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 날 덕풍계곡 트레킹
본격적인 덕풍계곡 트레킹에 나섰다. 아이들은 난생처음으로 대자연의 품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의 존재가 이미 자연의 일부다.
기성세대는 인공물이 사실상 신체화되었다. 신체의 연장 차원에서 인공물을 매개체로 이용하는 것을 문명이라 한다. 호불호의 문제가 아니다. 옷이나 신발도 신체화된 인공물이고 언어도 마찬가지다. 10개의 사과를 5명에게 골고루 나누어줄 방안을 찾는 것도 인공물의 장착으로 가능하다. 수학이라는 인공물이다. 요즘은 스마트폰이 신체화된 인공물로 자주 거론된다.
교육자, 교사의 이름표를 단 나는 아이들이 인공물을 장착해서 신체의 연장을 꾀하도록 한다. 이를 교육과정이라고 한다.
한 아이가(만 9세 3학년) 징검다리 돌덩이를 무시하고 운동화를 신은 채 계곡물을 밟았다. 물은 발목 위까지 올라왔고 물을 건너기에 별 문제없는 수준이다. 운동화는 완전히 젖었다. 딱 세 걸음만 주의해서 돌을 밟았더라면 뽀송한 발이었겠지만 이후 하루 종일 젖은 신발이 불편함을 줄 것이다.
하지만 그건 나만의 판단임을 곧 알게 됐다. 아이는 신발을 벗었고 맨발로 날카로운 바위가 즐비한 계곡 트레킹을 이어갔다. 나중엔 손에 든 운동화가 거추장스러웠는지 계곡물에 획 집어던지기까지.... 동행한 여자 선생님이 계곡에 뛰어들어 간신히 운동화를 건져냈다. 물살이 세서 조금만 주저하면 운동화를 찾지 못할 게 뻔했다. 아이는 당연히 꾸중을 들었다.
"이 바보야~"
이런 말이 절로 나온다. 보통 이런 상황이라면 지능의 문제를 떠올린다. 발이 물에 빠지는 순간을 목격했는데 아이가 돌을 밟다가 실수한 것이 아니고 망설임 없이 당당하게 물을 밟고 지나갔었다. 계곡물에 운동화를 던지면 잃어버리게 되는 걸 모르는 게 아니고 잃어버린 이후를 상상하지 않는 것이다.(못하는 게 아니다)
이 아이에게 신발이 완전한 신체화가 되지 않았다. 태어나서 9년 동안 생존하면서 운동화가 꼭 필요한 신체의 일부가 될 만한 계기가 없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보통의 아이들보다 훨씬 자연 상태에 머물고 있다. 이런 상태를 쉽게 발달 개념을 동원해서 설명한다. '발달이 덜 됐다'라고 말하면 간단해진다.
그러나 이 아이는 다르게 신체의 확장을 가져온 것이지 신체 확장이 덜 된 게 아니다.
아이가 충분한 말 꾸러미를 가지지 못해서 그렇지 아이는 억울한 일이다.
"목표를 니들이 일방적으로 정해놓고 그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장애아로 내모는 것에 동의할 수 없어"
이게 말을 제대로 장착한 아이의 항변일 것이다.
(2017.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