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까미노데산티아고 서른다섯번째날
#서른다섯번째날(2019.11.24)
1.
오페드로우소는 산티아고에서 20Km 전에 있는 타운이다. 오늘도 비와 함께 걸었지만, 이제 비는 축복이다. 모두 건강하게 이곳까지 왔으니까.
아이들은 어제보다 더 들떠있다. 시하는 자꾸 크레덴시알(까미노 패스포트)에 찍힌 35개 스탬프 도장을 확인한다. 보기만해도 기분이 좋단다. 태호는 아빠의 전폭적인 신뢰를 확인하고 매우 UP 상태다. 물 들어온 김에 노 저으라고, 내가 태호와 30분을 정도 걸으면서 진로 상담을 한 결과 MIT 입학을 위한 준비를 열심히 하겠다는 다짐을 받았다. MIT는 하나의 상징이고, 학습과 규칙 따르기에 대해 어깃장을 놓는 태호가 처음으로 “긍정적” 대답을 했다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다.
태호를 설득한 스토리텔링은 앞으로 개발을 기대하는 획기적 기술에 관한 것이다.
앞으로 인류를 구원할 두 가지 기술이 있는데, 아직 해결 실마리를 보지 못했으니 태호가 문제를 해결하는 핵심 과학자가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하나는 전력(일렉트릭 파워)을 전파에 실어서 보내는 무선전력송신 시스템 개발이고, 또 다른 하나는 에너지를 사용하지 않고 물에서 수소 원자를 분리하는 방법 개발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두 가지 중 하나만 발명해도 한반도의 운명을 바꾸고, 개인적인 부와 명예를 보장한다고 말했다.
태호는 귀가 솔깃해지며, 열심히 할 테니 선생님이 자신을 도와달라는 부탁을 한다.
태호에게 이야기를 전달하며 상당히 갈등했다. 부와 명예의 획득을 미끼로 아이의 행동 변화를 도모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에 대한 판단을 쉽사리 내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빠르게 의사결정했다. 태호가 기분 좋은 상태에서 선생님 가이드에 따라 훈련을 잘 하겠다고 다짐을 한 것이 변함없이 지켜질 리가 없는 일이라 보상을 전제로 아이의 동기유발을 자극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2.
시하는 검정고시에 대해 물었다. 시하가 2월 생이라 2021년에 초졸 검정고시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5월 생까지만 2021년 응시할 수 있고, 6월 생 이후로 2022년에 응시해야 한다) 당장 내일 시험 봐도 합격할 것이라 말했다. 실제로 그렇다. 대학도 검정고시로 갈 수 있냐고 묻길래, 고졸 검정고시를 통과해야 하고 대학입학 시험은 별도로 치러야 한다고 말했다.
3.
두 아이는 올해 나와 함께 호주에서 생활하면서 학교를 잠시 떠난 상태다. 내년에는 다시 학교로 복귀할 예정이다. 다니던 초등학교가 아닌 곳으로 터전을 옮길 수도 있다. 나는 기본적으로 공교육 시스템이 무너져서는 안된다고 보지만, 적게는 10%, 욕심을 부리자면 20% 학생이 공교육을 떠나는 상황을 상상한다. 내년부터 부분적인 탈학교 운동을 진행할 것이다. 매체는 <배움여행>을, 조직은 <아빠학교협동조합>을 키우면서 고민과 실천을 고양할 생각이다.
4.
행위의 의사결정을 개체의 판단이 아니라 유전자의 선택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인 유전자>가 시초다. 예를 들면 일개미가 여왕개미에게 복종하고 희생적 서비스를 하는 것은 개미의 계급적 특성 때문이 아니라 일개미가 여왕개미를 돌보는 것이 자신의 유전자를 더욱 퍼뜨리는 결과를 낳는 전략적 선택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여왕개미가 일개미의 선택에 의해 알을 낳는 미션을 수행하는 수동적 지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여왕개미를 여왕으로 묘사하고, 일개미를 희생만 하는 불쌍한 존재로 보는 것은 전적으로 인간의 문화를 반영한 극단적인 자기중심적 판단이다.
신체가 유전자를 운반하는 그릇에 불과하다는 주장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곱씹어 생각의 점도를 올리다보면 유전자의 이기적 경향성으로 생명체의 의사결정을 설명하는 진화생물학의 주장은 20세기 철학적 경향성을 따라 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걸으면서 잡다한 상상실험 덕이다.
19세기중순에 마르크스의 역사발전의 변증법적 유물론이 있었다. 19세기 말에 프로이트의 무의식이 있었다. 20세기에 들어오자마자 아인슈타인의 광양자론이 있었다. 20세기는 마르크스, 프로이트, 아인슈타인 세 거인의 정립에 의해 출발했으면서 동시에 세 거인을 지우는 시간의 적립이었다. 포스트 모더니즘의 이름으로 전부 포장할 수 있었다.
<이기적 유전자>는 1976년에 나온 책이다. 유전자의 이기적 번성 본능을 인정하는 시각과 포스트 모더니즘의 아전인수격 왜곡의 결합이 21세기 초반부 오류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유전자의 경쟁은 이기적인 인간의 모습을 변호하고, 포스트 모더니즘의 변질은 거짓과 기만도 일종의 해석일 뿐이라는 궤변을 변호한다.
5.
나는 줄곧 아이들의 의사결정은 생존에 유리한 방향에서 이루어진다고 판단했다. 이해하기 힘든 아이의 행동은 어른 입장에서 이해하기 힘든 것 뿐이지 아이의 주관적 판단은 최선의 선택이다.
아이의 주관적 판단을 유전자의 번성 본능으로 설명할 수 없다고 본다. 아이들의 이기적 모습은 관계에서만 발생한다. 예를 들어 교실에서 소리를 지르고 마음대로 돌아다니는 아이가 있다고 해보자. 나는 의도적으로 그런 아이가 혼자 있는 공간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 관찰했다.
선생과 친구들이 있는 교실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하는 아이가 혼자만의 공간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단 한번도 하지 않았다. 반복해서 관찰해도 그렇고, 다른 아이를 같은 상황에 놓고 관찰해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아이의 판단은 어리석은 경우가 많겠지만, 타자와 관계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주관적 판단을 한 것이지, 이기적 판단이 특정 아이의 고유한 특성은 아니다.
나는 이 점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6.
상대방의 언행에서 나를 길어올리는 연습이 필요하다. 내가 인식하는 ‘나’는 없고 나를 보는 네 눈을 통하여 ‘나’는 비로소 존재한다는 생각이 존재론적 전회(Ontology Turn)라 불린다. 부분적 탈학교 운동은 존재론적 전회의 입장에서 전개될 것이다.
7.
산티아고콤포스텔라에 가까워 질수록 해발고도가 내려간다. 평지에는 적당한 흑요석이 없어서인가. 산지 쪽 검은 석재기와는 사라지고 모든 집이 붉은 구운 기와를 얹었다. 포르투갈의 집들이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빨강에 가까운 주홍색 기와 지붕의 물결이듯이 평지 갈리시아 지방 집의 지붕도 똑같다.
산티아고는 갈리시아 지방의 중심도시이고, 조금 남쪽으로 내려가면 비고 도시가 나오며, 비고를 지나 남쪽으로 더 내려가면 포르투갈의 바로셀루스가 나온다. 바로셀루스 아래가 포르투이다.
작년에는 포르투까지 걷고 차량으로 리스본으로 이동해서 귀국했는데, 이번엔 산티아고 내일 도착하면 곧바로 기차로 마드리드로 이동해서 호주로 복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