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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독한한량 Feb 14. 2024

사무적인 대화에  유머가 얹어질 때

서먹한 사람과 차에 단 둘이서

인사이동 개편이 완료되고, 새로운 팀장 밑에서 이제 막 한 달이 되었다.

이번에 부임한 팀장은 나와는 교차점이 없어 함께 일을 해본 적은 딱히 없는 듯싶다.


성격이나 업무방식 등 일단 잘 모른다.

다만 그에게 나의 팀장으로서 자격에 대해 의문으로 출발한 건 사실이다.


내가 몸담고 있는 조직은 기술영업팀이며, 타 영업팀과는 달리 개발 아이템을 응용한 솔루션을 만드는 팀이다.

그래봤자 고객사와 어떤 물건을 판매해야 하는 목적은 별반 다르지 않다.

이에 반해 이번에 부임한 팀장은 사회라는 조직에서는 오로지 연구소에서 개발만 하시던 분이다.

소문이 돌기 시작한 후부터 함께 한다 상상만 하면 이 팀이 과연 정상적으로 돌아갈까 싶어 우려하곤 했다.

(그건 지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다행인 부분은 팀원 개개인에 대한 능력치가 꽤나 좋은 편이고, 별다른 코칭이 없어도 알아서 막힘없이 업무를 수행하는 훌륭한 팀원이 배치되어 있다. 그 말은 팀장으로서 딱히 신경을 쓸 부분이 없다는 부분이기도 하다.

소위 간부라고 할만한 팀장 이상급에서 이뤄지는 회의에서 귀찮은 일만 떠안거나, 의견을 개진할 때 방해가 될만한 요소만 만들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난 지금, 주간회의를 할 때나 이런저런 이유로 회의를 할 때 우려는 현실로 실현되어 가고 있다.

나는 매번 답답한 마음에 설명하기 바빴고, 모르는 부분에 대해 내가 코칭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으며, 이해하지 못하면 나도 모르게 언성을 높이는 버릇없는 행위까지 나오기도 했다.너무 답답했다. 아래 후임 팀원과 커피타임 즐길 때 늘 하는 말이 하나 생겼다.


xx야. 올해는 각자도생이다


저쪽 팀의 정치적인 성향이 매우 강한 팀장 스타일상 회의 때 끌려다닐 팀장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이사가 주관하는 회의 때는 본인보다 나이가 많은 아래 팀장에게 존대를 하며 존중을 하는 듯했지만, 한 번씩 참조로 날라오는 메일을 보고 있자니 꼭 그렇지도 않은 듯 보였다.

지시에 어떤 보고를 했는가 본데 리턴 메일을 보고 있자니(돌아온 메일에 내가 참조되어 있다) 여러 번 수정하고 지적받고 그랬는 가보다. 이사의 불순한 의도는 뻔히 알고 있지만, 그냥 무시하고 만다.

(다음엔 그 양반에 대해 한번 다뤄볼까 한다. 그전에 좀 더 까발려 봐야 한다.)


나이가 적지 않다 보니, 그리고 그간 해왔던 일과 전혀 다른 업무를 배정받은 걸 보니 본인도 당황스럽고 서툴 수밖에.

뭔가 꼬여버렸다고 해야 하나 어쨌든 맞지 않은 옷을 입고 있다는 눈초리는 지울 수가 없다.

상세히 꼬여버린 이유에 대해 설명하고 싶으나, 그 과정이 참 길고 많은 사람을 쉽게 전달할 어떤 묘사가 생각나지 않는다.

아무튼 그렇다.


그렇게 1월은 그럭저럭 별다른 이슈 없이 지냈다.

그분을 신뢰하지 않으니, 살갑지 않게 내뱉는 말에 나 스스로로 뒷맛이 개운치 않아 여간 찝찝한 게 아니다.

장담한 건데 그분도 요즘엔 회사에 출근하는 게 참 재미없을 거다.

