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버려 둘 때'와 '도와주어야 할 때'

신이 모든 생명에게 공평히 주신 현장, '지금 여기'의 쓸 모

by 아난다
봄에 천 개의 꽃을 가득 피웠던 목련의 가지를
짧게 잘라 주었습니다.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 땀을 뻘뻘 흘리며
웃자란 부분들을 모두 쳐주었습니다.
비와 햇빛으로 자란 나무는
스스로 아름다워집니다.
웬만하면 손을 대지 않고
자연스럽게 자라도록 놓아두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꼭 도와주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
너무 웃자라
가지가 처지고 뿌리가 견디기 어려워하면
가지를 덜어내 주어야 합니다.
제 몸을 주체하기 어려운 경우지요.
비바람이 치면
가지가 부러지고 넘어지기도 하니까요.
자기를 가꾼다는 것은 치장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답지 않은 군더더기들을 쳐내고
덜어내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 구본형의 <일상의 황홀> 중에서

'내버려 둘 때'와 '도와주어야 할 때'를

알아차릴 수 있는 감각.

그것만 제대로 익힐 수 있어도

삶으로부터 받은 숙제의 절반은

덜어낼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나머지 절반은 '도와주어야 할 때'가 왔을 때

효과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지혜와 힘을 기르는 것일테고요.


하지만 만약 제게 이 두 과제중에

어떤 것이 더 어렵냐고 묻는다면

1초도 망설임없이 전자라고 대답합니다.

정말 도움이 필요하다는 간절함이 있다면

그 길은 어떻게든 찾아내게 마련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결국 '내버려 둘 때'와 '도와주어야 할 때'를

구분하는 감각만 제대로 익힐 수 있어도

삶이 한결 가벼워진다는 이야기겠지요?


문제는 말로는 이리도 간단한 것이

막상 실전에서는 좀처럼 몸에 익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삶의 비법을 찾아 헤매고 있는 것이겠죠?

저도 마찬가지였구요.


여기서 우리가 잊지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감각'을 익히는 것이라는 통찰입니다.

그 감각은 그냥 오지 않습니다.

지금 여기에 온 마음을 열고,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는 과정을 통해서만

조금씩 조금씩 익혀갈 수 있습니다.

너무나 절박한 과제이기 때문에

타인의 현장을 빌리는 방식으로는 성에 찰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오롯이 나에게 속한 나의 현장이 소중합니다.


그런 현장이 아직 없으시다구요?

설마요.

신이 모든 생명에게 공평히 주신 '지금 여기'라는 현장이 당신에게만 예외일 리가 없습니다.

만약 더 아름다운 삶을 열망하신다면

지금 여기 내가 머무는 공간에서

'내버려 둘 때'와 '도와야 할 때'를 구분하는 연습을 시작해보면 어떨까요?

당장 할 수 있는 아주 작은 것부터,

당신에게 가장 친절하고 편안한 방식으로~^^


아난다 살림명상 (2).png

https://youtu.be/EWbMbHOoMhI?si=WNOpktO2wsuorFR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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