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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홍열 Jan 24. 2018

푸틴 이전에 러시아를 먼저

푸티니즘 푸틴 열풍과 폭주하는 러시아 월터 라쿼 저 / 김성균 역 |




















작년 가을쯤 현실 국제 정치 관련 책을 두 권 샀다. 하나는 중국 정치에 관한 책 [차이나 모델, 중국의 정치 지도자들은 왜 유능한가]이고 다른 하나는 러시아 정치에 관한 이 책이다. 중국 저서는 오래전에 읽고 독후감을 썼는데 이 책은 계속 읽지 못했다. 연말에 이런저런 일도 많아 시간 내기도 힘들었고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늘 들고 다니는 가방에 있는 이 책을 볼 때마다 마음이 불편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어서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는 부담만 커졌다. 그 부담감이 독서를 강요했고 나중 가서는 대충 읽게 만들었다.

 

다 읽고 나니 명쾌해졌다. 러시아 현실 정치를 이해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결국 러시아 고유의 문화에 대한 이해다. 이것이 선행되지 않으면 계속 오독을 하게 된다. 볼셰비키 10월 혁명의 원산지 러시아가 오히려 가장 비사회주의적 국가다. 레닌의 시작은 담대했지만 레닌 이후 러시아는 다시 비사회주의적 문화 공동체로 빠르게 변한다. 위대한 러시아를 그리워하는 집단적 향수만이 러시아 민중의 오랜 소원이고 현실적 바람이다. KGB로 대변되는 보수적 관료집단과 정교회로 대변되는 러시아 문화 담지자들의 소원한 강국 러시아의 재건이다. 이 프로젝트를 위해서 가상의 적 또는 현실의 적이 필요했고 미국이 그 성실한 파트너 역할을 수행했다. 수사적으로 표현하자면, 미국이 자본주의였기 때문에 공산주의를 선택했다. 만약 파트너의 색깔이 바뀌면 러시아 역시 다른 칼라로 빠르게 바뀐다. 그리고 이제 더 이상 특정 컬러가 필요 없는 시대가 오자 러시아는 자본주의 질서를 도입했고 빠르게 개혁과 개방을 추진했고 실행했다. 대 러시아를 위해 선두에 선 푸틴을 따르는 것이 당연하고 이 대열에서 이탈하는 자를 용서하지 않는다. 대강 이런 이야기다. 


KGB 출신 푸틴이 리더자가 된 과정도 이런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고 극우 활동이 서구 다른 나라보다 활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아시아와 유럽에 걸쳐 있으면서 정작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통일한 아이덴티티가 없는 나라, 상상의 공동체가 지금 여기에서도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나라. 책에 나오는 몇 문장을 참고 삼아 기록해둔다. 


러시아 외부의 좌파는 러시아 내부의 이념 변화 및 정치 변화를 거의 알아차리지 못했을뿐더러 여러 면에서 러시아를 여전한 좌파 국가로 생각했는데, 이런 실태가 나에게는 기이하면서도 우스꽝스럽게 보였다. p 30


“러시아는 특별한 신명을 부여받았다” 고 믿는 러시아 메시아주의 같은 신념의 뿌리들은 깊다. 그런 신념은 다른 나라들에도 당연히 있었고 19세기에는 특히 더 많았다. 그러나 그런 나라들의 대부분에서 그런 신념은 일시적 현상에 불과했지만, 러시아에서는 그런 종류의 신명을 가장 열렬하게 믿던 슬라보필 (반서유럽-러시아 제국주의자)들 사이에도 다른 러시아인들 사이에도 그런 신념이 끈질기게 존속했다. 그러므로 정치적 메시아주의가 소련 시대에는 속세에서 부활했고 현대에는 새로운 러시아 이상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재등장했다는 사실은 별로 놀랍지 않다. P 33 


이런 맥락에서 유대인, 국제주의자 트로츠키는 해로운 인물로 재평가됐고 러시아 내전에서 붉은 군대가 거둔 승리는 재앙으로 간주되었고 당시 백군 지도자들은 재평가를 걸쳐 복권되었다., 


소련 정권이 무너지기 이전 수십 년간 공산주의 이념의 중요성은 소련의 외부에서는 번번이 과대평가되었다. 소련이 해체되고 나서야 비로소 ‘마르크스주의-레닌주의가 더는 진지하게 인식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확연해졌다. P 49 


정교회가 바라는 것은 러시아 정교가 국가종교로서 차지했던/차지할 옛/새로운 위상을 유지하는 것이다. P 304 


러시아의 정체성을 모색하려는 노력은 러시아에서 200년 전에 그랬던 만큼 고도로 추상적인 차원에서 진행되지는 않아도 여전히 매우 열정적으로 줄기차게 진행된다. 그런 노력의 저변에는 ‘러시아는 유럽이 아니다’고 믿으며 ‘러시아를 파멸시키려는 거대한 음모가 획책된다’고 믿는 확신이 깔려있다. P 423    


오래전에 읽었던 김학준의 러시아 혁명사가 생각난다. 소련 붕괴 이후 '혁명'을 포기했던 선후배들도 잠시 기억난다. 그리고 지금 여기 푸틴이 있다. 세상은 그런 것이다. 답이 있는 것이 아니다. 여유 있게 살고 웃으면서 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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