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 21. 가라타니 고진 저/윤인로, 조영일 역
이 책은 칸트에 관한 고진의 해석이다. 고진은 마르크스를 넘어 칸트에게서 세계사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하나의 솔루션을 찾았다. 칸트 ! 어찌 보면 나이브해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을 저자는 인정한다. 또 그만큼 비장하다.
적어도 이것을 쓴 시점에서 나의 칸트론은 현대사상 전체를 적으로 돌리는 것이었다. 또 그것을 각오하면서 쓰고 말한 것이다. p 9
그 솔루션은 윤리가 동반된 실천이다. 윤리는 또는 도덕은 우선 자유로워야 한다.
칸트가 생각하기에 보편적인 도덕성의 문제란 자유인가 아닌가에 있었습니다. - 중략- 자유란 다른 원인 없이 순수하게 자발적이며 자율적이라는 말입니다. 만약 공동체의 규범을 따른다면, 그것은 타율적인 것이지 자유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순수하게 자발적이라는 의미에서 자율적일 수 있는가 하면, 사실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p 12
인간은 때어 날 때부터 사회적이며 이미 제도와 관습에 의해 규정되기 때문에 자유로운 주체는 존재할 수 없다. 그래도 만약 가능하다면 실천적(도덕적) 차원에서만 존재한다. 지상명령을 따를 때만 가능해진다. "자유로워지라"는 명령에 의해서 자유라는 것이 초래된다.
"자유로워지라"는 명령은 타자에게도 해당된다. 타자도 자유로운 주체로 대해야 한다. 타자를 수단이 아니라 목적 (자유로운 주체)으로 대하는 것이 보편적 도덕 법칙이다. 이 법칙을 지키기 위해서는 국가의 전쟁이나 국가 자체를 지양해야 한다. 타자를 수단으로 대하는 자본제 경제도 지양되어야 한다. 당연히 급진적일 수밖에 없다. 칸트가 쓴 [영원한 평화를 위하여]가 20세기 국제연합의 이념이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떤 사건과 관련하여 그 원인을 아는 것은 인식의 문제이고, 책임을 추궁하는 것은 실천(윤리)의 문제입니다. 이를 구별한 것은 칸트였습니다. 57
이제까지의 윤리학은 선악이 무엇인지를 논해왔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그와 관련해서는 두 가지 사고방식이 있습니다. 하나는 선악을 공동체의 규범으로 보는 관점이고, 다른 하나는 그것을 개인의 행복(이익)이라는 관점에서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칸트에 따르면 둘 다 타율적인 것입니다. - 중략- 행복주의도 근본적으로 감각이나 감정에 근거한 것으로 원인들에 의해 규정되기 때문에 타율적인 것입니다. 자유가 없다면 주체가 없고 책임이 있을 수 없습니다. -중략- 자유에의 의지에 의해서만 자유가 생깁니다. 그 이외에는 자유가 생기지 않습니다. p 79
윤리/도덕은 개인/자유가 전제될 때만 가능하다. 우리 대부분은 철저하게 의식하지 않는 한 윤리적이지 않다.
칸트는 계몽이란 미성년의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개인으로서는 성숙할 수 있어도 집단(국가)으로서는 항상 미성년 상태에 머물러 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p 88
예를 들어 양차 세계대전의 주체는 국가들이었다. 근대의 산물인 국가가 이성의 이름으로 사람들을 엄청 죽였다.
흔히 공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것은 국가적 레벨의 일들입니다. 그런데 칸트는 그것을 사적인 것이라고 말하고, 역으로 거기서 벗어나 개인으로서 사고하는 것을 공적인 것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칸트는 그와 같은 것을 개인을 세계시민/코즈모폴리턴이라고 불렀습니다. p 91
개인으로 사고하는 것, 즉 윤리적 개인, 자유로운 개인, 타자를 목적으로 대하는 개인이 공적인 것, 공적인 삶을 사는 주체다.
