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 철학을 잊은 과학에게, 과학을 잊은 철학에게
재미있게 읽었다. 역사나 인물 이야기처럼 쉽게 읽힌다. 중간중간 어려운 공식이 많이 나오지만 스킵해도 전체 맥락을 이해하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다. 적어도 내가 아는 한에 있어서, 자연과학 교수 중에 저자처럼 글을 재미있게 쓰는 사람은 없다. 만약 그의 전공이 물리학이 아니라 철학이나 역사였다면 그의 글이 더 부드럽고 더 깊었을 것 같다. 그의 글을 읽다 보면 고대 그리스 자연철학자들 대화에 참여하고 있는 느낌이 든다. 인간이란 무엇인가에서 출발해서 자연, 물, 수학, 원자로 갔다가 다시 영혼으로 돌아와서 결국 인간, 공동체, 폴리스로 끝나는 심포지엄에 함께하고 있는 것 같다.
저자가 결국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 것이다.
우리에게 대두되는 가장 중요한 물음은 "나는 어떠한 세상에 사는 어떠한 존재이며, 그렇기에 나는 어떠한 방식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하는 것이다. p 523
저자는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얻는 방식을 세 가지로 이야기한다. 답이 아니라 답을 얻는 방식이다. 하나는 일상적 생활경험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지식체계, 관념체계 등을 통해서고 두 번째는 합리적, 과학적 , 실증적 탐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방식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주와 인간에 대한 통합적 이해를 통해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세 개의 방법론은 시계열적 순서이기도 하고 인간 인식의 발전 또는 확산 과정이기도 하다. 또는 공간에 대한 인식의 재구성 과정이기도 하다.
세 번째 "우주와 인간에 대한 통합적 이해"를 위해서 저자는 우선 합리적, 과학적 , 실증적 탐구를 통해 얻은 기존 지식이 무엇인지 친절하게 설명한다. 뉴튼의 고전역학,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양자역학, 통계역학, 우주와 물질, 슈뢰딩거의 《생명이란 무엇인가》, 스피노자와 데카르트의 근대철학 그리고 앎이란 무엇인가에까지 우주와 인간에 대한 통합적 이해를 위한 긴 여정을 하나하나씩 친절하게 설명한다. 그리고 그 여정을 불교의 선종(禪宗)에서, 본성을 찾는 것을 소를 찾는 것에 비유하여 그린 선화(禪畫) 심우도 10편과 연관 지어 설명한다. 저자가 스토리텔러인 이유 또는 다른 자연과학자와 다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학문, 앎, 이해를 위한 노력의 궁극적 목적은 결국 '소'를 찾기 위한 과정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소'를 찾지 못하고 '소'의 겉모습 또는 그림자만 찾는 과정이었다. '소'는 '소'가 아니라 '온생명'의 일부 또는 네트워크의 노드라는 것이다. 이 온생명에 대한 온전한 이해가 "우주와 인간에 대한 통합적 이해"에 필요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러한 생명체들은 모두 '온생명'이라 불릴 더 큰 체계 안에서 그것의 유기적 일부로 작용할 때에 생명으로서의 기능을 할 뿐이지 그것 자체로 생명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p381
생명이란 결국 특정한 한 물질 조각 속에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많은 물질들이 함께 모여 정교한 어떤 '동적 채계'를 이룰 수 있을 때 가능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385
진정한 생명의 모습은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생명현상을 이루어내게 될 이 전체를 하너의 실체로 파악할 때 비로소 나타나게 된다. 이러한 실체는 생명현상이 자족적으로 유지되기 위한 최소의 단위이기도 한데, 이것이 바로 앞에서 우리가 말한 '온생명'에 해당되는 것이다. 386
이 '온생명'이 저자를 물리학에서 자연철학으로 인도했다. 그리고 이 책을 쓰게 했고 이 책이 일반적인 자연과학 서적과 다른 개성적인 책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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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왜 ‘자연철학’인가?
