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라 밴 브레닉스낙의 <혼자 사는 즐거움>
브런치북에 글을 올린 지 벌써 10주가 되었다. 매주 약속된 날에 글을 올린다는 게 큰 부담이 되었는데, 이제 조금 익숙해진 듯하다. 요즘은 글을 읽는 사람보다 쓰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그만큼 글쓰기가 대중화되었다는 뜻일 텐데, 내밀한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일이 여전히 쉽지 않다. 나 역시 용기가 필요했고 쓴 글을 발행할 때는 묘한 긴장감도 생긴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단순하다. 그저 내 생각을 정리해서 글을 쓰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함으로써 지금보다 조금 더 행복하기를 바랄 뿐이다. 나도, 내 글을 읽어 주시는 분들도.
'정말 읽고 싶지만 아직 출간되지 않은 책이 있다면, 당신이 직접 써야 한다.
- 토니 모리슨
<빌러비드>와 <재즈>를 통해 지적 책 읽기의 즐거움을 제공한 토니 모리슨의 말을 귀 기울여보라. 글 쓰는 사람, 작가의 매력이 느껴지지 않는가? 나는 내가 글을 잘 쓰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나를 포함해 모두는 원하든 원치않든 글 쓰는 사람이다. 메모도 하고 편지도 쓰고 일기도 쓴다. 다만 다른 사람을 위한 글인지 자신만을 위한 글인지의 차이일 뿐이다. 한때는 책장의 무수히 많은 책이 누군가의 마음에 와닿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굳이 나까지 책을 쓰는 사람이 될 이유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가진 적도 있다. 요즘 생각이 바뀌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책보다는 온전히 나 자신을 위한 글을 쓰고 싶다. 책 한 귀퉁이, 수첩 어딘가, 컴퓨터 폴더 속에 흩어져 있던 나의 생각들을 한 곳으로 모으는 것,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은 오롯이 나를 위한 작업이다.
브런치북 1권을 마치면서 선택한 책은 사라 밴 브레스낙의 <혼자 사는 즐거움>이다. 부제는 <누구와도 함께할 수 없는 나만의 행복 찾기>이다. 원제는 <Simple Abundance>이다. 출간된 지 30년이 다 되어가고 번역서도 2011년에 나왔으니 오래된 책이다.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저자가 작가가 된 계기가 지금의 나와 닮아 있기 때문이다. 또한, 책이 전하는 메시지가 출간 당시보다 오히려 지금 이 시대에 더 절실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아내, 엄마 또는 이웃을 위해 살아왔던 저자는 마침내 자신의 내면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결심한다. '자신이 가장 원하고 자신이 누리고 싶은 삶을 살겠다. 책을 쓰는 작가가 되겠다.' 오직 자신만을 위해 자신의 에너지를 완전히 쏟으며 저술한 그 책은, 이후 밀리언셀러의 반열에 오른다.
책은 묘원 산책하기, 소중한 추억 수집하기, 정지하는 법 배우기, 거울 앞에서 명상하기, 빛났던 시절 발굴하기 등 일상의 소중함을 소개한다. 우리가 매일 하는 일들이다. 중요한 것은 '행위'가 아니라 그것을 대하는 '태도'이다.
모두가 잠든 밤에 등불을 켜고 책을 읽다가 마치 나만을 위해 쓰인 듯 눈에 쑥 들어오는 문장을 만난다. 혼자서 차를 운전하다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랫말에 가슴을 적시기도 하고, 발코니에 홀로 앉아 차를 마시며 듣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위안을 얻기도 한다. 어떤가? 너무 쉽지 않은가? 그저 일상이 주는 선물을 알아차리는 것, 마음의 눈을 뜨고 다르게 보는 것만으로도 인생은 달라진다.