영미계열 윤리학에서 자유란 타인에게 위해만 끼치지 않으면 무엇을 해도 좋다는 것입니다. 칸트가 그것에 반대한 것은 전통적 규범을 중시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특별히 '자유'가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p 124
노동자는 농노나 노예와 달리 '자유'롭습니다. 노동자와 자본가의 관계는 '자유로운' 계약관계입니다. 그러나 임금노동자는 그저 수단에 지나지 않습니다. p 125
국가의 법이 인정되는 것은 그것이 보편적인 법/권리를 보증할 때뿐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법에 관한 칸트의 사고는 근본적으로 국제법적인 것입니다. p 142
칸트는 영원평화가 공격성 표현의 결과로 공격성이 내부로 향했을 때 초래될 것으로 보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p 143
프로이트의 초자아가 죽음충동/공격성이 자기 내부로 향할 때 만들어지는 것처럼 칸트의 비사회적 사회성, 공격성이 내부로 향할 때 - 이성에 의하여 - 영원평화가 가능해진다.
우리가 사고방식을 바꿔도 자본의 운동은 멈추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본의 축적은 우리의 욕망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그것이 우리의 욕망을 낳기 때문입니다. p 198
독후감 쓰기 위해서 다시 봤다. 고진이 이 책을 쓴 이유는 아래 인용한 문장에 나타나 있다. 고잔은 코뮤니즘이라는 마르크스적 가치를 포기하지 않고 그 솔루션을 칸트에게서 찾았다. 그 미래는 목적론적 세계관에 의해 필연적으로 오는 것이 아니다. 매일매일 실천하는 윤리적 세계시민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고 저자가 말한다.
자본제 단계에서 코뮤니즘으로의 발전은 결코 역사적 필연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유로워지라, 타자를 수단으로써만이 아니라 동시에 목적으로 대하라 라는 윤리적 의무에서만 생겨납니다. 역사에는 의미도 목적도 없습니다. 그것은 실천적/윤리적으로만 존재하는 것입니다. 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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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판 서문_ 9
서문_ 11
제1장 부모의 책임을 묻는 일본의 특수성_ 17
정체를 알 수 없는 ‘세상’이라는 것의 힘_ 27
엔치 후미코의 ≪식탁이 없는 집≫이 그린 두 가지 투쟁_ 35
제2장 인간의 공격성을 인식하는 것_ 39
정신분석을 단순하게 육아나 교육에 응용해서는 안 된다_ 44
인간의 ‘공격성’은 아무리 평화적으로 양육해도 사라지지 않는다_ 50
제3장 자유는 결코 ‘자연’으로부터는 나오지 않는다_ 55
인간을 강제하는 구조에 대한 인식_ 58
‘자유로워지라’는 의무와 자유_ 62
제4장 자연적?사회적 인과성을 괄호에 넣다_ 69
자유라는 관점에서 도덕성을 보다_ 75
원인에 대한 철저한 인식이라는 책임짐의 방식_ 82
제5장 세계시민적으로 사고하는 것이야말로 ‘퍼블릭’한 것이다_ 85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의 칸트적 전도_ 91
다른 ‘공통감각’을 가진 타자와의 합의_ 93
제6장 종교는 윤리적일 때만 긍정된다_ 99
세계종교는 자유의지를 부정한다_ 105
오십 보와 백 보의 차이가 가진 절대성_ 108
제7장 행복주의(공리주의)에는 ‘자유’가 없다_ 119
환경문제는 행복주의로 해결되지 않는다_ 122
‘죽은 자를 두려워하라’는 말의 의미_ 129
제8장 책임의 네 가지 구별과 근본적 형이상성_ 135
칸트적 이념의 실현으로서 국제법_ 139
전쟁책임에 대한 ‘철학자’의 기만_ 144
제9장 전쟁에 대한 천황의 형사적 책임_ 151
도쿄재판에서 천황의 전쟁책임은 왜 추궁되지 않았는가_ 154
천황제라는 ‘구조’와 천황의 전쟁책임_ 160
제10장 비전향 공산당원의 ‘정치적 책임’_ 163
마루야마 마사오의 공산당 비판_ 170
전시 중의 전향-비전향을 현실인식의 문제로 사고하다_ 175
제11장 죽은 타자와 우리의 관계_183
‘역사의 재검토’는 불가피하다_ 187
제12장 태어나지 않은 타자에 대한 윤리적 의무_ 191
자본과 국가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가능한 코뮤니즘’_ 195
후기_ 201
헤이본샤 라이브러리판 후기_ 203
참고 문헌_ 207
옮긴이 후기_ 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