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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난다 May 08. 2021

아이와 함께 누리는 세상이라는 새로운 '장르'

따로 할 수 없다면 함께 즐겨라!

그날. 집으로 돌아온 나는 서둘러 책장을 훑었다. 지난 여름 아이의 리듬에 따라 자고 먹는 시간들 속에서 간간히 주어지는 해방의 시간. 잠든 아이의 숨소리를 살피며 이리저리 서핑을 하던 중 발견한 카피. ‘세살박이 아이와 함께 떠난 첫 배낭여행지. 터키. 세상과 호흡을 맞춰가는 1.5인의 성장여행기.’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겠지>.


처음에 나는 아이를 이곳에 데려온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나는 아이가 오래전부터 이곳에 올 예정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의 첫 걸음마, 첫 번째 열감기, 처음 내지른 일성, 이 모든 것들은
또 다른 '오늘'을 위해 성실히 축조된 밑계단이었던 것이다.
아이의 보폭은 좁고 일정은 늘어졌지만
아이는 그렇게 걷지 않았으면 결코 보지 못했을 것들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오소희의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주겠지> 중에서

   

세 돌이래. 그러니까 앞으로 딱 3년만 더 버티면 된다는 말이지? 그럼 아이와 함께하는 하루가 이리 충만해질 수도 있다는 말이지? 3년? 그치만 아이를 안고 보내는 하루도 이리 긴데 천일이 그리 쉽게 흘러가 줄까? 게다가 아무래도 이 언니는 나랑 달라도 너무 달라. 영어를 모국어처럼 쓴다잖아. 원래 여행을 너무너무 좋아하던 사람이었다잖아. 아니 무엇보다도 이 사람 글 좀 봐. 이 글이 저절로 나왔겠니? 나랑은 차원이 다른 사람이야. 괜히 헛물켜지 말고 내가 가진 거라도 알뜰히 지키자. 그냥 맘편히 지내다 때 되면 일터로 나가 열심히 일이나 하자구. 하며 결국 끝까지 읽지 못하고 슬쩍 책장 속으로 밀어 넣어버린 책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같은 텍스트가 어찌 이리 달리 읽힐 수가 있을까. 넘어가는 책장만큼 설레임이 차올랐다. 이렇게도 할 수 있는 거구나. 원하는 마음이 주저하는 마음을 넘어서기만 한다면, 그리고 자신의 마음이 다다른 곳에 몸을 보낼 수 있는 용기를 갖고 있다면 어떤 순간에도 문은 나타나고 또 열리는구나. 완벽한 타이밍을 찾아내고야 말겠다는 욕심이 오히려 지금 이 순간을 불완전한 시간으로 만들고 있었구나. 완벽한 역할을 수행해 내겠다는 욕심이 오히려 충실한 역할행동을 방해하고 있었구나.


‘따로 할 수 없다면 함께 즐겨라.’ 이 얼마나 명쾌한 지침인가. 나는 왜 항상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선택게임만 고집했던 걸까.  


더 이상 아이들 때문에 ‘할 수 없다’고 말하지 말자. 대신 아이들 덕분에 ‘더 잘 할 수 있는’ 꿈을 꾸자 . 그런 게 어디 있냐고 묻지 말자. 없으면 만들면 될 것 아닌가? 사계절은 각기 그 계절 나름의 즐거움을 품고 있기 마련이다. 더 이상 지나간 계절을 그리워하느라 소중한 오늘을 낭비하지 말자. 이 고운 아이들이 그냥 내게 왔을 리 없지 않은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아이와 또 그만큼이나 자신을 기쁘게 하는 여행 사이의 아름다운 삼각관계를 구축해내는데 성공한 엄마 여행작가 오소희. 아이를 희생하지 않았기에 더 뿌듯한 여행이었을 것이고, 여행을 함께 할 수 있었기에 더 애뜻한 엄마와 아이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녀와 아이의 느린 보폭을 따라가며 즐기는 터키도, 또 그녀와 아이 사이의 사랑스런 줄다리기를 관전하는 재미도 이미 기대를 훌쩍 너머서는 것이었지만 무엇보다 내 마음을 흔든 것은 역시 작가의 라이프스타일 자체였다.


그녀는 자연인으로서의 '나'와 엄마라는 역할이 아름답게 조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자신의 삶으로 확인시켜주었던 것이다. 그녀가 만들어낸 세상이 아들과 함께하는 여행이었다면 나는 또 어떤 세상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아니 내가 아이들과 함께 만들어내고 싶은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새로운 고민과 함께 출산과 육아로 탈진해있던 내 눈에도 다시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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