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자리톡 CEO 박병종 Jul 09. 2018

나는 영원히 죽지 않기로 결정했다.

"어차피 죽는데 나는 왜 사는가?"


지난 20여년간 내 머리 속을 가득 채운 질문이다. 이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한 채 사는 것은 아무 의미 없는 일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근본적으로 '왜'가 해결돼야 '어떻게'와 '무엇을'이 나오는 내 성격 때문이다. 이 질문에서 '어차피 죽는다'는 조건을 제외하면 "왜 사는가"라는 물음이 남는다.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답을 내놓을 수 있는 열린 질문이다. 누구는 행복하려 산다고 답하고, 누구는 가족을 위해서 산다고 한다. 누구는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어서라고 하고, 누구는 인류에 기여하기 위해서라고 답한다. 나는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바꾸고 싶어서라고 말할 것이다.


문제는 '어차피 죽는데'라는 명제를 넣는 순간 발생한다. 인간이면 누구나 죽는다. 이 벗어날 수 없는 운명에서 내 인생은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가. 어차피 죽는데 지금 열심히 일하고 힘들게 돈 모으는 일은 다 부질 없는 것 아닐까. 죽음이라는 운명의 수레바퀴 앞에 사마귀 한마리가 당랑거철 하는 것이 아닐까. '어차피 죽는데'라는 일반적 사실 하나 넣었을 뿐인데 철저하게 닫힌 질문이 된다. 나는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에게 같은 질문을 해봤다. 콜버스 신입직원 면접에서 마지막에는 꼭 이 질문을 할 정도다.


내가 들은 대답의 대부분은 이렇다. "죽을 수 없어서 산다." "지금까지 살아놓은 것이 아까워서" "아직 해보지 못한 것이 많아서" "행복하려고" 이해는 되지만 어느 하나도 죽음 이후 인생의 가치에 대해 얘기하고 있지 않다. 허무주의를 극복할 수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인생에 파묻혀 살지 인생으로부터 떨어져 제3자적인 시각으로 삶을 관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삶을 객관적인 시각에서 분석하려면 삶을 벗어나 죽음으로 들어가야 할지도 모른다.


20년을 고민한 끝에, 난 죽지 않기로 결정했다. 몸이 죽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다만 나를 이루는 것은 몸 뿐만이 아니다. 내 이름은 몸을 떠나 온 세상을 떠다니고 있다. 나에 대한 기억은 여러 사람들의 머리 속에 저장돼 있다. 내 생각은 글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전염되고 있다. 내가 만든 서비스와 회사는 아직 작지만 세상을 변화시키고 있다. 나는 죽어버릴 몸에 국한된 존재가 아니다. 그렇다면 몸을 제외한 '나'를 영원히 죽지 않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나의 사상과 업적은 내 몸이 죽은 뒤에도 계속 성장하며 세상을 좋은 방향으로 끌고 갈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영원히 죽지 않기로 결정했다. 브래드 피트 주연의 영화 '트로이'를 관통하는 주제가 '영원불멸'이다. 아킬리우스는 전쟁에서 죽을 것을 알면서도 안락한 삶을 떠나 역사에 기록돼 영원히 사는 길을 택했다. 몸의 관은 미리 짜놓겠지만 내 사상과 업적의 관은 준비하지 않기로 했다. 상징세계에서 영속할 수 있는 연료를 물리세계에 있는 동안 비축할 것이다. 예수가 그랬던 것처럼, 마르크스가 그랬던 것처럼 죽음 이후에도 죽지 않을 것이다. 높은 목표를 설정하고 니체의 초인처럼 매 순간을 초극하자. 죽지 않겠다고 결심하니 한결 마음이 놓인다.


  

매거진의 이전글 삶은 수면 아래 지수함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