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사론. 최재건 저
어떤 계기가 생겨 저자를 만나 대화를 한 적이 있다. 그 자리에서 선물 받았다. 감사한 마음에 바로 읽어보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런저런 잡일들이 생기고 머리도 맑지 못해 차일피일하다가 오늘에야 근근이 일독을 했다. 1500페이지가 넘어 사실 일독하기도 쉽지 않았다. 책이 무거워 들고 읽기도 힘들고 분량이 많아 몇 페이지 읽어보고 몇 페이지 남았나, 하면서 보낸 시간들도 많다. 아무튼 다 읽었고 저자에 대한 미안함이 이제 좀 줄어들었다.
이 책은 하나의 기획 아래 쓰인 책이 아니라 여기저기 발표한 논문들을 모아 엮은 책이라 전체적으로 보면 중복된 부분이 꽤 많다. 물론 제목은 다르지만 내용에 있어서는 비숫한 부분이 많아 좀 아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몇 개는 빼고 책을 만들었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의 장점은 원 자료에 대한 철저한 고증에 있다. 저자는 미국 대학 내 도서관 등에서 발견한 100년 전 선교사들의 편지들을 찾아 이야기를 재구성했다. 편지에는 당연히 이런저런 불평, 불만도 있고 선교지 조선에 대한 불편한 소개도 있고 선교사 사이에 갈등에 관한 이야기들도 있다. 이런 내용은 다른 곳에서는 발견하기 힘들다. 정성도 필요하고 영어실력, 맥락에 대한 이해 등 여러 가지가 필요하다. 조선 개신교의 근현대사를 공부할 학생들에게는 좋은 가이드가 될 것 같다.
이 책을 읽다가 미처 몰랐던 사실들도 몇 개 알게 됐다. 맥아더와 일왕이 나눈 이야기는 흥미롭다. 개신교를 국교로 하고 싶다는 일왕의 제언은 다분히 정치적 계산에 의한 발언이지만 만약 맥아더가 수용했다면 역사가 어떻게 바꿨을까, 생각하면 조금은 흥미롭다.
책을 읽다가 재미있는 부분 몇 개 소개한다.
조선에서 맨 처음 신부에 의해 미사가 집전된 것은 1795년 4월 5일 부활절이었다. p 43
언더우드가 인천항에 처음 내린 날도 부활절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원한경/언더우드는 1934년 왕립 아시아학회 한국지부 회보에 한국의 선박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게재했다. p 519
언더우드가 선교 외에 다른 면에서 많은 업적과 연구물을 만들었다는 것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흥운동은 조금 넓게는 1903년 원산 부흥운동부터 1910년 백만인 구령 성회까지 일어났던 부흥운동 p 649
이 부흥성회의 성공이 현대 한국 개신교 성격을 규정한 역사적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1913년 한국 개신교는 세명의 목사를 중국 산동성 선교사로 파견했다. p 682
조선도 힘든데 중국에 선교사를 보내다니....
1928년 예루살렘 국제선교협의회에 에 한국교회 대표들이 참가했다. p 729
그 당시 예루살렘이라니 새삼 신기하다.
일본 패전 후 일왕이 맥아더에게 기독교를 국교로 수용하겠다고 했지만 맥아더가 종교 강요는 문제가 있다며 거절했다 고 한다. p939
만약 맥아더가 수용했으면 역사가 어떻게 바꿨을까...
고양시에 있는 행주 교회도 언더우드가 설립했다고 한다.
언제 한 번 가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