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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홍열 Mar 13. 2017

말은 간결했지만 느렸고 힘이 없었다

공터에서 김훈 장편소설


공터에서 김훈 장편소설 


작가는 말했고 나는 들었다. 처음 말할 때부터 듣기가 힘들었다. 문장은 간결했지만 느렸고 힘이 없었다. 힘이 없으니 긴장도 없고 비장감도 없다. 느린 말이 계속 이어진다. 이제 끝나는가 싶었는데 계속 이어진다. 차마 이 자리를 떠날 수가 없다. 작가에 대한 마지막 예의라고 생각했다. 나도 이제 나이를 먹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글과 문장, 언어와 쉼표가 하나의 정점을 향해 갈 때 작가의 간결함은 극도의 긴장감을 연출하고 관객들은 잠시 절정의 환희를 경험한다. 서사적 구조 속에서 시적 치열함을 드러내는 것이 김훈 미학의 요체였고 그의 아이덴티티였다. 계속 그래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걸 기대한 사람들에게는 어려운 시간들이었다. 

애써 이해할 수는 있다. 작가가 굳이 원하지는 않겠지만 이해할 수는 있다. 작가 후기 중에 나와 있는 다음의 표현이다.  


나의 등장인물들은 늘 영웅적이지 못하다. 그들은 머뭇거리고, 두리번거리고, 죄 없이 쫓겨 다닌다. 나는 이 남루한 사람들의 슬픔과 고통에 대하여 말하고 싶었다. 작가 후기 중에서 


남루한 사람들은 개인사이면서 동시에 시대사 이기도 하고 이젠 서서히 결별의 인사를 해야 할 사람들이다. 천천히 생각해 가면서 오래된 이야기들을 하나씩 꺼내기 시작한다. 생각나는 대로, 시간의 흐름과 상관없이 현재와 미래를 엮어 나간다. 작가의 삶 속에서는 이미 다 흘러간 시간들이고 과거라는 범주 안에서 끝난 시간들이다. 


듣는 것, 때로는 고역이다. 고역을 인내하는 것이 미덕일 수도 있지만 그럴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미리 불행한 미래를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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