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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빠르고 안전하고 칭찬받는 길?

그런데 내 마음은 왜 이런 건데?

by 아난다

조직이 나에게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어. 지금까지 살면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낭패감이었지. 물론 처음엔 받아들이기 힘들었어. 하지만 곧 알아 차렸지. 이 사회에선 여자가 스스로의 영역을 개척하는 것보다는 남편을 밀어주면서 남편을 방패 삼아 자신을 높이는 편이 훨씬 더 빠르고 안전하고 칭찬받는 길이라는 걸.


당신과의 결혼을 그렇게 쉽게 결정할 수 있었던 데는 이런 이유도 적지 않게 작용했다는 걸 고백할게. 나 대신 뛰어줄 플레이어가 필요했던 거지. 당신이라는 뛰어난 플레이어를 영입한 나에게 직장은 더 이상 나를 위한 현장이 아니었어. 플레이어가 최상의 성과를 올릴 수 있는 전략구상의 소스와 그에 필요한 자원을 제공받는 것이 내게 조직이 주는 의미였으니까.


당신에게 해외연수의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내가 이미 다녀왔던 곳을 중심으로 손수 신혼여행을 기획했던 것도, 남산만한 배를 해가지고 강남역 학원가를 이 잡듯이 뒤져 당신에게 꼭 맞는 학원을 찾아내었던 것도, 힘들다 힘들다 하면서도 수험생 뒷바라지하듯 당신 뒷바라지를 했던 것도 아마 당신의 성취를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고 싶은 욕심때문이었을 거야.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는 꽤나 호흡이 잘 맞는 팀이었지? 당신은 착착 원하던 고지를 점령해나갔어. 문제는 여기서부터였지.


내 앞에 놓인 과제를 다 밀어두고 당신을 도왔던 건 당신의 과제를 끝내고 나면 내 것도 어떻게든 되리라 막연히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막상 당신의 숙제가 끝나고 나도 여전히 내 숙제는 손도 안 댄 채로 그대로 남겨져 있는 거야. 물론 당신은 충분히 고맙다고 표현해줬고 나도 흐뭇했어. 하지만 그게 다였어.


당신은 또 다음 목표를 향해 달려나가며 나의 응원을 기대했지만, 나는 전처럼 마음 편히 당신만을 위해 에너지를 쏟을 수 없었지. 아니 솔직히 당신을 붙들고 따지고 싶었어. 내가 이만큼 해줬으면 당신도 나를 위해 그에 합당한 기여를 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구!!


그 복잡미묘한 감정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섭섭함과 억울함과 허무함이 부글거리는 용암을 사랑이라는 약하디 약한 지표로 살짝 덮어놓은 듯한 형국이랄까. 그제서야 깨달았지. 내가 당신에게 바쳤던 헌신은 사랑이 아니라 오히려 ‘폭력’에 가까운 것이었음을.


희생은 자신없는 사람들의 거래방법이다. 일단 갖다가 안겨놓고 후불로 비용을 청구한다. 비용을 청구할 계획이었으면 처음부터 분명히 했어야 한다. 이 서비스는 ‘프리웨어’가 아닌 판매용이라는 것을. 댓가가 있다는 걸 안다면 상대방은 훨씬 더 신중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자칭 ‘희생자’들은 필사적이다. 여기서 팔지 않으면 어디서도 팔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희생은 어차피 버려질 것이라면 우선 안겨주고 나중에 동정을 이용해 비용을 청구하는 편이 훨씬 승산높은 거래방법이라는 것을 아는 영악한 자들의 거래법이다. 희생자들의 논리는 ‘강매 사기’와 정확히 같다. 둘 다 폭력이다. 이쯤되면 ‘희생자’를 동정해 온 자신이 바보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희생자’임을 호소하던 스스로가 부끄럽지 않은가?


만약 그날의 깨달음이 없었다면 지금도 당신 내조하고 아이들 뒷바라지하는 것을 삶의 즐거움으로 여기며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을거야. 어쩌면 당신 입장에선 그편이 더 편했을 수도 있었을라나?


그러나 정말 그게 좋은 일이었을까? 나라는 사람이 그렇게 송두리째 변신하는 게 가능하기는 한 걸까? ‘그 자식이 내 청춘, 내 능력, 내 시간들을 모두 빼앗아 갔어! ’ 오히려 이런 절규를 쏟아내는 쪽이 훨씬 더 가능성있는 시나리오라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 진지하게 나의 ‘꿈’과 ‘행복’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 맨 처음 내가 찾은 키워드는 다이어트였지. 지금 생각해보면 참 우습지만 그때 나에게 다이어트는 ‘새로운 인생’의 다른 이름이었어.


이미지 출처 : https://www.pintere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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