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슬픈 '저팔계송'에 대한 답가

아빠로서 '사랑받을 권리'

by 아난다

보낸사람 : "미옥" 11.08.24 18:35


또 하나의 사이드 트랙!! 넘 스트레스 받을 건 없어. 난 작가잖아. 작가가 많이 쓰는 건 당연한 거잖아. 실은 어제, 아니 오늘 새벽에 당신이 우릴 깨웠을 때 영이 잠들기만 기다렸다 벌떡 일어나 쓰고 자려던 건데...아마 당신에게도 솔깃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네.


당신이 부르던 노래. 완전 가슴 아팠거든. 당신은 장난처럼 불러댔지만 그냥 웃으며 들을 수가 없더라.


나는 나는 저팔계! 왜 나를 싫어하나? 나는 나는 저팔계! 도대체 모르겠네~! 나의 심술 때문에 그렇게 싫어하나. 나도 알고 보면은 너무나 착한 사람이야~!!



내 품에 안겨 자던 영이를 굳이 깨워서가지군 울린 당신에게 아이가 던진 한마디.


“아빠 회사 가버려!!”


취한 당신은 다시 한번 슬픈 노래를 읊조리기 시작했지.


“왜 나를 싫어하냐구요~!!”


당신도 아이들이 정말로 아빠를 싫어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아마 그렇지는 않을거야. 당신 없을 땐 영이, 자주 “아빠! 보고시포!” 하거든. 근데 말야. 좀 충격적인 건 훈이야. 이번에 여행갔을 때 내가 아빠 보고 싶냐고 했더니 훈이가 뭐라고 했는지 알아?


“하나도 안 보고 싶어. 아빠는 있어봤자 맨날 화만 내잖아!”


나는 알아. 당신이 아이들을 얼마나 아끼는지. 그리고 다른 아빠들에 비해 얼마나 아이들에게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지. 주말마다 아이들 데리고 그렇게 열심히 다녀주는 아빠도 그렇게 흔치만은 않다는 걸 아니까. 적어도 내가 알고 있는 아빠들 중엔 당신이 제일 ‘성실’한 아빠라는 것은 분명해. 그래서 참 고마워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고.


근데 말야. 문제는 그 ‘상대적’으로 좋은 아빠라는 게 아이들에겐 별로 의미가 없는 모양이야. 내가 당신의 노래에 가슴 아팠던 이유가 바로 그 부분이야. 전엔 엄마이고 아내인 나만 힘든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오히려 불쌍한 건 아빠이자 남편인 당신이더라구. 그걸 이제 알았냐구? 어. 부끄럽지만 정말 안지 얼마 안 돼. 이 깨달음 역시 이 편지를 쓰게 된 수많은 이유 중에 중요한 하나이기도 하고.


언젠가부터 나는 당신이 아이들과 충분히 교감하지 못하는 게 진심으로 안타깝기 시작했어. 이건 육아에 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해줬으면 하는, 그러니까 엄마인 내게 떠 넘겨진 의무를 좀 나눠가 줬으면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느낌이야. 내가 아이들을 일방적으로 돌봐주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그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거든.


왜 수많은 시인들이 아이들을 그토록 예찬했는지를 진심으로 이해하게 되었다고 말하면 알 수 있으려나. 아이들은 우주가 부모라는 이름을 감당하기로 각오한 사람들에게 내려주는 선물이야. 천사라구. 물론 힘들 때도 많지. 그치만 한고비를 넘길 때마다 아이들은 그만큼 깊게 자신을 열어주는 거야. 자신을 온전히 내게 의지하는 한 생명을 품을 때의 충만감이란...이럴 땐 정말 부족한 표현력이 한스럽다. 당신이 이 느낌을 안다면 다시는 그토록 슬프게 ‘저팔계송’을 부르지 않아도 좋을텐데...