나에게 일상의 소중함에 대해 영감을 준 건 대학시절 활동했던 극예술연구회 동아리에서 활동하며 읽었던 손턴 와일더의 <우리 읍내>이다. 본 책의 '묘원 산책하기'에서도 소개하고 있는 손턴 와일더의 <우리 읍내>는 어쩌면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아들과 딸의 성장, 사랑과 결혼, 그리고 죽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지극히 평범한 삶과 죽음의 문제를 담담하게 보여주며 유한한 우리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메시지를 전한다. 나의 평범한 오늘이 묘원에 누워있는 사람이 간절히 바랐던 미래였음을 우리는 늘 잊고 지낸다.
기차를 세우는 힘, 그 힘으로 기차는 달린다
시간을 멈추는 힘, 그 힘으로 우리는 미래로 간다
무엇을 하지 않을 자유, 그로 인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안다
무엇이 되지 않을 자유, 그 힘으로 나는 내가 된다.
(중략)
씨앗처럼 정지하라, 꽃은 멈춤의 힘으로 피어난다
- 백무산, <정지의 힘> 중에서
우리는 오랜 세월 앞만 보고 달려왔다. 그렇게 길들여졌고 그렇게 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배워 왔다. 그래서 우리 세대는 늘 성실하고 열심히 살았다. 그래서 여행을 가더라도 뭔가 의미가 있어야 하고, 하나라도 보고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 우선했다. 쉼이란 없었다. 게으름은 죄악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정지하는 힘>의 가치와 쉼의 소중함을 깨우쳐야 한다. 우리는 왜 달리는가? 그 이유를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시인 백무산은 멈추어야 우리가 달리는 이유를 안다고 역설한다. '씨앗'이 '꽃'이 되듯, 멈춤의 힘으로 삶의 꽃을 피울 수 있다. 은퇴 이후의 삶이 불안한 이유는 돈, 건강, 관계의 소멸 등 여러 가지 있으나 근원적인 것은 멈춤, 쉼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당당하게 혼자서 밥 먹기, 경치 좋은 카페에서 책을 읽으며 커피 마시기, 혼자 숲 길이나 도심을 산책하기, 부드러운 음악이 흐르는 바에서 술 한 잔 기울이기 등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하다. 스스로 자신을 가두지 마라. 남을 의식하지 마라. 아무도 나에게 관심이 없다. 밥알 하나하나가 씹히는 느낌과 맛을 음미해 보라. 숲 길을 걸을 때 스치는 바람, 돌멩이 하나, 손 끝에 닿는 나뭇잎, 하늘, 강 모든 것을 느껴보라. 혼자 만의 시간을 통해 예전에 미처 발견하지 못한 많은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은퇴 후 혹은 인생의 전환기를 맞이한 우리 앞에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혼자만의 시간'에 노출된다. 혼자만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당신의 삶이 달라질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익숙해져야 한다. 그리고, 혼자만의 여유와 쉼을 통해 충전된 힘으로 모임에 가 보시라. 모든 사람이 다르게 보일 것이다. 조금은 따스한 눈빛으로 상대의 말을 들어주는 여유와 배려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오롯이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자기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하지만 그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나를 지지해 주는 주변의 이해와 지원이다. 저자가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아내가 글을 쓸 때 가장 행복해 보인다는 것을 알고, 그 시간을 방해하지 않으려 했던 남편의 배려가 있었다. 저자는 혼자 산다는 것이 단순히 독신으로 산다는 의미가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 삶 속에서 고유한 자신만의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추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은 본래 혼자다. 하지만 함께 함으로써 혼자만의 즐거움을 더 크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지혜로운 존재이다. 복잡한 관계 속에서 혼자만의 즐거움을 찾아보라.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믿고 사랑하며 내면의 목소리에 기울여라. 당신이 경청하는 동안 세상과 관계 또한 당신을 응원하게 될 것이다.
'때론 같이, 대론 혼자', 그렇게 우리는 비로소 온전한 나 자신으로 살아가는 법을 배워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