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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지이 Mar 26. 2019

너는 다 맞힌 문제집이었어, 태어날 때부터.

품 안의 빨간 색연필을 내려놓으며



나는 문제집을 버리고 싶어 푸는 사람이었. 



수능과 임용고시를 준비할 때, 내가 푼 문제집은 무수히 많았다. 채점을 끝나면 덤덤 동그라미와 가차 없작대기로 울긋불긋해진 문제집 앞에 나는 늘 커터  들이밀었다. 틀린 문제 도려내기 위해서였다. 결국 문제집은 구멍이 숭숭 뚫려 너덜너덜해졌고, 금세 폐휴지가 되어 버려졌다. 책장이 문제집으로 가득 차는 게 싫었고, 다 푼 문제집이 쌓인다고 머릿속 지식도 함께 쌓인다 착각하는 것도 싫다.



반면에 려낸 오답들은 공책소중히 붙였다. 풀이 과정이 필요 없는 것들은 구멍을 뚫어 과목별로 묶다. 문제집을 풀 때마다 오답은 또 나왔고, 그러면 나는 또 오답을 도려냈다. 시험 전 날, 내 손에는 무수한 오답 더미가 들려 있었다. 오답을 다시 틀리지 않으면, 시험 잘 보게 될 것 같았다. 오답을 모으고 풀고, 또 풀면 세상의 모든 오답이 사라지는  꿈꿨.






그러다 아기를 낳았다. 학생 또는 직장인으로 달려왔던 인생에 생긴 변수였다. 육아는 새로운 트랙에서 뛰는 또 다른 달리기 같았다. 육아서는 매일 올바른 방향과 지침을 제시했, 인터넷은 매일 새로운 정보 도전 과제를 던져줬다. 실수하고 싶지 않아서 늘 신중했고, 완벽하지 못해서 늘 완벽을 흉내 냈다. 하지만 아기가 이유식을 거부하기 시작한 어느 날, 나는 잘 달리다가 다리를 삐끗한 경주자가  버렸다.



이유식 재료를 바꾸고, 질감과 농도도 리하고, 간도 해봤지만 소용없었다. 시판 이유식도 효과가 없었다. 결국 이유식대체 음식을 만들다. 어른이 먹는 음식과 유사하나 간이 세지 않고, 잘게 썰거나 무르게 조리한 음식이었다. 먹는 재미를 느끼라고 손으로 간단히 집어 먹을 수 있는 것들도 준비했다. 아기는 늘 자기 취향의 달고 부드러운 것 골라 먹었다. 빵, 국수, 두부, 치즈, 고구마, 바나나, 복숭아와 같은 것들.



하지만 쌀알이 들어간  무조건 거부였다. 죽으로 줘도, 전으로 부쳐줘도, 주먹밥을 만들어줘도 좋아하지 않았다. 고기도 잘 먹지 않았다. 불고기를, 동그랑땡을, 떡갈비를 만들어줘도 마찬가지였다. 생후 6개월이 되면 모체로부터 받은 철분이 바닥난다는 말에 조급해. 그래서 밥과 고기 떠먹여 주기로 했다. 하지만 수저 앞에서 아기는 질색을 하며 입을 다물었다. 음식 거부는 더 심해져서, 좋아하는 음식마저도 숟가락에 담기면 먹지 않는 지경 다. 매번 식사 때마다 부엌은 음식물 범벅이 된 전쟁터였고, 먹이고 싶은 걸 충분히 먹이지 못한 나는 매번 패잔병이었다.



고민 끝에, 잘 먹지 않는 아이들에 대한 고민 상담을 해주는 인터넷 카페 찾았다. 비슷고민을 하는 엄마 글을 쭉 읽다가, 카페 주인이 남긴 댓글 함께 읽게 되었다. 정리하자면 이런 내용이었다.



1. 꼭 밥이 아니라도 된다. 외국에서는 고구마 감자도 식사 대용 식품이다.
2. 고기를 천천히 먹는 아가도 있다. 계란, 생선이든 뭐든 잘 먹는 것으로 먹인다.
3. 억지로 주면 더 거부하니, 좋아하는 것 위주로 주어라.

-네이버 카페 <안먹는아이연구소> 댓글 중에서



조금 안심이 됐다. 이 조언에 따르면, 아기는 밥을 먹지 않아도 됐다. 빵과 국수를 잘 먹고, 고구마도 잘 먹으니까. 고기 또한, 먹지 않아도 됐다. 두부, 생선살, 새우를 잘 먹, 우유 자주 마시니까. 잘 먹지 않는 음식만 생각하다 보니, 잘 먹는 음식이 많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영유아 검사 결과, 키와 몸무게 상위 30% 안에 든 아기였다. 그자기가 좋아하는 음식을 먹으며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아기가 숟가락을 거부했던 이유도 사실 간단했다. 엄마가 입 앞에 들이미는 숟가락에는 늘 아기가 싫어하는 것만 담겨있기 때문이었다. 음식을 받아먹는 일이 아기에게 즐거웠을 리가 없었다. 좋아하는 음식은 알아서 먹을 테니, 평소에 잘 안 먹는 음식을 권하려던 내 생각은 애초부터 잘못된 거였다.



나는 맞은 문제는 버리고, 틀린 문제만 모으던 오랜 습관을 육아에도 적용하고 있었는지 몰랐다. 잘 크고 있다는 사실에 만족하지 않고, 늘 교정할 부분을 찾아 눈을 크게 뜨고 살피고 있었다. 틀린 것은 중요하게 생각하고, 맞은 것은 당연한 것이라 여기던 나는, 돌이 갓 지난 아기를 대상으로 벌써부터 오답노트를 작성하기 시작한 거였다.






