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삶의 새로운 가능성
우리는 많이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풍요롭게 존재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 중에서
내 인생의 미숙한 1부가 막을 내리는구나.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을 읽고 난 직후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철이 들면서 제 머리와 가슴에서 걷힐 줄 모르던 축축한 안개가 한순간에 싹 걷힌 느낌이었습니다.
제가 충분히 행복하지 않은 이유가 충분히 소유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한 순간도 의심한 적 없었습니다. 그래서 소유를 늘리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죠. 물론 이 땐 오히려 마음이 편했습니다. 그저 열심히 노력해 고지를 점령하기만 하면 된다고 믿었으니까요.
그런데 열심히 노력해 소유를 늘려가도 쾌감은 길지 않았습니다. 절대적 기준으로 보면 처음보다 상당히 많이 늘어난 것이 분명한데도 그 지점에서 주위를 둘러보면 그저 남들과 비슷한 수준일 뿐이고, 위를 보면 아직도 쟁취해야할 아이템들은 끝도 없이 남아있는 것입니다.
저~ 위에 가면 뭔가 다른 것이 있으려나? 하지만 아니면 어쩌지? 도대체 넘사벽 금수저 재벌 2세와 아름다움과 인기를 한 몸에 가진 연예인들이 왜 자살한 거야? 그렇게나 많이 가져도 아직 그 위가 있다는 거야? 평생을 다 바쳐도 갈까말까한 지점인데 거기도 끝이 아니라니! 난 그저 죽을 때까지 이런 느낌으로 살아가야하는 거야? 아~! 답답하다.
이러고 있을 때 제게로 온 책이 <소유냐 존재냐>였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쳐다도 안 봤을 겁니다. 왠지 무서워 보이잖아요. 경매와 주식강의를 하던 재테크 강사의 추천이 계기였습니다. 혹시나 부자되는 비법이라도 담겨있나 싶어 읽어는 보겠지만 아무래도 사기는 좀 아까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도서관에서 빌려서 보기 시작했죠. 읽는 내내 살갗에서 소름이 가시지를 않았습니다. 아~ 그렇구나. 내가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소유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존재가 비루해서였구나.
한편으로는 그 유명한 에리히 프롬이 이에 대해 써 놓은 거 보면 나만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에 울컥 눈물까지 났습니다. 순식간에 읽기를 마쳤지만 책을 반납할 수가 없었습니다. 몸과 마음을 완전히 다 내주며 읽은 책이라 마치 인격체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분실신고를 하고 새 책을 사서 도서관에 반납했죠. 그만큼 각별한 의미로 다가왔던 겁니다.
물론 저는 아직 소유형 인간의 태를 완전히 벗지는 못했습니다. 소외감이 찾아오면 습관적으로 무엇을 더 늘려야하나 두리번거리는 저를 상당히 자주 만나게 되니까요. 하지만 그 때마다 이 책을 떠올립니다. 더디더라도 본질적인 치유를 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거죠. 존재를 풍요롭게 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다른 애벌레의 머리를 밟고 기둥의 꼭대기를 향해 올라가는 방식으로는 나비가 될 수 없다. 나비가 되기 위해서는 죽을 위험을 무릅쓰고 단단한 고치로 들어가야 한다구요.
2010. 1 구본형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응시원서 중에서
관심의 영역을 직장 밖으로 돌린 것이 조직에서 받은 상실감을 상쇄해보겠다는 거 아니냐구 물었지? 그 질문에 아니라고도 할 수 없고 또 그렇다고도 할 수 없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어. 아무리 그럴싸한 포장을 한다고 해도 ‘재테크’라는 키워드가 내 삶속으로 들어왔던 이유의 대부분은 분명히 더 멋진 걸 손에 넣어 그들에게 보란 듯이 거들먹거려보겠다는 욕심이었을거야. 하지만 이 책을 읽은 이후 내 영혼은 뜻하지 않은 탈피를 경험하게 되었어. ‘삶의 효율’이 아니라 ‘삶의 의미’ 자체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던 거지.
가진 게 부족해서 불행한 게 아니라면 나는 왜 이렇게 힘들어하는 걸까? 에리히 프롬이 삶의 목표라고 말한 ‘풍요로운 존재’가 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그나저나 나는 대체 왜 태어난 걸까?
그래. 맞아. 대학시절 채 매듭짓지 못하고 서둘러 도망쳐버렸던 질문목록이 15년만에 고스란히 다시 내게로 찾아왔던 거야. 그때랑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 질문을 피하기 위한 그럴듯한 명분을 찾아낼 수가 없었다는 거였어. 나도 바보가 아닌데 15년 전에 써먹었던 핑계, 그러니까 ‘이런 대책없는 질문에 대답하고 있느니 현실에 더 충실해 보겠다’는 변명에 두 번 속을 수는 없었으니까.
그러니 도리 있겠어? 이번엔 무슨 수를 쓰더라도 주어진 질문에 대한 답을 내는 수 밖에. 조금이라도 힌트가 되겠다 싶으면 그게 뭐든 무조건 찾아서 읽었어. 내게 책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였거든.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다고 했지? 왜 그렇게 책에 집착하는지. 그래. 맞아. 책은 무의미라는 늪에 빠져 허우적대던 내가 잡을 수 있는 유일한 동아줄이었어. 그러니까 독서는 내게 그야말로 실존이 달린 미션이었던 셈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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