼴사납고, 내 ‘최애캐’ 중 하나가 주눅 든 것은 안타깝다.


짬뽕의 평가 절하는 국어사전에서도 이뤄진다. 짬뽕은 음식 이름 중에 다른 뜻을 가진 극소수의 음식이다. 짬뽕은 사전적으로 ‘서로 다른 것을 뒤섞음’이라는 뜻이 추가되어 있다. 소금이 ‘물건이 썩는 것을 막고 음식의 맛을 나게 한다는 점에서 사회도덕을 순화ㆍ향상시키는 참신자의 사명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두 번째 의미를 가지지만 어디까지나 특정 종교 한정이고, 비유로서의 의미다. 그러나 짬뽕의 두 번째 의미는 일상에서 생명력을 가진다.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특징이지만, 관용으로 쌓아 올린 짬뽕의 훌륭한 맛과 달리 두 번째 의미는 부정적 뉘앙스로 사용된다.


짬뽕의 가치가 할인 되는 것은 만만하기 때문일 것이다. 짬뽕은 동네 어디에나 있다. 부유한 동네는 부유한 대로, 가난한 동네는 가난한 대로 있다. 그 차이는 지니계수보다 크지 않아 우리 모두의 고향 친구 같은 녀석이다. 전화 한 통이면 만날 수 있는 것도 닮았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는 이유로 파스타나 치킨처럼 오만해지지 않고 낮은 자리를 지키고 있어서 안쓰러우면서도 감사하다.


짬뽕의 계절, 겨울이 온다. 겨울 음식의 왕좌를 두고 국밥과 싸우게 될 텐데, 누가 이겨도 내게는 승자뿐이다. 입 안을 호도(糊塗)하지 않는 호도(好道), 아무나 이겨라. (끝)




국밥 이즈 커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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