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우리에겐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가장 가까운 아내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는 쓸쓸한 당신에게

by 아난다
★ 세상에서 가장 사랑해야 했으나 그러지 못했던 당신에게..

따사로운 봄햇살같은 사람이고 싶었습니다. 부서지는 햇살사이로 불어오는 상쾌한 바람같은 사람도 되고 싶었습니다. 목마른 당신을 축이는 한잔의 시원한 샘물이고 싶었고, 매혹의 향기로 당신을 취하게 하는 탐스런 꽃송이로 살고 싶기도 했습니다. 당신에게 늘 아름다운 사람이고 싶었고 이를 위해 힘을 아끼지 않는 스스로를 대견스러워했지만, 죽음의 문앞에서 냉정히 돌이켜보니 전 입으로만 사랑을 말하는 허풍장이일 뿐이었네요.

빈말은 하지 않겠어요. 하루에도 몇 번이고 ‘사랑해’와 입맞춤을 주고받는 5년을 보냈지만 그건 사랑이 아니었어요. 제가 안다면 당신도 느끼고 있을테지요. 전 당신을 사랑할 수 없었습니다. 당신을 보면 자꾸만 고통스럽게 죽어가신 아빠가 떠올랐으니까요. 마치 아빠의 죽음이 당신탓이기라도 한 것처럼.

********* 중략 *********

가장 가까운 아내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는 쓸쓸한 당신에게 저는 뭘 더 내놓으라고 떼를 썼던 걸까요? 미안하고 섭섭하고 고맙고 서러운 마음이 뒤섞여 소용돌이칩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죽기 전에 한번이라도 온전히 당신을 사랑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가슴 한 켠에 숨어 평온한 행복을 위협해오는 마음의 멍울을 얼른 풀어내야하는데...아프더라도 한켜 한켜 벗겨내는 것 말고는 방법을 모르겠어요.

당신의 허물을 탓하려는 것이 아니예요. 부족한 저를 안타까워하고 있는 것이랍니다. 여보. 이런 저라도 괜찮으시다면 이제라도 제 사랑을 받아주세요. 지금까지는 원망이 사랑을 이겼을지라도 이 순간부터 우리 사이엔 사랑말고는 아무것도 없어요. 조금 더 일찍이었더라면 좋았을 것을..그치만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았어요.

너무 늦어 미안해요. 그래도 사랑해요. 훈아, 영아. 이리 오렴. 우리는 앞으로도 영원히 가족이다. 사랑한다..아가야들..엄마 몫까지 아빠를 많이 사랑해줘야 한다. 엄마도 항상 곁에서 지켜줄게.. 그럼..안...녕...


기억하려나? 연구원 입학여행 가야한다면서 밤새도록 컴퓨터 앞에서 훌쩍 거리던 거. 가상 장례식의 유서를 작성하던 그 때 손끝으로 흘러나온 이 글을 받아적으며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몰라.


내게 부모님이 만들어주신 원가족은 삶의 아킬레스건같은 부분이었지. 부모님을 인간적으로 이해하면 이해할수록 나는 점점 더 힘들어졌거든. 그 상황이 너무나 화가 나는데 정작 가해자인 부모님들은 나보다 더 아프신 게 느껴지는 거야. 생각하면 할 수록 가슴이 답답해졌어.


사회생활을 하기 위한 에너지를 재충전할 수 있고, 단란한 웃음이 넘치고, 가족 간에 서로 존경하고 사랑하는 '평범한' 가족관계를 얼마나 간절히 그리워 했는지. 그리 쉽게 결혼을 결정한 것도 당신과 함께라면 이런 꿈을 실현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때문이었을테고. 결혼 6년차를 맞던 그 즈음 나는 그 꿈을 이뤘다고 믿었지. 그런데 삼개월간 도대체 내 안에선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이때부터 였을거야. 우리의 갈등이 표면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것도. 머리로는 어떻게든 당신과 잘 해봐야하는 걸 알겠는데 그동안 억눌러왔던 그 무언가가 자꾸만 그러지 말라고 부추기는 거야. 그때만 해도 나는 <자아탐색>의 의미를 ‘그동안의 삶을 꼼꼼히 검토해서 필요한 부분만 추려 가라’는 정도로 받아들이고 있었거든. 어떤 희생이 따를지라도 바로 잡을 것은 바로 잡고 버릴 것은 다 털어내고 가야한다고 믿었던 거지.



★ 정면돌파

항상 그랬다. 핵심을 찌르지 못하고 겉돌며 웅웅. 휴직을 한지도 5주, 50주 과정중의 10%가 훌쩍 떨어져나갔다. 비장했던 각오가 무색하게 아직도 뻑뻑히 헛돌기만 한다. 비겁해서다. 더 이상은 안 된다. 오늘은 정면돌파다.

연구원 응시원서를 만들 때만 해도 가정은 내 자부심의 원천이었다. 그런 척했던 것이 아니라 정말로 그랬다. 그런데 한꺼풀 벗겨놓고 봤더니 완전 상처투성이라는 것을 알았다. 별안간 새로운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니다. 특별히 남편이 보기 싫어졌다거나 아이들이 거추장스러워졌다거나..뭐 이런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즐거움보다 책임이 너무 많다. 나는 어쩌자고 이런 구도안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 왔단 말인가? 아마 가정이라는 시스템 자체가 탐났다기 보다는 그냥 도망치고 싶었다. 대한민국은 미혼으로 살아가기엔 부담스러운 나라라고 생각했다. 기왕에 결혼할거라면 더 늦출 것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서둘렀고, 말도 안 되게 서둘렀던 것 치고는 운이 좋았다. 남들이랑 비교하면 그런대로 괜찮은 편에 속하는 결혼이라고 믿었기에 자부심 리스트에 과감히 올릴 수 있었다. 그런데 이미 어쩔 수 없는 구도 안으로 들어와 있는 지금 새삼스럽게 자랑스러운 가족들안에 정작 ‘내’가 없음을 깨달고야 말았다. 나를 ‘살아있게’ 만들어줄 다른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눈치채버린 것이다.

아직은 희미한 느낌이다. 그런데 만약 거부할 수 없는 확신이 든다면 그땐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살아있다’는 느낌을 따르는 것이 그렇게나 중요하단 말인가? 나는 좋을지 모르지만 나를 둘러싼, 지금까지의 나를 지탱해준 소중한 사람들에게 상처가 된다면 그건 어쩔 것인가? 왠지 나는 확 저질러 버리고야 말 것 같아 너무 걱정된다.


작년 봄 내가 썼던 글들이야. 어때? 섬찟하지? 그만큼 궁금하기도 할거야. 이랬던 내가 어떻게 ‘다시 태어나도 당신과 결혼하겠다’고 말하게 되었을까? 후~!! 알고 싶어도 조금 더 참아야겠다. 이제 영이 데리고 와야할 시간이거든. ^^


하나 부탁할 것. 이야기의 중간까지만 읽고 집에 와서 화내기 없기다!! 나 당신 화내는 거 엄청 무서워하는 거 알잖아. 당신이 무서운 얼굴하면 온 몸의 피가 다 얼어버리는 것 같다구요!! 이궁..진짜 그만하고 나가야겠다!!


그럼 다음 편지까지 또 안녕~♥



이미지 출처 : https://pin.it/6uQT6K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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