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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독한한량 Feb 09. 2024

보이지 않는 것들로부터

아침에 부스스한 눈으로 거실을 배회하다 흔들의자에 앉았다. 잠에서 깨긴 했는데 전날 율동 때문에 몸이 많이 무겁다. 스트레칭이라도 하고 굳어 있는 몸도 좀 펴고 하면 좋으련만, 토요일 주말의 첫 시작이라 그런지 게을러지고 싶은 게 먼저다. 그저 멍하니 몇 분 않아 있자니 입이 심심해 물 한 잔 먼저 들이켰다. 차가운 물이 좋았은데 이가 시려 언제부턴가 미지근한 물만 마신다.(시점이 언제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냉장고 안은 어차피 간단하게 요긴할 거리가 없다는 걸 알고 있으니 딱히 그 문을 열 이유가 없다는 걸 잘 안다.


아침 햇살이 거실 창을 뚫고 환하게 비춰주면 좋겠건만 내 눈처럼 흐리멍덩하다.

뭔가 꾸덕꾸덕한 거 같기도 하다. 이윽고 아이들과 아내도 거실로 잠에서 깨어 나오더니 TV 앞에 냅다 누워버린다.

불을 켜려는 순간 아이들 자연 빛으로 환하게  TV 보라는 건지 빛이 내려온다. 온도가 느껴지는 건 아닌데 색감 때문에 따뜻한 착각마저 들게 하는 그런 햇살이다.

그래. 잠에서 깨어 어두운 방에서 거실로 나와 줬으면 적어도 햇빛만큼은 이래야지. 잠도 싹 달아나고, 오늘 좋은 기운도 얻는 것 같고 그러지.


크게 심호흡하며, 거실 창을 열려 하니 아내의 다급한 멈춤 지시가 내려진다.


"오늘 미세먼지 안 좋아. 열지 마"


눈에 보이지도 않는 조그만 먼지 따위가 햇살 좋은 날 마시는 공기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자세히 보니 하늘에 씻다만 비누거품처럼 뿌옇게 탁한 공기가 보인다. 저 창문 하나의 경계로 우리들의 공기와 너머의 공기가 질적으로 보이지 않는 차이가 있다.

수치를 알려주는 센서 기기가 창문 근처에 항상 대기하고, 언제든 전원을 킬 수 있도록 공기청정기가 거실 한편에 자리 잡고 있다. 둘 다 오늘은 열심히 가동될 예정이다. 야외에서 하는 행위는 자연스레 금지된다.

(날이 추워 나갈 일은 없지만)


눈에 보이지도 않는 것들 때문에 지난 4년간 그렇게 고생을 했는데, 아직도 그 조그마한 것에 자유롭지 못하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것을 인식하지 못한 체 살아가는 건 어떤 물질적인 것만은 아닌 듯하다.

사람의 마음이나 그대의 속 마음 또한 모른 채 살아간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대부분 비즈니스 관계로서만 거리를 유지한 체 살아간다. 어쩌다 마음 맞는 상대를 찾았다 해도, 어릴 때부터 함께 알고 지내온 불알친구나 고향 친구 같은 대화는 없고 뭔가 상대방의 눈치를 보며 나를 오픈하게 된다. 오픈하는 것도 신경이 쓰이고, 상대에게 질문하는 것도 무례하게 들릴까 봐 조심하게 된다.

개인 대 개인의 관계에서 진전이 매우 더디다.


개인 사생활 안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나만의 벽을 쳐 놓고,

누구든 넘으려 하면 더 놓게 더 두껍게 자기방어를 하게 된다. 그건 그냥 재빠르게 자동이다.


그래서 100% 믿을 수가 없다.

신뢰라는 문제가 아니라 이익집단 내에서만큼은 이익에 의한 생각과 활동에만 제한된다는 얘기다.


관계의 발전을 이어 나가기에 쉬운 일이 아니다. 어쩌다 마음이 맞는 상대를 찾아도 주변에서 들리는 그대의 다른 잡음이 귀에 걸리면 또 다른 의심이 생겨 다가가는 게 어려워진다.

험담.

내가 직접 겪지 않으면, 주변의 말 따위는 신경을 쓰는 타입이 아니더라도 사회에서는 그게 또 잘되지 않더라. 멈짓거리는 건 어쩔 수 없다.

나도 나의 이익을 위해 은근한 정치적 영업을 하다 보니(회사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연스레 폐쇄적으로 변하게 된다.

사람이 사람으로서 대하는 게 아니고, 회사의 이익을 위해 사람을 대하게 된다.

그런 면에서 나 또한 상대들에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 되어 가는 것이다. 밖의 것을 차단하는 어떤 벽이 존재한다.

신입부터 성장이 아니라 경력직 유입인원이 많은 조직일수록 현상이 잦다.


개별적으로 보면 나름의 멋진 모습이 있고, 그만의 즐거움 따위나 관심사가 있을 거다. 오지랖이 있다 보니 상대의 그것들에 대해 알고 싶고 나의 그것들과 비교해 가며, 좀 더 건설적인 대화가 되기를 희망하지만 언제부턴가 단절되었다.

설령 벽을 허문다 한들 사회라는 이익집단 내에서는 탁한 미세먼지처럼 경계의 눈초리가 지속적으로 침투해 오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겉과 속을 섞을 수 있는 동료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나 싶다. 그런 동료 하나라도 없다면, 회사 다닐 맛이 나겠나. 커피 한 잔의 여유를 가질 때 같이 이런저런 얘기도 하고, 상사 욕이나 실컷 하면서 전날의 응어리를 풀어 버리는 통쾌함을 느낄 동료가 있으면 분명 그 맛은 배가 될 거다. 적당한 선에서 서로의 룰이 만들어진 예의만 지키면 말이다.

탁한 공기를 맑게 희석시켜주는 공기청정기처럼...


2번의 이직 세 번째 직장을 4년째 다니고 있는 현재.

그 벽은 새로운 환경에서 적응을 할 때마다 2배로 성장해 가는 듯하다.

가끔은 그런 면에서 첫 번째 회사가 그리울 때가 있다.


벽이 없었던 그때

겉과 속을 비교할 필요가 없었던 그때

미세먼지라는 단어가 일상생활에 존재하지 않았던 그때모두가 한 울타리던 그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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