여는 글 《성학십도》와 〈심우십도〉
퇴계의 《성학십도》|퇴계의 학문편력|《성학십도》의 성격|곽암의 〈심우십도〉
제1장 소를 찾아 나서다: 앎의 바탕 구도
[역사 지평] 근대 학문의 싹 《우주요괄첩》|여헌의 생애|《우주설》과 〈답동문〉|성역 없는 학문 세계|내 안에 있는 이로 천지만물의 이를 비추다|대지는 왜 떨어지지 않는가? [내용 정리] [해설 및 성찰]
제2장 소의 자취를 보다: 고전역학
[역사 지평] 데카르트의 ‘놀라운 학문’|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데카르트가 토대를 세운 물리학|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선 거인|기적의 해 1666년|사과는 왜 떨어지나? [내용 정리] [해설 및 성찰]
제3장 소를 보다: 상대성이론
[역사 지평] 두 번째 기적의 해|아인슈타인의 지성은 어디서 왔나?|4차원 세계의 선포|또 한 번의 도약 [내용 정리] 두 사다리의 상대적 기울기|상대속도로 본 4차원 시공간의 의미|아인슈타인의 두 기본 명제들|시간 간격의 상대성과 고유시간|4차원 속도와 4차원 운동량|4차원 상태와 상태 변화의 원리|일반상대성이론 [해설 및 성찰]
제4장 소를 얻다: 양자역학
[역사 지평] 취리히 대학의 한 세미나실|“그는 거대한 장막의 한쪽 귀퉁이를 들어 올렸습니다”|파동함수가 의미하는 것은? [내용 정리] ‘상태’의 함수적 성격과 맞-공간|양자역학의 기본 공리|상태 변화의 원리, 슈뢰딩거 방정식|사건의 유발 및 측정의 문제 [해설 및 성찰] 이중 슬릿 실험|‘상호작용-결여’ 측정
제5장 소를 길들이다: 통계역학
[역사 지평] [내용 정리] 거시 상태와 미시상태|엔트로피와 열역학 제2법칙|온도의 의미와 그 활용|자유에너지와 ‘변화의 원리’ [해설 및 성찰]
제6장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다: 우주와 물질
[역사 지평] [내용 정리] 아인슈타인의 우주방정식|우주의 물질 생성과 그 변화|은하와 별의 형성 [해설 및 성찰] 물고기 우화|우주를 이해한다는 것
제7장 집에 도착해 소를 잊다: 생명이란 무엇인가?
[역사 지평] 슈뢰딩거의 《생명이란 무엇인가》|슈뢰딩거의 책에 담긴 내용 [내용 정리] [해설 및 성찰] 생명의 놀라움과 ‘온생명’의 발견|온생명의 개념 정립|생명의 자족적 단위
제8장 사람도 소도 모두 잊다: 주체와 객체
[역사 지평] 스피노자를 찾아서|스피노자의 출생과 성장|스피노자의 파문|가상의 시나리오|데카르트의 《성찰》|데카르트와 엘리자베스 공주의 문답|스치노자의 대안 [내용 정리] 객체적 양상과 주체적 양상|집합적 주체의 형성|온생명도 의식의 주체인가?|삶이란 무엇인가? [해설 및 성찰] 자유의지에 대한 크릭의 견해|슈뢰딩거의 의식론|의식은 오직 하나인가?
제9장 본원으로 돌아가다: 앎이란 무엇인가?
[역사 지평] 아인슈타인의 권고|세계의 신비는 이것이 이해된다는 것이다 [내용 정리] 주체가 지닌 조직의 구성과 기능|의식적 앎과 비의식적 앎|앎의 대상과 이에 대한 앎의 서술|예측적 앎 작동의 단위 과정|지식과 정보는 어떻게 얻어지는가?|전형적 앎의 몇 가지 사례|보편이론으로서의 동역학동역학의 구조에 대한 메타이론적 성찰|앎의 집학적 주체|끊임없이 네 앎을 죽여라. 그렇지 않으면 네 앎의 너를 죽일 것이다 [해설 및 성찰]
제10장 저잣거리에 들어가 손을 드리우다: 온전한 앎
[역사 지평] 주돈이의 〈태극도설〉|[내용 정리] 무극이면서 태극이다|태극이 나뉘어 음양이 되고 또 변화를 일으켜 오행이 된다|사람의 정신 안에 앎이 생겨나고…|성인이 사람의 바른 자리를 세운다|군자는 이를 지켜 길하고 소인은 이를 어겨 흉하다|시초를 찾아보고 종말로 돌아오니 삶과 죽음의 이치를 알게 된다|상세한 앎과 온전한 앎|온전한 앎의 뫼비우스의 띠 모형|온전한 앎의 한 모습|온전한 앎이 보여주는 것 [해설 및 성찰]
부록
제3장 보충 설명 상대론적 전자기이론
제4장 보충 설명 δ?함수와 푸리에 변환
제5장 보충 설명 햇빛이 가져오는 자유에너지
제6장 보충 설명 일반상대성이론에서 우주론으로
권말 부록 간결한 수학 해설|수학 기호와 부호|그리스 문자와 발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