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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홍열 Mar 31. 2022

내 아바타가 성추행당하면 고소할 수 있을까

김홍열의 디지털 콘서트 


가상공간 안에서 내 아바타가 누군가의 아바타에게 성추행 등 몹쓸 짓을 당하면 고소할 수 있을까. 가상공간 특히 메타버스를 이용한 활동 등이 빈번해지면서 이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몰입형 기술 회사인 카부니 벤처기업에서 메타버스 연구부서 부사장으로 일하고 있는 니나 파텔의 주장은 그 한 사례다. 영국 신문 데일리메일과의 인터뷰에서 그녀는 "가입한 지 60초도 되지 않아 3~4명의 남성 아바타에게 언어적, 성희롱을 당했고, 이들은 본질적으로(그러나 사실상) 내 아바타를 집단 성폭행하고 사진을 찍었다"라고 주장했다. 이 사건 이후로 그녀는 불안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니나 파텔이 가입한 메타버스는 메타(페이스북에서 사명 변경)의 자회사인 ‘호라이즌’이 운영하는 ‘호라이즌 월드’라는 가상공간이다. 호라이즌 월드는 VR 헤드셋인 메타 퀘스트2를 활용하여 가상세계에 입장해 아바타를 사용하여 다른 사용자들과 소통하고 함께 게임 등을 즐길 수 있는 메타버스 플랫폼이다.  미국과 캐나다 지역에서만 서비스를 하고 있고 2월 현재 유저 수가 30만 명을 넘어섰다. 니나 파텔 사건 이후로 호라이즌은 아바타 간에 거리를 약 4피트(약 120cm) 유지하도록 하는 대책을 마련했다. 그러나 이런 일시적 조치가 성추행과 같은 가상공간의 폭력을 예방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포털사이트에서 아바타 성폭행, 아바타 성희롱, 아바타 성범죄 등을 키워드로 검색하면 많은 사례들이 열거된다. 메타버스 기반 가상공간 플랫폼들이 일반화되면 이런 불쾌한 사례들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가상공간에서 일어난 아바타 성범죄는 사실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2003년 출시된 가상현실 게임 ’세컨드라이프’에서 아바타 성추행 사건이 발생했고 2016년에는  VR 게임 ‘퀴브이아르’에서 한 여성이 남성에게 성추행을 당한 적이 있었다. 피해를 당한 사람들은 가상공간에서 당한 성추행이 현실 세계에서 성추행을 당했을 때 느꼈던 기분과 다르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가상공간에서 벌어진 아바타 성추행범을 처벌하거나 법적 책임을 물을 수가 없다.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성폭력 처벌법) 등 모든 종류의 법률에서는 권리 행사의 주체가 자연 인격을 갖고 있는 것을 기본 전제로 한다. 자연 인격 즉 자연인은 출생으로부터 인격을 갖게 되며 사망으로 소멸한다. 출생 이후 고유의 아이디를 부여받고 최종 사망 시까지 그 정체성이 유지된다. 반면 아바타의 경우 출생과 사망의 개념이 없는 일종의 생산물이다. 아바타는 법률에서 말하는 자연 인격이 될 수 없고 따라서 아바타에 대한 폭력은 자연 인격에 대한 폭력으로 규정될 수 없다.  



문제는 피해자가 느끼는 불쾌한 감정이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자신의 아바타를 단지 하나의 캐릭터만으로 여기지 않는다. 자신의 아바타는 가상공간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담지하고 있는 또 다른 자아라고 생각한다. 가상공간에서 존재할 수 없는 나를 대신해서 살고 있는 자신이 바로 아바타라고 생각하고 느낀다. 아바타를 선정 또는 만드는 과정에서부터 감정이입이 시작된다. 아바타에 투자를 해서 맘에 드는 상태로 만들고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관리를 한다. 자신을 대신해 아바타가 회의에 참석하고 거래를 하고 게임을 한다. 이쯤 되면 아바타는 바로 자신이 되고 아바타의 고통은 자신의 고통으로 전이된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아바타는 가상 인격이라고 할 수 있다. 아바타 성폭행 사건은 가상공간에서 벌어진 가상 인격에 대한 폭력이 된다. 가상공간은 꿈이나 사후세계와 같은 상상의 공간이 아니라 현실 공간을 업그레이드한 공간이다. 우리 사회는 이미 이 가상공간을 일상으로 받아들이고 있고 가상공간은 점점 더 확장되고 있다. 예전에는 현실 공간만이 유일한 공간이었지만 지금은 가상공간도 현실 공간의 일부가 되었다. 공간이 확장되거나 재구성되면 기존 법을 포함한 사회질서는 심각한 도전을 받게 된다. 기존 모든 법은 물리적 현실 공간을 전제로 구성되었기 때문이다. 아바타 성추행 사건은 이런 질서에 질문을 던지고 있다. 



가상공간에서 가상 인격에 대한 성추행이 발생했을 경우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나 법적 제재가 사회적으로 논의되기 위해서는 시간이 더 필요하겠지만 현실적 설득력은 있어 보인다. 가상공간도 하나의 실재하는 공간이라는 것이 점점 더 확인되는 과정에서 그 공간에서의 질서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물론 메타버스 플랫폼을 운영하는 사업자들이 불쾌한 사태를 예방하기 위해서 순간 캡처 녹음 기능 등을 통해 신고 가능하게 할 수 있고 수위에 따라 정지 및 영구 이용 금지 등을 조치할 수 있겠지만 그 효과는 제한적일 가능성이 있다. 이제는 캐릭터 아바타가 아니라 가상 인격의 관점에서 가상공간의 폭력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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