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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지이 Aug 16. 2019

아이가 보물이라면 많을수록 좋은 걸까

특수교사 or 아기 엄마가 정원초과를 대하는 자세






초등학교 특수학급의 법적 정원은 총 6명이다.



장애가 있는 아이를 가르치는 건, 손이 4~5배 더 들어가서 그렇다. 하지만 법으로 보장하는 인원만 특수학급에 들어오리라는 보장은 없다. 한 학교에 장애를 가진 학생이 끼워 맞춘 것처럼 딱 법적 정원만큼 존재할 리 없으니까.



입학 때부터 학급에 들어오는 경우도 많지만, 뒤늦게 발견는 경우도 있고, 전학을 오기도 한다. 정원이 초과하더라도 받아준다. 학급을 증설하면 되지만, 그게 간단치 않다. 학급 편성, 교사 배치에 필요한 행재정적 절차가 꽤 복잡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가 생기면 생기는 대로 당분간은 교사가 책임지게 되어있다.



6명이 8명이 되는 , 작은 차이가 아니었다. 두 명만 추가돼도, 행성 두 개를 짊어진 것 같은 무게감이 느껴졌다. 만약 한 명은 1학년 시각장애 학생이고, 한 명은 6학년 청각장애 학생이라면? 그들이 학년도, 장애 종류도, 능력과 특성도 다른 6명과 한 교실에서 수업받아야 한다면? 극단적인 예이긴 하지만, 과밀학급어마어마한 곤란다.



발령받은  학교에서 나는 과밀학급을 맡았다. 특수학급이 없는 학교에 취학통지서를 받은 아이들이 우르르 내게 몰려왔다. 엘리베이터 없는 학교에 갈 수 없는 휠체어를 탄 아이들도 우르르 왔다. 당시 쓸 수 있는 모든 보조 인력을 총동원해도 힘에 부쳐서, 학부모의 도움까지 받아야 했다. 때로는 원성을 살 때도 있었다. 신규 딱지를 벗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일처리에 융통성 없는 시기였다.



어느덧 5년이 지나, 나는 두 번째 학교로 옮다.  학교엔 학생 수가 적었고, 처음엔 5명을 맡았다가 도중에 1명이 더 채워서 6명이 되었다. 얼마나 가뿐했는지 모른다. 학생의 장애 정도가 심하지 않았던 것도 있지만, 첫 학교에서 좌충우돌하며 터득한 노하우가 빛을 발하면서 일이 처음으로 재밌다고 느껴지던 시기였다. 



그래서인지 준비된 학생 책상이 꽉 채워져 있어야 교실이 교실답고 교사는 교사다워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대일의 과외 같은 수업보다 여러 명과 알콩달콩 꾸려나가는 그룹식 수업이 편했다. 학생 면면이 다양하면 다양할수록 교실이 활기를 띠었다. 학년과 장애 종류가 다르기 때문에, 학생마다 서로 다른 역할을 줄 수 있었다. 과제를 먼저 끝낸 아이들급우들을 도와주거나 정리를 거들었다.



여유가 생겨서였을까. 나는 과밀학급에 대한 두려움이 줄었다. 당시 학교는 낙후된 지역에 있어서, 가정 형편이 어렵거나 부모에게서 방치된 아이들이 많았다. 조기에 발견해서 처치해야 할 문제 그대로 가지고 입학한 아이들이 학교생활에 곤란을 겪고 있었다. 나는 학교 사회복지사님과 힘을 합쳐 특수교육대상자를 발굴(?)하기 시작했다. 밥 먹듯 결석을 하게 하고도 내버려 두는 부모도 있었고, 아이의 문제를 인정하지 않는 부모도 있었다. 하지만 아이가 막다른 곳에 있을 때 그를 향해 내민 단 하나의 손길을 거절할 부모는 없었다.



그러다 보니 인원점점 늘어났다. 내가 근무할 때는 그나마 양호했으나, 후엔 넘치는 인원을 감당하지 못하고 3학급의 특수학급으로 증설되었다. 과밀학급에서 고생한 후임 특수교사에게 미안했지만, 아이 조기에 발견하고 지원한 것 후회되지 않다. 출석일수가 부족한 아이를 간신히 붙들어 무사히 졸업시킨 것, 학습장애지만 3학년이 되기 전에 한글을 알게 한 것, 특수학급 학생이 학교폭력가해자나 피해자가 되지 않게 무난히 막은 것은 후회할 일이 아니니까. 오히려 보호막 역할을 잘 해왔다고 스스로 칭찬할 일이었다.