솔직히 이번에 훈이만 데리고 여행가면서 당신이 영이와의 관계의 깊이를 더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기를 바랬어. 물론 쉬운 일은 아니지. 일하고 돌아와 아이를 돌본다는 게 물리적으로 무리라고 생각될 수도 있지. 그런데 말야. 내가 복직해서 함께 회사를 다니고 있을 때 당신이 출장이라도 가게 되면 난 어떻게 할 것 같아? 힘들다고 어머님이나 친정엄마에게 맡겨 놓을까?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당연히 데리고 자겠지? 그 차이는 어디서 오는 걸까? 남자와 여자라는 생물학적 차이라구? 글쎄...


난 절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 솔직히 나도 애들을 그리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어. 훈이를 낳았을 때만해도 나는 생물학적으로만 엄마였지 정신적으로는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지. 남들은 애를 낳는 순간부터 모성애라는 이름의 신비로운 사랑이 샘솟기 시작했다는데 출산 직후 내게 온 것은 모성애가 아니라 오히려 좌절감에 가까웠거든. 아이를 돌본다는 게 무섭게만 느껴졌어. 그래서 아이를 친정에 맡겨놓고 일주일에 두 세시간씩 보면서도 살 수 있었는지 모르지.


근데 말야. 훈이가 11개월쯤 되었을 무렵 당신 직장 때문에 가족이 모두 일본에서 살게 되었었잖아. 그때 얼마나 우스운 풍경이 연출되었는 줄 알아? 공항에서 친정 엄마 품에 안겨있던 훈이를 넘겨 받아 게이트로 들어가려는데 아이가 얼마나 엄청나게 울어대는지. 누가 보면 내가 유괴라도 하고 있는 줄 알았을거야. 결국 훈이는 하네다 공항에 도착할 때까지 한번을 쉬지 않고 끊임없이 ‘함미’를 찾았어. 아이에겐 아예 ‘엄마’라는 단어가 없었던 거야. 낳았다는 이유로 ‘엄마’가 될 수 없다는 게 확인되는 순간이었지.


내가 영이를 무슨 일이 있어도 데리고 키우겠다고 우긴 것도 그때 받은 충격때문이었어. 물론 그렇다고 아이와의 관계가 함께 한 시간의 양에 비례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 아냐. 당신이나 나나 24시간을 아이들과 보낸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도 하고. 또 바람직하지도 않지. 좋은 부부관계를 만들겠다고 부부가 마냥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현명하지 않은 것처럼.


하지만 노력없이 저절로 좋은 관계가 만들어지는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만은 분명하지. 지금 당신과 내가 이 편지들을 통해 우리가 평생 쓸 관계의 언어들을 만들고 있는 것처럼 아이들과도 평생 관계의 기반구축 작업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야. 그 시기로는 지금만큼 좋은 타이밍도 없을테고.


당신은 말할지도 모르지. 그만큼 시간을 보내주면 되었지 거기서 더 뭘 어떻게 더 하냐구. 그래. 하지만 당신이 말했듯이 같은 노력을 하더라도 상대가 더 기뻐하고 더 좋아하는 것을 잘 발견할 수 있으면 좋은 거잖아? 아이들과의 관계에서도 여우와 두루미의 교훈은 유효하다고 생각해. 기왕 정성을 들이는 거라면 아이들이 먹기 좋고 소화하기 좋은 사랑을 만들어 줄 필요가 있지 않을까?


솔직히 나도 쉽지는 않아. 나는 한다고 하는데도 아이들이 몰라주는 것 같아 섭섭한 경우도 많고. 아무리 잘 놀아주려고 해도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춘다는 게 피곤하게만 느껴지기도 하고. 아이들과 더 많은 교감을 나눠보겠다고 육아휴직까지 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시간이 많아졌다고 해서 저절로 좋은 엄마가 되는 건 아니더라구.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시작한 게 육아일지였어. 작년 9월부터 쓰고 있으니 이제 1년이 다 되어 가네. 1년간 아이들을 관찰하면서 가장 절실하게 느낀 것은 내가 아이들, 특히 훈이를 대하는 태도가 참 모순적이라는 반성이었지.


