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는 사람들과 저녁을 먹다 내일 아빠가 수술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수술이라니, 그럼 누가 병간호를 가는건데?" 급히 아빠에게 전화해 물었지만 괜찮으니 혼자서 간다는 대답을 듣는다. 그게 무슨 소리야. 간단한 수술도 아닌데 어떻게 혼자서 가. 한 두시간 정도 더 있다가 자리를 정리하고 집으로 와 4~5시간 정도 잠을 청하고 새벽같이 택시를 잡았다. 밖은 아직 캄캄해서 저 멀리 해가 뜨고 있다는 걸 희미한 빛으로만 확인하는 정도였다.
병원에 도착하니 아직 아빠는 오지 않아 그대로 한시간 정도를 더 기다린다. 허름한 병원이지만 그래도 내 고향에선 그나마 이름있는 곳이다. 시간이 되어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기다리던 아빠는 꽤 여유로웠지만, 한시간 정도의 수술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끙끙대는 신음을 참지 못했다. 손수건에 물을 묻혀 입술을 적셔주다 거즈가 낫다는 말에 거즈를 얻어 바꾼다.
수술실에서 나올때 눈을 감는 아빠에게 남자 간호사는 "할아버지, 자면 안돼요"라고 말했다. 할아버지. 우리아빠가 저런 소리를 듣는구나. 할아버지라고 불릴 나이이긴 한데 그 간호사에게 듣기엔 또 어색했다. 나에게 아빠는 그냥 아빠인데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느새 호칭이 바뀌었다. 기분이 이상해. 그렇게 생각하며 옆에서 병수발을 든다.
그날 저녁 오빠도 가족들을 데리고 왔다. 서울에서 여기까지 아마도 3시간 넘게 운전해서 왔을 것이다. 아들이 편할테니 나는 집에가서 자라고 한다. 아빠는 복도 많지. 수술한다고 하면 이렇게 금방 달려오는 자식들이 여럿있으니. 그런데도 혼자 할 수 있다며 기어코 오지 말라고 한 이유는 뭐지? 왜 부모님들은 자식에게 짐이 되는걸 죽기보다 싫어할까. 그 마음을 지금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2.
인스타에서 "만약 당신이 30억을 받는 댓가로 친동생이 7년동안 비둘기가 된다면 하시겠습니까?"라는 글을 봤다. 막내인 나는 저걸 받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 싶었지만, 놀랍게도 우리 형제들은 그럴듯 하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심지어 작은 언니는 "나에게 동생이 하나뿐인게 한"이라며 안타까워하기까지... 주변에 물어봐도 대부분 하겠다고 했다. 사람이 많은 단톡방에 물어봐도 쌉가능이라고 했다. 이럴수가. 왜? 언니오빠들은 대체 동생을 어떻게 생각하는 거야... 씁쓸해졌다.
3.
큰 도시로 병원을 갈일이 있었는데, 막상 가니 헛걸음 했다는걸 알게 됐다. 큰 병원이라 갔는데 그냥 공장같은 곳이어서 내가 원하는 건 진단할 수 없다한다. 어쩔 수 없이 근처의 큰 백화점 식품코너에 가서 이리저리 둘러본다. 빵을 몇개쯤 사고 고급 식재료가 있는 가게도 들어가봤다. 지방은 다 좋은데 병원이 부족하다. 아니, 정확히는 병원이 있어도 '더 좋은 병원'이 대도시에 있다는 사실 때문에 모두들 대도시로 향한다. 건강을 위해서라면 누구나 최고급을 원하니까, 무리해서라도 그렇게 하는게 아닐까. 그렇게 따지면 결국 지역에 병원이 더 생겨도 큰 병이 생기거나 심각한 문제가 생기면 대도시의 병원에 가겠지. 그렇다고 해도 공공의료를 손봐서 지방에 더 많은 병원이 생겼으면 좋겠다. 예를 들어 치주치료를 받고 싶은데, 우리 동네에는 치주과를 전공한 치과의사가 없어서 곤란하단 말이지. 순전히 소비자 관점에서만 생각하면 그렇다.
4.
글을 쓰고 싶었는데, 2024년 상반기 이후로 거의 글을 쓰지 않았다. 회사를 다닌다는 핑계로 나태하게 지냈다. 결국은 내가 그만큼 간절하지 않았던거지 뭐. 브런치북 프로젝트에서 대상을 탔던게 오히려 부담감으로 작용했을까, 에세이를 쓰다가 갈아엎고 또 쓰다가 갈아엎고를 반복한다. 제미나이에게 상담을 하니 그러지 말라고 한다. 내 안에 있는 정제된 생각을 오롯이 담아내는게 쉽지는 않다. 잘 안되니까 보기 싫고, 그러다보니 또 안쓰고 싶고. 답은 알지만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