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경험으로 가득 찬 미지의 시간들을 넘어
드디어 수업홍보가 시작되었다. 수업을 기획하고 연습하고 포스터를 수정하는 과정을 함께 했으면서도 막상 요가원 인스타그램에서 내 얼굴과 소개를 만났을 때의 느낌은 묘하기만 했다. 꿈인 줄 알면서도 신났던 꿈에서 깨고 났는데 꿈속에서 받은 그 선물이 실제로 손에 쥐어져 있음을 알아차린 느낌이랄까.
게다가 현장에서 신청을 받고 계신 원장님에 의하면 너무나 고맙게도 벌써 수업진행이 가능한 최소 인원의 신청이 이미 끝나있는 상태란다. 다시 말해 이 수업을 기다리는 사람이 이제 나 하나뿐이 아니라는 말이다. 도무지 현실 같지가 않다. 한참 어안이 벙벙해하다 문득 어쩌면 진짜 ‘비현실’적인 것은 11월 중순 수업을 제안받은 순간부터 지금까지의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수업은 글쓰기와 요가, 나를 살게 한 살림팩키지를 나누고자하는 시도다. 개인적으로는 머리쓰던 사람에서 몸쓰는 사람으로, 전환의 데뷔무대이기도 하다. 말로 전하던 메시지를 몸으로 전하는 첫 경험이라 베테랑 안내자들처럼 노련하고 능숙하진 못 할 거다. 스스로의 그 서투름과 어설픔이 버거워서 첫 경험의 문턱 앞에서 한참을 서성였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다 깨닫게 되었다. 언제 무슨 일을 하든 결코 피해갈 수 없는 '첫 경험'을 맞이할 용기. 그것이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변화경영 프로젝트이고, 마음챙김 프로그램이자, 몸챙김 프랙티스라는 것을. 이 수업을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가 내가 세상에 전하고 싶은 가장 핵심적인 메시지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소중한 첫 경험을 위해 필요한 준비를 하나씩 하나씩 해나가기 시작했다. 그중의 하나가 '아난다 인요가'라는 유튜브 채널이었다. 현장이 최고의 배움터라는데 코로나로 그 현장을 구할 길 없는 초보강사의 궁여지책이었다. 수강생 대신 카메라라도 가르쳐보자 싶었던 거다.
쉽지 않았다. 너무 간절해서 더 힘들었을 거다. 본래 사랑하는 것들만이 나를 괴롭힐 수 있는 법이니까. 그 상황에서 내가 나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저 나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담담히 그 과정을 글에 담아 <가장 사랑하는 그들이 나를 아프게 할 때>라는 제목으로 그 주의 편지를 띄웠다.
바로 이 편지를 읽고 나의 고군분투를 안타까이 여겨 카메라 말고 진짜 수강생이 되어주겠다는 친구가 등장했다. 그렇게 본 수업인 ‘스튜디오 인요가’ 연습을 위한 '홈인요가'가 시작되었다. 해보고 나니 함께 하면 좋을 친구들이 몇 더 떠올랐다. 역시 흔쾌히 마음을 내준 두 명의 친구들까지 4명이 3주를 함께 수련했다. 그 과정을 통해 '홈인요가' 자체로 또 다른 의미에서 충분히 좋은 시간이 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서로를 살리는 깊은 체험이 있었던 거다. 그 체험을 통해 요가 안내자로서의 스스로에 대해 좀 더 자신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다시 한번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언니공동체’라는 커뮤니티에서 여는 재능마켓에 '홈인요가'와 '스튜디오 인요가'를 팩키지로 묶어 출품할 결심을 한 것이다. 기존에 ‘홈인요가’를 체험했던 친구들과 이 친구들의 정성어린 후기에 호기심을 느낀 새 친구들의 신청으로 판매글을 올린 지 24시간도 되지 않아 준비한 모든 수업이 마감되는 기적이 벌어졌다. (물론 코로나로 인한 5인 이상 집합금지를 고려해 1클래스 정원이 3명이라 완판이래도 대단한 숫자는 아니다.) 이쯤에서 고백하자면 3.27 스튜디오 인요가의 최소 인원을 채워준 고마운 고객들이 바로 이들이다.
그런데 기적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언니공동체에 올린 상품 안내를 보고 뜻하지 않은 제안이 들어왔다. 거리상의 문제로 오프라인 수업을 듣기 어려운 해외거주자를 위한 줌수업을 열어 줄 수 없냐는 거다. 물론 당연히 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 겨우 홈요가로 오프라인 수업의 감을 익혀가는 초보인 내가 온라인으로 충분한 소통을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이번에도 그녀들과 나의 현재 상황을 담담히 공유하기로 했다. 그래도 괜찮다면 우선 홈인요가처럼 파일럿 수업을 해보고 수업 지속여부를 결정하자고.
그렇게 내일부터 3.27 본 수업이 있을 때까지 매주 목요일 홈인요가 수업과 수요일 줌인요가 수업을 하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이 간절히 원해 일을 저질러놓고도 막막해 어쩔 줄 몰라하던 작년 11월에서 불과 100일이 채 되지 않은 시간동안 일어난 일들이었다. 매 순간이 첫 경험으로 가득 찬 미지의 시간들이었다. 이미 익숙함의 경계를 넘었으니 앞으로 나를 기다리는 시간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 드라마틱한 100일을 사이에 둔 비포와 애프터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일까?
아마도 ‘두려움’을 맞이하는 태도가 아닐까? 간절히 원하면서도 ‘두려움’에 발목 잡혀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는 나에서 ‘두려움’을 끌어안고서도 내게 허락된 작은 한 걸음을 포기하지 않는 나로의 전환!
도무지 예측을 불어하는 코로나 정국. 여전히 3.27 오프 수업의 가능성을 확신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에게 예비된 불확실성이 어찌 이 뿐일까? 하지만 이제 그런 것은 내게 별로 중요하지가 않다. 상황이 어찌 되어도 신이 나를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와 에너지를 나눌 방법들을 찾게 될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 모색의 과제를 성실히 이행하는 것이 이런 엄청난 커리큘럼으로 나를 이끌어 주시는 우주의 사랑에 보답하는 유일한 길임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이 편지가 100일전의 나처럼 간절한 열망을 품고도 꼭 그 만큼이나 거세게 올라오는 두려움에 휘청이고 있는 당신에게 전달되면 좋겠다. 그래서 우리를 넘어서는 그 어떤 존재가 당신을 위해 내게 맡겨놓은 선물을 꼭 찾아갔으면 좋겠다. 부디 그리 될 수 있도록 수업이 시작되는 그 순간까지 내게 허락된 모든 순간들을 정성을 다해 만나 볼 예정이다. 그렇게 나와 당신을 위해 삶의 기쁨이 깨어나는 순간들을 맞이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