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입식 교육에 익숙한 나의 세대로써는 아무래도 능동적인 것보다는 수동적인 것에 몸에 배어있다.
스스로 하기보다는 뭐라도 누군가 시켜주고 그것에 대해서만 집중하는 게 마음이 편하다.
제안의 발언 "xxx 해보자" 나 " ooo 해볼까"가 아니라 "이거 해야 해", "내일까지 해와"라는 강제가 늘 몸에 배어 있다.
타인에 의해서 강제가 몰려오기도 하고, 스스로의 행동 행위 때문에 강제가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개인의 자율성, 개성, 창의성이 중요한 시대이다 보니 요즘의 세대들에겐 별로인 단어다.
두드러기가 날 만큼 누군가 이런 언어들로 접근했다간 아무리 잘해줘 봤자 꼰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나는 요즘 스스로의 행위나 어떤 행동 때문에 강제가 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우선 블로그다. 블로그에 글을 쓰고, 운영하는 건 강제가 아니다.
어차피 방문자도 없고, 거의 나만 보는 거라 비공개를 하든 공개로 전환하든 2주 뒤에 글을 적든 한 달 뒤에 적든 아무도 신경 안 쓴다. 아니 알 수조차 없다.
그런데 특정한 날에 글을 연재해야 하는 상황을 지정하게 되면 아무래도 얘기가 달라진다.
얼마 전에 작가 신청 승인을 받고 블로그에 게시한 글들을 '브런치'에 연재하고 있다.(2번을 퇴짜 맞았다)
블로그와 콘텐츠도 거의 같다. 나름의 규칙을 정해 요일별로 글을 연재하는 주제를 달리했다.
월 수 금은 '직장인의 이중생활',
화목은 '개인주의 서평',
토요일은 '출장미식가',
그리고 일요일은 '소통 남편 소통 아빠'를 연재하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글을 양산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주제별로 놓고 보면 내가 글을 읽는 속도가(진짜 어렵거나, 두꺼운 책이 아니라면) 2~3일에 한 권의 책을 완독하고 있다. 산술적으로 1주일에 2권을 읽은 셈이니, '개인주의 서평'의 연재는 주 2회로 설정했다. 일단 내가 약속한 서평의 기간은 2024년이 지나갈 때 까지다.
'직장인의 이중생활'은 사실상 일기의 형식을 빌려 그날의 이야기를 하는 셈이니 매일 양산해도 된다. 너무 오버페이스 해서 스스로에게 부담이 갈까 봐 주 3회로 변경했다. 별 이유 없이 심플하게 가자.
'출장미식가'는 외근과 출장이 잦은 나의 업무특성상 밖에서 식사하게 되는 점심식사 이야기다. 항상 맛있는 점심식사를 하면 좋겠지만 어쩌다 먹는 식사시간의 이야기를 기록하기에 주 1회로 수정했다.
마지막 '소통 남편 소통 아빠'는 한 주 동안 종합해서 아이들에게 그리고 사랑하는 아내에게 어떤 방식으로 다가가야 더 나은 아빠와 남편이 될지 진즉 하게 고민하는 주제다. 고민을 많이 하고 어땠는지 기록하는 주제라 신중하게 적기로 했다. 그래서 한주의 마무리하는 셈에서 1회로 고정했다.
아직 한 달도 안 되어 4개의 주제로 적고 있지만, 아이디어는 거의 매일 하나씩 발생하고 있다. 이를테면 디지털 노마드를 꿈꾸는 '40대 직장인의 N잡 도전기' 이야기라던가, 'PM 10:30'이라고 해서 해당 시간에서 눈에 보이는 것들과 당시의 감정, 컨디션 등을 상세히 묘사하는 글 등 계속해서 아이템들이 튀어나온다.
나를 옳아 맨 강제들이 이상하리 만큼 더 나은 아이디어들로 탄생하고 있다.
다행히 그때의 기억들은 상실되지 않게 메모해 두는 아름다운(?) 습관 덕분에 그 기억들은 상시 유지된다.
[ '브런치' 작가의 시작 ]
아직 등록된 글들이 많지 않아 구독자나 좋아요가 많지 않지만, 어쩌다 발생하는 좋아요 카운트가 참 신기하고 즐겁다.(아마도 대부분 정독은 하지 않았겠지만...)
브런치 글 연재들만 강제가 있냐면 꼭 그렇지도 않다.
