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는 어떻게 희생자가 되었는가
임지현 교수가 <지구적 기억 연대>를 코드로 평생 연구한 내용을 묶은 『기억전쟁』은 충격적이다. 한반도 제노사이드 성격의 제주4.3이나 보도연맹학살에 관심을 놓지 않은 나에게도 방성을 요구하는 망치와 같았다.
임 교수가 책에서 표현한 대로 “20세기 한반도에서 야만은 늘 근대의 단짝이었다.” 한반도의 20세기는 제국주의에 희생한 식민지 조선이 있고, 6.25 한국전쟁이 있으며, 군부 세력이 권력을 거머쥐려고 자행한 5.18 광주의 비극이 있었다. 나는 여기에 더해서 2014년의 세월호도 학살이라고 굳게 믿기 때문에 한반도의 야만은 20세기에서 그치는 현상이 아니다.
인터내셔널이 아니라 트랜스내셔널로서 전 지구적 제노사이드는 높이 올라 조망한다면 한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비극이다. 근대와 자본주의와 과학기술이 결합하여 19세기 식민지 제노사이드에 이어 20세기 인류사의 전무후무한 수천 만의 학살과 이번 세기 국지전과 전면전을 연결하는 끈은 기억이다.
더글러스 맥아더(Douglass MacArthur)의 아버지 아서 맥아더(Arthur MacArthur) 장군이 지휘한 미군 4,000명이 필리핀 선주민 25만~75만여 명을 학살한 것으로 추산된다. 이 전쟁을 지휘한 30명의 미군 장군 가운데 26명이 이미 미 서부에서 아메리칸 인디언 학살로 군 경력을 쌓은 원주민 학살의 베테랑들이었다. 아서 맥아더 장군은 “백인과 달리 원주민들은 상처를 회복하는 능력”이 없어서 많이 죽었다며, 미군의 선주민 학살을 변호했다. (p. 193)
임지현 교수는 『기억전쟁』 마지막 문장을 이렇게 썼다.
“기억은, 산 자와 죽은 자의 대화이다.”
기억이 없다면 과거가 없다. 따라서 권력을 쥔 자는 기억을 지우거나 전혀 다르게 편집한다. 『기억전쟁』의 부제가 <가해자는 어떻게 희생자가 되었는가>로 붙인 이유이다.
제노사이드하면 먼저 떠오르는 홀로코스트가 있지만, 『기억전쟁』을 통해 아르메니아 제노사이드, 남아공 보어전쟁 제노사이드, 히틀러 외 무솔리니와 스탈린의 제노사이드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얻었다. 사실 ‘정보를 얻었다’는 표현은 많이 무색하다. 모든 장의 모든 내용이 끔찍한 공포이며 동시에 나의 양심을 마구 찌른다.
『기억전쟁』에서 나치의 홀로코스트가 가장 많은 내용을 차지한다. 상상을 넘는 참극의 기억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다음 문장이다.
“나치가 만든 이 비인간적인 세계에서 이성은 도덕의 적이었다.”
내 머리를 뒤흔든 책 속의 한 예를 소개한다.
비스와(Wisła)강을 가로지르는 바르샤바의 키에르베츠 다리 위에서 부랑자인 듯 보이는 지저분한 유대인 소년이 구걸을 하고 있었다. 지나가던 폴란드인이 불쌍히 여겨 적선을 했다. 그런데 이 모습을 어떤 독일군이 목격하고는 적선하던 폴란드인을 확 덮치더니, 아이를 강물 속으로 던져버리라고 명령했다. 거부하면 둘 다 쏘아 죽이겠다는 협박과 함께. 그 순간에도 독일군은 논리적으로 설득하는 걸 잊지 않았다. “네가 이 유대인 거지를 도울 방법은 없다. 유대인은 게토 밖에 있으면 안 되는데 이 아이는 여기에 있으니 죽음을 피할 길이 없다. 이 아이는 어차피 내가 죽일 거다. 네가 이 아이를 강으로 던진다면 너는 보내주겠다. 안 그러면 너도 죽는다. 아이를 빠트려 죽이거나 너도 같이 죽거나 둘 중 하나다. 셋 셀 때까지······.” 혼비백산한 폴란드인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동정했던 어린 유대인 거지를 다리 난간 너머 강물 속으로 던져버렸다. 그러고는 독일군의 격려를 받으며 무사히 집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이틀 후 목매 자살했다. 그가 자살한 이유를 제대로 알 길은 없다. 인간의 존엄성을 잃어버린 데 대한 수치심과 자기모멸감 때문인지, 어린아이를 강물 속으로 던져버린 데 대한 죄책감 때문인지, 아니면 주변 사람들이 따가운 시선을 보낸 때문인지, 그도 아니면 그 모든 게 복합적으로 작용한 탓인지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이다. (p.277)
읽는 순간, 내가 어린 유대인 거지를 강물에 던지라는 강요를 받았다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떠올렸다. 또한 동시에 보름 전 투신 자살한 OO의 기억으로 옮겨갔다.
