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난다 May 09. 2021

'엄마'의 재발견

'가정', 굴레에서 꿈의 현장으로

그렇게 조금씩 기운을 차리면서 비로소 아이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니. 세상에. 너희들 언제부터 엄마를 그렇게 보고 있었던 거니? 이제야 너희들의 목소리가 들리는구나. 미안하다. 아가들아. 엄마는 지금껏 대체 뭘 하고 살았던 거니? 엄마가 약속할게. 적어도 너희들이 먼저 엄마를 밀어낼 때까진 너희들 곁에서 바라봐주고 만져주고 보듬어줄게. 너희가 ‘엄마는 왜 집에만 있어?’라고 물어줄 때까지는 아무데도 안 갈게.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면 보낼수록 ‘엄마인 나의 행복은 어쩔 수 없이 아이의 행복에 달려있다’는 것을 절감하게 되었다. 곁에 머물며 충분히 사랑받는 느낌이 무엇인지, 온전히 받아들여지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를 온 몸으로, 온 영혼으로 전해주고 싶다는 열망은 날로 커져만 갔다.


아이들이 자신의 세상을 살아나갈 수 있는 든든한 기반을 만들어주는 것이야 말로 이 시기에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가치있는 일이며, 가장 하고 싶은 일임을 받아들이게 되었던 거다. 그제야 버겁기만 하던 육아가 조금씩 재미있어지기 시작했다.


'가정', 굴레에서 꿈의 현장으로


더불어 그동안 마지 못해 겨우 급한 불 끄는 방식으로 수행하던 주부역할도 새롭게 다가왔다. 나 자신과 사랑하는 아이들의 건강과 행복을 위한 터전을 일구고 가꾸는 귀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가족들의 모든 요청에 완벽하게 대응하고, 별안간 온 집안이 호텔처럼 빤닥거리기 시작했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다.


하지만 시간 떼우기에만 급급한 파트타임 보모 겸 가사도우미에서 가정 경영 전반을 책임지는 CEO로서 정체성의 변신을 겪으며 내 마음과 집안 분위기가 눈에 띄게 안정되기 시작한 것만은 분명했다. 여기에 자기탐색 과정을 통해 내 안에 누군가의 성장을 돕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열망이 숨쉬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변화에 큰 동기가 되어주었다.


하지만 도대체 누구의 성장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는 여전히 막막하기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마음껏 꿈꾸는 데 방해가 된다고만 생각하던 ‘엄마’라는 역할이야말로 ‘사람의 성장을 돕는 조력자’, 그러니까 내가 꿈꾸던 바로 그 자리라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정말로 누군가의 성장을 돕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면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먼저 나 자신과 아이를 정성으로 보살피고 성장시킬 수 있어야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었다. 농사에 대한 열망만 가득한 채 기술도 계획도 없는 상태라면 우선 가까운 곳의 텃밭을 일구는 것부터 차근차근 시작하는 것이 상식일테니까.


여기에 스승을 비롯해 내게 힘을 주던 위대한 작가들 역시 지금의 나처럼 희미한 가능성의 씨앗에서부터 자신을 키워나갔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깨달음은 점점 신념으로 변해갔다. 만일 재능이 부족해 작가가 되지 못한다고 해도 인간을 성장시키는 데 필요한 거의 모든 직업을 품고 있는 '엄마'라는  역할 속에서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 하나쯤은 발견하고 단련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전 05화 영혼의 응급실에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