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관집 이층 창비시선-370 신경림
살아보지 못한 새로운 세상으로 가는 첫날을
다시 그 삐걱대는 사진관집 이층에 가 머물고 싶다.
아주 먼 데서 찾아왔을 그 사람과 함께 누워서
양철지붕을 두드리는 소낙비 소리를 듣고 싶다.
아무도 없는 이른 새벽 다락방을 나와 기차를 타고
낙타와 고래가 있는 곳에 가서 사진을 찍고 싶다
수록 시 ‘역전 사진관집 이층’을 재구성
나이 80이 넘었다. 고은과 신경림 두 시인이 있다. 아직도 쩌렁쩌렁한 시를 쓰는 시인이 있고 예나 지금이나 조용하게 귓속말로 지난날을 들려주는 시인이 있다. 부모님 이야기, 어린 시절 장날 이야기, 하얀 찔레꽃 같은 옛 소녀 이야기, 힘들었던 40대 이야기, 나이 들어 여기저기 돌아다닌 이야기, 그리고 이제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들을 조곤조곤 들려준다.
이쯤에서 돌아갈까 보다.
차를 타고 달려온 길을
터벅터벅 걸어서
보지 못한 꽃도 구경하고
듣지 못한 새소리도 들으면서
수록 시 ‘이쯤에서’ 일부
그동안 모으고 쌓은 것을 다 버리더라도 돌아가고 싶다. 고, 아니 그 정도로 강한 표현이 아니고 그저 ‘돌아갈까’ 정도의 중얼거림이다. 그 중얼거림조차 여럿에게 말할 수 없으니 늘 꿈을 꾼다. 그 사람과 함께 사진관집 이층 다락방에서 함께 소낙비 소리를 듣다 새벽이 되면 사막에 가는 꿈을 꾼다.
나도 꿈을 꾼다. 시인처럼 꿈꾼다. 지금 다락방 양철 지붕 위로 그리움이 밤새 가슴을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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