얼마 전에 참여하게 된 아들의 유치원 학부모 참여 행사가 같은 이유다.
밥 먹다가 무심하게 아들의 부탁을 들은 나는 별 고민 없이 '알았어 할게'라고 뱉은 게 화근이었다.
유치원 졸업을 앞두고 있는 아들의 원장 선생님은 바쁜 학부모들을 가만히 두는 게 보기 싫었던 게 분명하다.
학급이 바뀔 때마다 2월 초가 되면 항상 공연을 하는데 오프닝 행사로 학부모들도 참여해 달라는 거다. 물론 강제가 아니라 스스로 하겠다고 뱉은 말이니, 아들의 부탁이나 자존심을 위해서라도 철회할 수가 없었다.
까짓것 해보지 머. 호기롭게 학부모 집합 모임이 있는 날을 기다렸다.
참여 학부모 모임이 있는 날.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다. 약 30여 명이 모여 있는 것을 보니 학부모의 20% 정도가 신청했다.
참 용기 있는 멋진 분들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나도 여기에 포함되어 있네?
근데 왜 아빠들은 4명뿐인 거지? 이럴 줄 알고 아내는 그날 한쪽 입꼬리만 슬쩍 올라갔나 보다.
어찌어찌 조를 편성하고 자체적으로 공연 주제를 선정하는데 하필이면 몸치인 내가 부담스러워하는 치어리딩이다.
그전엔 선생님들이 주제나 아이템들을 나눠주고 선정하는 방식으로 생각했다. 간단한 영상 같은 것들을 주며 배우면 될 줄 알고 있었다. 자체적으로 선정하고 자체적으로 배워야 한다니 앞이 깜깜하다.
거기다 내가 가장 나이가 많다. 더 안 좋은 건 허리 부상으로 통증 치료를 하고 있는 상태다. 어쨌든 조별로 모여서 훈련을 하든 연습을 하든 조직적으로 활동해야 하는 임무가 부여되었다.
[ 어쩌다 '질풍가도' ]
진행 중 하차 인원이 발생하고 있다. 이제 남은 아빠는 3명.
우리 조에만 남자가 2명이라 나름 혼성 그룹이 되었다. 다행히 구성원의 성격들이나 에너지가 상당히 밝아 대학교 때의 그 조별 과제와는 상반된다. 아무래도 이번에 조직 구성원들만큼은 내가 운이 좋은 거 같다.
'질풍가도'라는 치어리딩은 나에겐 터무니없이 어려워 보였지만 그 후 3주가 지난 지금 조금 재미는 없지만 가장 정직하고 완벽하게 잘한다. 하니깐 되는 거다. 물론 열심히 연습하기도 했고, 영상을 보며 이미지 트레이닝도 했기에 가능했을 거다.
세상 참 이런 일이 다 있나 싶다.
글이라고는 소질도 자질도 해본 적도 없다고 생각한 내가 블로그에 글을 쓰며 즐거워하고 있고, 춤이라는 걸 몸의 율동이라는 걸 해본 적 없는 내가 치어리딩을 완벽하게 구사하고 있는 모습이 낯설다.
강제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어떤 건 자의에 의해
어떤 건 타의에 의해
강제가 되었지만, 강제가 긍정의 에너지로 바뀌는 시간 약 3주.
(공교롭게도 글을 쓰기로 결심한 시기와 치어리딩 시점은 오버랩된다.)
다양한 강제로부터의 긍정의 힘들이 있을 거라 믿는다.
짧은 시간에 희망을 맛보고 있는 요즘 강제가 아닌 자의에 의한 긍정의 힘이 궁금하다.
능동의 에너지도 얻어 보자.
살아가다 보면 그런 에너지도 얻을 기회가 있겠지.
Prologue.
어제 '강제의 에너지'는 또 하나가 추가되었다.
인터넷 강의 30만 원을 결재했다.(3개월 무이자 할부)
매달 적자가 발생하고 있는 가계살림에서 탈출하기 위한 압박용 강제다.
일단 스스로를 벼랑 위에 올려다 놓거나 꽁무니에 불쏘시개를 상시 매달에 놓는 방법을 택했다.
투자한 돈이 아까워 서라도, 자금 마련을 위해 중고로 팔아버린 캐논 카메라를 되찾기 위해서라도 내던졌다.
나중에 그 이야기도 글로서 남겨볼까 한다.
그렇게 또 스스로 '강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