나는 학교에서 아이를 가르칠 때 오답노트를 쓰는 교사였다. 아이가 가진 오답은 삐뚤빼뚤한 글씨이기도 했고, 틀린 맞춤법이기도 했고, 손으로 헤아리지 않으면 답을 알 수 없는 덧셈이기도 했다. 거꾸로 붙인 스티커이기도 했고, 순서가 틀린 율동 동작이기도 했고, 정해진 영역을 벗어난 색칠 습관이기도 했다. 때로는 신발을 혼자 신지 못하는 것이기도 했고, 이를 닦지 않는 것이기도 했고, 수업 중에 돌아다니는 것이기도 했다.



아이는 선생님이 자기 인생의 오답노트를 갖고 있음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왜냐하면 선생님은 늘 자기가 잘 모르는 것, 자주 헷갈리는 것, 매번 틀리는 것을 들고 와서 다시 해보자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항상 "틀려도 괜찮아!" "이거만 알면 돼!" "할 수 있어!"라는 말용기를 주었지만, 틀려도 괜찮은 건 세상에 없었다.



아이들은 빨간 색연필을 싫어했다. 채점을 할 때 빨간 색연필을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분홍 색연필로 바꿨더니, 나중에 분홍 색연필도 싫어하게 됐다. 또 아이들은 틀린 문제에 그어지는 작대기를 싫어했다. 그래서 나는 틀린 문제를 작대기 대신에 작은 별 모양으로 표시했다. 그리고 "별표는 틀린 게 아니라 중요하다는 뜻이야."라고 말해줬지만, 아이들은 표시를 지우개로 지우려 안간힘을 썼다. 색연필은 지우개로 완전히 지워지지 않기 때문에 별은 뭉개져서 지저분한 얼룩으로 남았다.



아이들은 "틀려도 괜찮아."라는 말을 "틀려도 선생님은 혼내지 않아."쯤으로 해석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혼내지 않는다고 해서, 틀리는 모습을 누군가에게 들키는 불쾌함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렸다는 사실을 다시 언급하는 것조차 싫어했다. 그들에 아무 노력을 하지 않아도 다 맞수 있는 문제가 필요했다. 자기 존재 자체가 정답인 그런 문제가 필요했다. 



예전에 아프리카의 가젤은 사자보다 더 빨리 달리지 못하면 잡아 먹히니까 달리고, 사자는 가젤을 앞지르지 못하면 굶어 죽으니까 달린다는 이야기를 읽고 숨이 막혔던 기억이 난다. "네가 사자이든 가젤이든 마찬가지다. 해가 떠오르면 달려야 한다."는 문장은 작가가 진심으로 쓴 것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잔인하게 느껴졌다. 이제는 해묵은 자기 계발서 <마시멜로 이야기>에 동의하지 않지만,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방식동물들과 다르지 않 것 같다.



늘 피곤했다. 오늘 이 문제를 다 풀었다 해다음 시간에  문제를 풀어야 했다. 오답노트를 쓰면 그 문제는 다시 틀리지 않겠지만, 다음찾아 올 문제는  어려워서 틀릴 수밖에 없었다. 이런 무력함은 만나는 아이들에게도 들통나기 마련이었다. 실망한 표정, 체념 섞인 한숨과 혼잣말은 재채기처럼 터져 나왔다. 이를 애써 감추려 얼굴에는 작위적인 친절과 거짓 웃음이 다. 아이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어른을 만족시키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하거나, 어른을 불행하게 한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한다면, 큰일이었다. 난 아이들에게 큰 죄를 저지르고 있었던 셈이다.



찌든 삶의 패턴을 아이에게 물려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나는 멈추는 법을 연습해야 하는 거였다. 달고 부드러운 음식이 소화도 잘 되는 것처럼, 가끔은 맞출 게 뻔한 쉬운 문제를 풀면서 게으르고 여유롭게 살 줄도 알아야 했다. 그리고 산더미 같이 푼 문제집을 바로 버리지 않고 옆에 쌓아 줄도 알아야 했다. 살면서 틀린 것보다 맞은 것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사실을 매일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서.



그리고 가끔은 소풍 가는 날처럼 사는 것도 필요했. 아이들 무것도 배우지 않아도 되는 시간가장 크게 웃었다. 어디에서도 배운 적 없는, 누구도 가르칠 수 없는 웃음이었다. 자기 영혼 날 것 그대로의 모습으로 나대고, 소란 떨고, 흥분하고, 춤추고, 어지럽히고, 돌아다니고, 날갯짓했다. 좋아하는 것을 먹고,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고, 좋아하는 놀이를 했다. 그뿐이었다. 그 시간은 결코 낭비가 아니었다.



처음부터 어른이 아니었던 나도 아이들과 똑같이 타고난 운명이 있었다. 태어날 때부터 가동된 '행복할 운명'이었다. 그건 갓 태어난 아기를 품에 안았던 날, 내가 확신한 사실이었고, 갓 태어난 나를 품에 안았던 날, 내 어머니가 확신했을 사실이었다. 그 운명은 채점할 필요가 없기에 우리는 아무 조건 없이 행복해도 괜찮았다. 문제 표시하듯 동그랗게 웃어도 괜찮았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다 맞 문제집이니까, 항상 품 속에 있던 빨간 색연필은 가끔 내려놓아도 괜찮은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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