OO는 초4 일 년을 나와 함께 호주 태즈매니아에서 보냈다. ADHD 딱지를 달고 사실상 학교에서 추방돼서 나에게 의뢰가 들어온 아이다. 행복한 일 년을 보내고 귀국해서 원래 다니던 집 근처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가까운 중학교도 마치고 올해 고등학생이 됐다. 지난 5.23 OO는 스스로 삶을 마쳤다. OO 엄마로부터 소식을 듣고 달려갔더니 응급실 소생실에 시신으로 누워있었다. 내 아버지 어머니 염을 할 때 지켜만 봤지 만지거나 끌어안지 않았는데, 시트가 내려가 얼굴이 나온 OO를 보자 볼을 어루만지고 눈코입을 문질렀다. 나도 모르게 저절로 그런 행동을 했다. OO 엄마는 가슴 아래는 볼 수 없도록 연신 내려가는 시트를 위로 올렸다. 종아리와 발도 밖으로 나왔다. 노란 물감에 빠진 것처럼 발과 종아리가 누랬다. 만져보니 아주 차갑다. 발이 시려워 구천을 헤매지 않을까 걱정한 것도 아닌데 자꾸만 발과 종아리를 문지르며 내 체온을 나눠주려고 했다. 이 또한 의도한 것이 아닌데 나도 모르게 그런 행동을 했다.
장사를 치르고 나서 생각해보니 OO의 시신을 어루만진 내 행동을 어색하게 느꼈다. 스스로 묻고, 원통하고 억울해서 그랬다고 응급실 상황을 복기하면서 내 스스로에게 말했다. 하루가 가고 또 하루가 가고, 더구나 나는 『기억전쟁』을 읽고 있었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내 기억은 편집됐다. 호주 태즈매니아의 일 년은 고생의 연속이었다. 그럼에도 OO의 건강한 모습에 자부심을 느끼며 귀국했다고 기억한다. 그 기억이 편집된 것이다. ‘내가 고생해서 아이가 치유되고 더 성장하게 만들었다’고 기억의 방향이 잡혀야 한다. 고민 끝에 결정한 것은 아니고 자연스럽게, ‘나도 모르게’란 부사어를 동원해서 기억을 편집했다.
내가 일 년 동안 잘 키워서 집으로 돌려보냈는데 험한 세상과 주변 인물들이 아이를 죽음으로 내몰았으니 ‘나는 분노하노라’-이런 의식의 흐름이 아니겠느냐고 현타가 왔다. 현타 이후에 OO에 죽음에 나도 일조한 것이 있다는 내적 고백이 올라와 매우 힘들다. 결국 나도 ‘너는 현재 여러모로 부족하니 성실하게 경쟁력을 연마하여 세상에서 성공하라’고 세뇌한 것이다.
나치가 만든 이 비인간적인 세계는 지금 여기 내가 딛고 선 세계이다. ‘죽지 않으려면 너는 네 곁의 사람을 죽여야 할 거야’를 강요당하는 세계 말이다. 매일 초등학교 교실에서 아이들을 만나는데 어린이들에게 이미 깊숙이 ‘죽지 않으려면 죽여야 돼’가 머리를 가득 채우고 있다. 아이들은 자신이 태어난 병원에서 신생아가 바뀌어 낳아 준 엄마가 따로 있다면, 먼저 자신의 생모가 부자인지 가난한지 알아보고 제자리로 돌아가겠다고 말한다. 아이들 표정은 진지했다.