나도 재미가 없는데 그분이야 오죽하겠다 싶다.

적당히 서먹하고, 적당히 웃으며 좁혀지지 않는 거리감을 유지한 채 지내고 있다.

어쩌다 둘이서만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을 기회가 생긴다면 사전에 외근 일정을 잡고 나가버린다.

괜한 불편함에 서로 좋은 밥맛을 느낄 일 없기 때문일 것이다.


한 달이 지나 오늘 외근이 있다. 팀장과 둘이서 함께하는 일정이다.

1시간 30분 정도 거리의 현장. 못뺀다.

2평도 되지 않는 좁은 공간에서 견뎌야 한다.

그나마 사고 나지 않으려면 앞만 보면 되니 다행이다.


먼저 못 견디는 건 나다.

특별할 거 없는 소재를 툭 던진다.


다행히 잘 소통되는 주제라 그런지 대화가 끊기지 않는다. 어쩌다 관심사가 동일했는 가보다.

이야기가 꼬리를 물더니 의식이 가는 데로 계속해서 대화의 대상이 달라진다.

이제는 누구라고 할거 없이 대화의 핑퐁이 이어진다.

눈은 어쩌다 내비게이션만 흘길 뿐 여전히 정면을 향해 있다.

그러나 말의 방향과 귓구멍의 방향은 시도 때도 없이 서로를 향하고  있다.


대화가 생각보다 재밌다.

평소에 전자기기에 대해 관심이 많다는 소소한 정보도 알게되고,

이래저래 가지고 있는 대화의 폭이 나이에 비해 상당히 젊다.

어쩌다 나오는 유머는 대화의 품질을 상승시칸다.


그러다 도착한 장소에서 미팅은 이동한 시간이 아까울 정도로 싱겁게 끝이 났다.

싱겁게 끝난 이유도 명확하다. 팀장 덕뿐이다. 사실 나는 중요한 고객이나 프로젝트가 아니라 미팅 시간 시큰둥 했다.

(1년 뒤에도 10년 뒤어도 그 회사의 성장이 낙관적으로 보이지 않아서)


연구소에서 개발을 하던 개발자라 논의된 주 안건과 일치하여 이야기가 술술 나왔다. 질문 1에 답변 2를 뱉어내니 얻어 가는 것 또한 2가 되었다. 당연히 상대방이 싫을 리가 있나.


과거 몇 차례 와봤던 곳이라 기억을 가물가물하다지만 근처

 맛있는 주꾸미 집에서 밥을 먹었던 기억이 있단다.

미팅이 끝나고 담배를 피우러 가 있는 동안 나는 그 기억을 되새겨 근처 주꾸미 집을 탐색한다.

고마운 마음이 들어서다.

아쉽지만 가봤던 그 가게는 아니었지만, 식당에서 밥을 먹는 시간에도 대화가 참 찰져 서로가 잘 붙었다.

돌아오는 시간도 마찬가지였다.


그간 업무 외 대화가 없었으니, 서로에 대해 몰랐던 건 당연했다.

사무적인 대화뿐이었던 관계는 개인적인 대화로 서로를 이해하는 관계로 발전됨을 느낀다.

그걸 알고 있음에도 이젠 사람의 관계 형성의 과정이 귀찮은 탓인지 잘 이행하지 않는다.


이래나 저래 나 돌아가면 딱히 변하는 건 없을 성싶다.

새로운 업무, 새로운 조직에서, 새로운 조직원들과 섞여야 하는 그의 상황은 여전히 애처로울 것이다.

다만 오늘의 경험은 적어도 그를 사무적인 관계로만 대하지 않음이 예상된다.


관계의 발전과 함께 팀 비즈니스도 성장해 있기를 바란다.

다음 주 있을 올해 첫 회식 때는 좀 더 관계 형성에 대한 대화가 되기를 바라본다.나뿐만이 아닌 팀 모든 구성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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