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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난다 May 08. 2021

영혼의 응급실에서

필요한 모든 것은 내 안에 다 있다!

스승과 함께 나 자신을 공부하며 단절과 고립에 대한 공포가 내 통증의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을 기쁘게 하지 못하면 버려질 것만 같은 두려움은 나를 잠시도 평화롭게 내버려두지 않았다. 너무 넘쳐서도 안 되고 모자라서도 안 되었다. 기준은 늘 그들이었다.


내가 남들과 좀 다른 방식으로 느끼고 생각한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부터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다. 나도 모르게 느끼고 생각한대로 행동하게 될까봐 무서웠다. 그 순간 세상 밖으로 내동댕이쳐질 것만 같았다. 내게 주어진 선택지는 하나였다.


내 느낌과 생각자체를 봉인해버리는 것이었다. 세상이 인정한 방식으로 느끼고 생각하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안심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 빛나는 성공이 게 준 것은 위안이 아니었다. 어느새 나는 세상과도 나 자신과도 단절된, 철저하게 고립된 섬이 되어 있었다.


돌이켜 보면 스승을 따라나섰던 것은 외로움에 지친 나의 마지막 구조요청이었다. 이대로 두면 정말로 죽을 수도 있겠다는 경보가 여기저기에서 울려대던 그 시절, 마음 놓고 나를 풀어놓을 수 있는 시공을 만나지 못했다면 나는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겉으로 아무 문제 없어보이던 입사동기가 두 아이를 남겨두고 스스로 삶을 버리는 선택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슬픔 다음에 밀려온 감정은 안도감이었다. 그녀가 아니라 나였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연구원 과정은 적절한 순간에 나타나 준 ‘영혼의 응급실’이었다. 응급실에서 응급처치를 받고 본격적인 치료를 시작하는 것이 치명상을 입은 환자가 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선택이듯 내게 연구원 과정은 그야말로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던 것이다.


어쩌면 당신은 묻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리 아팠다면 진짜 병원으로 갔어야 했던 것 아니냐고.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던 적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감히 장담할 수 있다.


이 세상에 오직 한 사람 나 자신만이 들을 수 있는 내면의 소리에 귀기울이는 절대적 시간, 그 어두운 길을 이미 경험한 이의 따뜻한 지지와 격려, 그리고 나의 아픔을 이해하는 동료들과 나누는 교감의 체험. 이 삼 요소가 결합하지 않고는 그 때 내가 앓았던 바로 그 질병을 근본적으로 치유할 수 없다는 것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필요한 모든 것은 내 안에 다 있다.’ 그렇게 스승 곁에서 1년을 지내는 동안 도저히 믿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1년간 나를 지나간 모든 것들은 알고 나면 너무나 당연하지만 알아차리기 전엔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던 이 엄중한 진실을 전하는 메신저였다. 그리고 졸업 여행에서 동기들과 함께 했던 1년을 나누는 시간, 또 하나의 소중한 진실과 마주할 수 있었다.

       


불완전하고 미숙해 부끄럽기만 하던 나 역시도 누군가를 위한 충실한 메신저 역할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거다. 일부러 꾸미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도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벅찬 깨달음의 순간이었다. 이제는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살고 싶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다르게’ 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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