박정희는 ‘조국의 근대화’를 말했지만, 전두환이 ‘정의사회구현’을 말했지만, 윤석열이 ‘공정과 상식’을 말했지만 모두 권력자의 언어일 뿐이다. 기표와 기의는 얼마든지 다시 연결할 수 있다. 임지현 교수는 독일의 홀로코스트에 대한 반성조차 부족한 부분이 있다고 지적한다. 그런데 한반도 남쪽의 경우 반성은커녕 ‘그럴 수도 있지. 그까짓게 대수냐?’-여전히 이 수준이다. 내 걱정은 여전히 필요하다면 의도적으로 집단을 죽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해방 이후 그 어떤 집단 살인에 대해 진상규명된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제주 봉개동 4.3평화공원에도 밝혀진 것이 별로 없다고 기록돼 있다. 광주 금남로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도 규명돼야 하는 숙제가 많다고 전시물에 써놓았다. 김현희로 상징되는 KAL 추락사건도 그렇다. 천안함 참사도 그렇다. 세월도 마찬가지다. 이태원 참사와 채 해병 죽음까지 생각하면 머리가 아득하다.
기억은 유일한 동아줄이지만 기억의 편집을 막을 길이 없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역사교육이다. 『기억전쟁』은 정말 소중한 역사교재라고 생각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의 역사적 기억은 편집되지도 않았다. 권력자가 사건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계획적인 집단 살인이 아니라고만 하기 때문이다. 차라리 잘된 일이다. 지금이라도 진상규명을 하라고 압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적 특수성이라 할 수 있다.
“아우슈비츠로 가는 길은 증오로 건설되었지만 무관심으로 포장되었다”라는 이언 커쇼의 지적은 사태의 정곡을 찌른다. (p.143)
한국의 권력자는 부인(否認)과 왜곡보다 무관심을 유도한다. 즉 기억의 편집 이전에 기억 자체를 지우려고 한다. ‘했다’가 아니라 ‘한다’라고 말하는 것은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1986 서울 아시안 게임의 개막을 불과 1주일 앞두고 김포공항에 폭탄테러가 일어났다. 다음 해 KAL 추락사고는 대통령 선거와 맞물려 세상에 떠들썩했지만, 김포공항 폭탄테러는 5명이 죽고 38명이 다친 대형사고였지만 쉬쉬하며 숨기기 바빴다. 아랍 테러리스트의 소행이라고 추측한다는 어이없는 당국의 발표가 한 번 있었고, 언론도 추가 보도하지 않았다. 이런 식이다. 기억하지 않으면 사건은 지워진다.
여전히 80년 광주학살은 도를 넘는 시위대의 폭동에 대해 투입된 군인의 과도한 진압에 따른 우연한 비극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천안함도 북한 잠수함 어뢰 공격이라고 말했지만 이명박 정부는 그냥 흐지부지 지우려고만 했다. ‘다 알면서....’ 이런 분위기로 넘어갔다.
11년 전 세월호 비극은 그동안 과정을 복기해보면 코미디에 가깝다. 눈물 줄줄 흘리며 관람하는 코메디. 이재명 대통령이 세월호를 언급하며 ‘안전’ 코드로 끌고 가는 분위기로 보여 내 속이 타고 있다.
광주에 대한 사회적 기억이 전두환 일당에게만 학살의 책임을 전가하는 식으로 구성되는 것은 너무 단세포적이다. 국회 청문회에서처럼 자꾸 발포 명령자를 가리는 문제에만 천착하면, 광주에 대한 기억은 정치권에서 몇몇 불한당을 탄핵하고 성토하는 데서 그치고 말 것이다. 너무도 자명한 학살의 책임 소재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정치권의 지루한 논쟁에는 정치공학의 냄새가 짙다. 어느 정당이 그 악마들의 맥을 잇고 있는가 하는 도덕적 성토가 왜 많은 사람이 아직도 그 정당에 표를 던지는가 하는 정치철학적 물음을 덮어서는 곤란하다. 그래서는 ‘민주주의를 민주화’한다는 고민을 담기 어렵다. (p.145)
『기억전쟁』에서 ‘밑줄쫙’을 모아서 프린트했더니 A4 11쪽이 나온다. 『기억전쟁』을 추천한 분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이 책을 모르고 지나갔다면.... 생각하니 정신이 아득하다. 임지현 교수의 귀한 기록을 만나서 정말 다행이다.
임지현 교수는 죽은 자와 산 자를 연결하는 영매 역할을 자신의 포지션으로 삼았다. 세상을 등진 OO가 납골당에서 내게 물었다. “선생님은 이제 무엇을 하며 살 건가요?”
기억은 전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