내가 훈이를 대하는 태도가 모순적이다. 기대수준은 成人이면서 존중심은 완전 바닥. 어른이라면 아무리 마음에 안들어도 그렇게 막 대할 수는 없지 않을까? ‘비켜!’ ‘시끄러워!’라고 말할 수 있는 어른이 어디있단 말인가?

어른스러움을 기대한다면 어른에게 대하듯 예의를 지켜야 할테고, 아이 취급할 거라면 훈이의 아이다운 막무가내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줘야 하지 않을까?


그걸 깨닫고 났더니 훈이가 좀 더 보이기 시작하더라구. 얼마나 섭섭하고 속이 상했을까?


저녁에 집에 도착해서 훈이가 또 울었다. 차 안에서 잠든 아이를 깨워서 집으로 데려오는 과정에서 울음을 터트린 것이다. 영이가 태어나기 전엔 당연히 안고 올라왔다. 훈이로선 동생이 태어나고 맞는 날벼락이었는지 모른다. 처음에 얼마간 저항하다 무서운 아빠 눈치보느라 그럭저럭 참고 몇 달을 지냈던 것 같다. 그런데 요사이 불어오는 훈풍에 기대가 생겼던 걸까? 어젠 전에 없이 세게 울어댔다. 집에 들어와서 한참이 지났지만 눈물이 멈추지를 않는다. 서러운 울음이다.

주차장으로 돌아가 다시 왔던 길을 업고 가달라고 떼를 쓴다. 억지다. 이걸 받아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갈등이었다. 아차 싶었다. 또 훈이에게 어른을 기대하고 있구나.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는 게 우선이라고 그렇게 다짐하고도 또.

훈이를 들쳐없고 밖으로 나왔다. 훈이가 학교에 가자고 한다. 먼데..그리고 힘든데..하지만 기왕에 나왔다. 하자는 대로 해주자. 학교에 갔더니 벤치에 앉자고 한다. 엄마에게 할 말이 있구나? 했더니 그렇단다. 그렇게 한참을 벤치에 앉아서 훈이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간 동생 때문에 속상했던 일이 마구 쏟아져 나왔다. 그중에도 정신이 번쩍 났던 것은 “엄마는 영이만 예쁘다 그러다가 내가 나는? 하고 물으면 예쁘지도 않으면서 그냥 말로만 예쁘다고 그러잖아? 내가 모르는 줄 알아?” “아무도 내 이야기는 안 들어주니까 나쁜 아이가 되려고 했지..뭐” 조금 진정되고 나서 훈이가 한 말이었다.

아이를 업고 나오길 잘했다. 이런 마음이 안에 있었는데 그걸 그대로 담고 7살이 되고 10살이 되고 어른이 되게 하지 않을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이렇게 다짐을 해도 나는 아마 바보같은 실수를 계속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아이 안에도 온전한 마음이 숨쉬고 있다는 것을 잊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마음과 내 마음이 서로 소통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좋은 친구가 되어주고 싶다. 훈이에게 둘도 없는 소중한 친구가 되어 주고 싶다.


사랑받는 아빠가 되고 싶다면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줘. 그러기 위해선 먼저 아이들의 언어를 익혀야겠지. 어떻게 하면 되냐구? 말했잖아. 아이들도 우리랑 똑같은 사람이라는 걸. 당신은 어떤 사람에게 속마음을 털어놓는지 잘 생각해봐. 그리고 아이들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주려고 노력해 보는 거야.


힘들다구? 물론 선택은 어디까지나 당신의 몫이야. 하지만 이것만은 분명히 알아 두었으면 해. 나를 위해서도, 아이들을 위해서도 아닌 당신 자신을 위한 노력이라는 것을. 당신이 부디 아이들의 사랑을 만끽하는 행복한 아빠로서의 권리를 포기하지 않기를 바랄게.


이미지 출처 : https://pin.it/68lT8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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