꾀병이 아닙니다.
금요일 오후 3시,
"팀장님. 두통이 너무 심해서 일찍 집에 가보겠습니다."
하고 말을 했다.
일주일치 노동을 보상받을 수 있는 소중한 금요일에 지끈거리는 머리와 울렁이는 속을 달래 가며 버스에 실려 집으로 간다. 오늘따라 집 바로 앞에 있는 마라탕 집의 마라 냄새는 얼마나 역한지, 코로 숨 쉬는 것을 포기하고 입으로 숨을 쉬며 현관문을 열었다.
요새 나를 버티게 하는 건 8할이 커피와 맥주다. 병원 가기 싫은 아이에게 돈까스를 사주며 달래듯이 출근하기 싫은 나에게 휘핑과 초콜릿이 들어간 카페모카를 선물로 주고, 하루 12시간이 넘는 근무시간을 맨 정신으로 버티기 위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물 대신 마셨다. 퇴근한 다음 겨우 세수를 하고 침대에 누웠을 때에는 또다시 출근하기 싫은 나를 달래기 위해 맥주를 마셨다.
어르고 달래서 몸속에 카페인과 알콜을 축척시킨 탓인지, 몸에서 이건 아니라고, 제대로 된 음식을 먹으라고 아우성을 하는 듯하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하다. 하루에 서른 통이 넘는 전화를 받고 쉴 새 없이 하대하는 사람들에게 시달리면서 '너는 뭘 하고 있길래 그렇게 바빠 보이는지 잘 모르겠다?'는 동료의 시선을 견디려면 맑고 깨끗한 H2O로는 역부족이다.
점심에는 다음 달에 육아휴직에 들어가는 후배를 만났다. 만삭의 몸으로 후배는 어제저녁 10시에 퇴근했다면서 웃었다. 그러고는 임신 초기에 입덧이 심할 때보다는 지금이 더 나은 것 같다며, 그때는 물 비린내 때문에 세수를 못해 녹차 티백을 세면대에 띄워놓고 세수를 해야만 했다고 말했다.
절대로 임신하지 말라면서 내 손을 꼭 잡던 후배의 손등이 전에 없이 거칠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그래도 내가 얘보다는 나은 거겠지'
하는 생각을 하며 양치질을 하고 있는데 후배가 느꼈다는 물비린내 비슷한 것이 느껴져 웩! 하고 양칫물을 뱉었다.
'벌 받은 거다.'
나보다 더 힘든 사람을 보면서 안도하는 천박한 내 모습에 하느님이 벌을 내린 거다. 생각이 들면서도 '이런 씨앙 그럼 나보고 어쩌라는 거지'
어떻게든 버티면서 살아가려고 커피와 맥주를 조금 (그리고 많이) 마셨더니 두통이나 생기고, 그래서 다른 사람을 보면서 위안을 느끼려 했더니 이제는 구역질이냐
하면서 하늘을 쳐다보니 '응 그래 너 엿 먹이려고 그러는 거야'면서 하늘을 미세먼지 색이었다.
요즘 내 장래희망은 길가에 있는 돌멩이다.
전화받을 일도 없고 이름도 불릴 일 없는 돌멩이가 되고 싶다. 메두사와 눈이 마주치는 방법밖에 없을 텐데. 아, 메두사는 페르세우스에게 목이 잘려 죽어버렸지.
갑자기 두통이 또 몰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