                                       

현재 나는 아이를 낳고 육아 휴직 중이다. 현장을 떠나 있어서 그런지, 아이들과 복작복작 하루를 보내던 교실이 때로 그립기도 하다. 과밀학급을 맡은 당시엔 힘들었지만, 예쁜 아이들을 하나라도 더 만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한때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아이들이 보물이라면 많을수록 좋은 것 아닐까.



6개의 보물로 만족할 수 있지만, 하나하나 더 늘어날 때마다 짐이 늘어나는 게 아니라 보물이 늘어나는 것 아닐까. 고생 끝에 얻게 되는 깨달음이라는 게 있다면, 아마 이런 걸 거다. 고생하는 당시에는 체감하지 못하다가 먼 훗날이 되어서 고생하던 과거를 반추하고 나서야 깨닫게 되는 것들. 



육아도 마찬가지다. 아란 참 감당하기 힘든 보물이었다. 독박 육아도 모든 걸 혼자 책임져야 하는 특수교사의 일과 비교해 덜 힘들다고 할 수 없었다. 야근이 잦은 남편에게 집안일과 육아를 분담하기 어려웠고, 친정 부모님이나 시부모님의 도움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나마 어린이집의 도움을 받게 되면서 숨통이 조금 트였고, 하고 싶었던 글쓰기를 조금씩 할 수 있었다. 아주 잠깐 누린, 전에 없던 여유였다.



하지만 아이는 많을수록 보물이라는 진리를 너무 성급히 믿었던 탓일까. 계획에 없던 둘째가 아주 희귀한 확률로 내 앞에 무심히 툭 떨어졌을 때, 나는 그 진리를 원망 수밖에 없었다. 인생에 아이는 하나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내 맥시멈이라 여겼는데. 우리 집은 졸지에 '과밀학급'이 아닌, '과밀가정'이 된 것이다.



얼마 전 뉴스에서 아무 죄도 저지르지 않은 93세 영국인 할머니 체포다는 소식을 접한 적이 있다. 할머니의 평생소원이 체포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할머니는 수갑을 차고 경찰을 따라갔고, 해맑게 웃으며 감옥 체험 했다. 나는 그녀처럼 웃으며 아무에게도 부탁하지 않은 감옥에 들어갈 수 있을까? 인생에번째하는 감옥 체험이니 겪어본 거라 조금 쉬울까?



아름다운 문장 하나를 만들기 위해 제물로 바쳐야 하는 땀과 눈물이 너무도 많은 것 같다. 고생의 무게와 고생으로 얻은 지혜의 무게를 저울로 단다면 어느 쪽으로 더 기울어질지 잘 모르겠다. 그런 지혜라면 차라리 얻지 않는 편이 낫겠다 해도, 하나를 낳아 키우다, 하나를 더 낳아 둘을 키우다, 나중엔 둘을 키우며 일까지 하는 워킹맘의 삶을 살게 되리라는 걸 알고 있다. 24시간에서 잠자는 시간을 뺀 나머지를 돌봄 노동에 할애하게 될 앞날도 그려진다. 과밀학급이 싫으면서, 또 과밀학급을 만들고 있는 직장에서의 내 모습을 보면, 일을 찾아서 두 배로 키우는 게 인생의 습관이지 싶다. 당장은 막막하고 괴로워도, 한참 지나고 나서는 좋은 경험이었다고 고백하게 되는 것 또한, 슬프지만 매번 반복되는 패턴이다.



치열하게 살지 않고 거저 얻을 수 없는 깨달음은 없냐고 하늘을 쳐다본다. 이렇게 많은 보물을 쏟아지는 걸 보면, 하늘에서 내려다 보기에 나는 되게 괜찮은 선생님이고, 되게 괜찮은 엄마였나 보다. 하. 하. 하. 감. 사. 합. 니. 다. 쥐어짜듯 말해본다. 하늘은 얄미울 정도로 느긋하다. 감당할만하니까 주는 거라고. 할 수 있는 게 웃는 것 밖에 없어 또 웃는다. 입은 웃어도 눈은 웃지 못하는 것까진 어쩔 수 없다고 툴툴거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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