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화요일 새벽이었다. 요가 매트 위에서 벌써 몇 번째 울려대는 알람소리에 마지 못해 몸을 일으켜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일주일에 하루 4천명이 넘는 독자가 기다리는 글을 마무리 해야하는 날이니 하루 정도는 요가수업 연습을 쉬어가자 마음 먹었지만, 결국 자정이 다 되도록 매트를 떠날 수가 없었다.
벌써 며칠째 ‘안녕하세요? 지금부터 3시간 여러분과 자기돌봄 명상을 함께 할 아난다입니다.’ 딱 여기까지 하고 나면 말문이 막혔다. 전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는데 입에서 나오는 말은 엉뚱한 단어들뿐이니, 사람들 불러 모아놓고 버벅대고 있는 내 모습을 떠올리면 심장이 조여들며 솜털이 저절로 일어섰다. 그러니 어찌 하루라도 수업연습을 건너 뛸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글쓰기가 수월한 것은 절대 아니었다. 요가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고 나서 벌써 몇 주째 밤샘 작업이다. 컴퓨터 앞에서도 하고 싶은 이야기는 너무 많은데 대체 어찌 전달해야할지 막막한 상황은 마찬가지. 그날도 자정을 훌쩍 넘겨서야 매트 접을 여유도 없이 바로 컴퓨터를 켰지만 이것 저것 썼다 지웠다만 반복할 뿐 도무지 글이 써지지를 않았다.
피로로 날카로워진 신경이 수명 다해가는 필라멘트처럼 파르르 떨리는 것이 느껴지는 상황이니 앉아 있어봐야 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좀처럼 포기가 되지 않는다. 결국 매트 위에서 요가 니드라(심신의 이완을 유도해 안정적인 상태에 이르도록 하는 명상법)를 빙자한 쪽잠으로 몸을 달래가며 한줄 한줄 아슬아슬하게 글을 뽑아내야 했다.
글쓰기와 요가를 통해 자신을 돌보는 자기돌봄 명상수업. 아주 오~래 품고 있던 이 열망이 이루어질 기회가 찾아왔을 때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른다. 글쓰기와 요가. 숨 쉬는 것조차 버거워 그냥 무너져 버리고 싶었을 때 나를 일으켜 세워주었던, 아니 지금도 여전히 나를 살아있게 해주는 고마운 사랑을 필요한 사람들과 나누는 삶이라니! 상상만 해도 가슴이 두근두근거렸다. 짧지 않은 시간, 크고 작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얻은 깨달음들로 이제는 그 과정에서 오는 웬만한 어려움쯤은 가뿐히 소화해 낼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런데 막상 그 설레는 길 위에서 서고 보니, 웬 걸. 잘하고 싶은 마음을 따라가 주지 못하는 손발이 원망스러웠다가, ‘이러다가 또 주저앉는 거 아냐?’ 불안해 하다가 결국 ‘어차피 안 될 건데 또 뭐하는 거니, 제발 그만 좀 하면 안 되겠니?’하고 자신을 구박해대는 패턴. 눈부신 성과로 존재를 증명하고 싶은 갈망과 있는 그대로의 존재 그 자체로 받아들여지고 싶은 열망이 충돌하는 전선에서 얼어붙어 어쩔 줄을 모르는 너무나 익숙한 나를 다시 만나고 말았다.
‘이러니까 다시는 사랑 따위 안 하겠다고 한 거 잖아요. 이러니까 그냥 혼자서 몰래 숨어서 좋아하는 걸로 충분하다고 그런 거라구요. 이젠 어쩔 거냐구요? 제 삶의 숨통이었던 요가와 글쓰기까지 제 목을 이렇게 조여 오면 전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냐구요!!’
화요일 오전, 가까스로 편지를 보내놓고 다시 매트 위에 누워 누군지도 모르는 상대에게 볼멘 소리를 쏟아붓고 나니 양쪽 눈꼬리로 뜨거운 눈물이 주르륵 흘러 내린다.
‘그렇게 힘들면 이제라도 도저히 못 하겠다고, 그만 둔다고 하렴. 그런데 네가 원하는 게 정말로 그만 두는 거니?’
“아. 니. 요!! 사실은요. 너무나 하고 싶어요. 꼭 하고 싶어요. 그래서 더 무서운 거예요. 잘 못하면 영영 기회를 잃게 될까봐. 다시는 사랑한다는 말조차도 꺼낼 수 없게 될까봐. 어떻게 해요. 저는 어떻게 하면 좋냐구요?”
애타게 물었지만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온 우주를 통틀어 오직 나 자신 뿐이라는 것을. 다음 영상들은 지난 한 주간 찾아낸 이 질문에 대한 대답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