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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난다 May 08. 2021

지독한 우울의 늪에서 만난 한 권의 책

‘살고 싶은 대로 살아보는 것 ’이라니. 대체 그게 어떤 것일까?

돌이켜보면 그 가을 나는 지독한 산후우울증을 앓고 있었던 것 같다. 물론 당시의 나는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내 자신이 인생 어디쯤인가에서 저지른 엄청난 실수의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라 여겼다. ‘도대체 거기가 어디였을까? 어디서부터 되돌려야 이 비극을 막을 수 있었던 걸까?’ 있는 힘을 다해 추적해보다가도 이내 ‘알아낸다고 한들 달라지는 게 뭐야. 이미 돌이킬 수도 없는 일들인 걸.’하며 의기소침해지기를 무한반복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이었다. 그날도 잠든 큰 아이를 들쳐 업고 나가는 남편을 따라 둘째를 안고 서둘러 집을 나서려던 참이었다. 그때 테이블 위에 놓여진 책 한권을 발견했다. <익숙한 것과의 결별>. 출산 휴가를 보내고 있을 무렵 어린 나이에 어찌 저런 생각을 하고 또 실천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하며 지독히 부러워하던 한 젊은 실업가의 블로그에서 발견하고 급하게 사들였으나 도저히 읽을 짬을 만들지 못해 몇 달째 책꽂이에 꽂아만 두던 책.


그 책이 어찌하여 테이블위에 놓여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어쩐지 그날만은 도저히 그 책을 두고 나갈 수가 없었다. 아이를 안은 팔 사이로 가까스로 책을 챙겨 집을 나왔다. 시댁에 아이들을 맡겨놓고 출근하는 차에 올라서야 겨우 숨을 돌리고 첫 장을 넘겼다.



살고 싶은 대로 한번 살아보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이 책으로 인생을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책을 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몰입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스스로에게 선물을 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내가 가지고 있는 내면의 자산을 쓸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행운이었다.

구본형의 <익숙한 것과의 결별> 중에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살고 싶은 대로 살아보는 것 ’이라니. 대체 그게 어떤 것일까?

이 책을 쓰기 시작한 이후 나는 자유롭게 살았다.
3,600번의 하루를 보냈고,
120개의 보름달을 바라보며 술잔을 들었고,
열다섯 개의 나라를 새로 구경했다.
1,000권의 책을 읽었고 열네 권의 책을 썼다.
30명의 제자를 만나게 되었고, 100명에 가까운 ‘꿈벗’을 사귀게 되었다.
그리고 1,000번의 강연을 통해 10만 명의 사람들과 만났다.
가을 하늘을 지나는 푸른 바람처럼 세상을 살았다.
나는 행복했다.
모두 이 책을 쓴 다음에 생긴 일이었다.
이 책은 내게 영험한 마스코트나 부적 같은 것이었다.
세상과 교통하는 다리였고 나를 비추는 거울이었다.

구본형의 <익숙한 것과의 결별> 중에서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부러워서 미칠 것만 같았다. 세상에는 이런 인생도 있구나. ‘살고 싶은 대로 한번 살아보는 것’ 그게 인생인 거구나.


두 아이의 아빠이자 한 여자의 남편인, 그러니까 나와 다름없는 무거운 생활인이었던 그가 해낼 수 있었다면 나에게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 않을까? ‘살고 싶은 삶 ’을 향해 날아오르기 위해 그가 자신의 현장에서 했던 뜨거운 모색과 실험을 벤치마킹하다보면 나도 그처럼 그렇게 날 수 있을 날이 오지 않을까? 모든 것을 다 버리고 훌훌 떠나라는 것도 아니고 하루의 8%. 2시간 정도라면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되는지 안 되는지는 일단 한번 해보고 판단해도 늦지 않은 것 아닐까? 그래도 되지 않을까?


영영 오지 않을 것 같던 설렘이 메말라 갈라진 가슴을 적셨다. 완전히 꺼져버린 줄 알았던 가슴 속 불씨가 나 아직 죽지 않았다고 생존신고를 해오는 느낌이기도 했다. 이대로 죽을 운명은 아니었나 보다. 나도 모르게 가슴을 쓸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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