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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난다 May 15. 2021

100% 실패?

욕망과 두려움 사이


깨달음을 얻은 이후로는 내내 평화롭고 행복하기만 한 나날들만 이어졌을까? 에이, 설마. 솔직히 고백하자면 다 그만두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직장으로 돌아가 그냥 적당히 참으면서 버텨보려고 시도해보기도 했다.


휴직기간이 조금씩 연장되어 4년을 꽉 채울 즈음 나는 분명히 직장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일과 가정사이를 오가며 소진되는 삶의 ‘대안’이라고 여겼던 이 세계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무렵이었다.


막상 본격적으로 현장에 들어서고 보니 엄마로서의 ‘성장’과 인간으로서의 ‘성장’이 하나를 추구하면 다른 하나를 포기해야하는 제로섬의 관계가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상생하는 관계라는 깨달음은 간절한 희망에서 비롯된 개인적인 신념에 불과해 보였다. 더군다나 두 영역 모두가 이제야 가능성의 씨앗 정도를 발견한 왕초보 수준이었던 상황이니 그 신념조차 휘청거리기가 일쑤였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새로운 길 위에 들어선 초심자로서 당연히 치러야 했을 통과의례였지만,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돌아갈 곳이 있다는 생각을 하자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재미있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거기엔 내 자리가 있었는데...지금이라도 얼른 돌아가자! 돌아갈 직장이 없다면야 할 수 없는 일이지만 멀쩡한 직장을 두고 굳이 사서 고생을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한참 중요한 시기 밖에서 보낸 시간이 너무나 아깝게 느껴졌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그 시간들 덕분에 아이들도 많이 컸고, 가정도 어느 정도 안정되었으니 여기서 더 욕심내지 말자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전처럼 ‘일’로 존재를 증명해 보이겠다는 욕심만 버린다면 아이를 기르기에 월급 밀릴 걱정 없고 정년마저 보장되는 여기만한 일터가 또 있을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들어가서 얼마간은 그럭저럭 재미있게 다녔다. 무엇보다 월급통장에 찍히는 숫자들이 새삼스럽게 흐뭇했다. 하지만 그 흐뭇함조차 느낄 여유를 잃어버리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스스로는 태어나서 가장 많은 성장을 했다고 믿고 있던 4년이었지만 조직에서 그 시간은 명백한 공백이었다. 노골적으로 ‘놀다 온’ 대가를 요구하는 조직의 처사가 억울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있는 힘을 다해 ‘당신들이 실수하고 있는 것’임을 증명해 보이는 것 뿐이었다.


남들보다 앞서가겠다는 욕심이 아니라 오직 살아남기 위해서 직장에 머무는 시간이 점점 길어졌다. 조직의 논리에 개인의 거취가 결정되는 '상식'속에서 내 삶의 구경꾼이 되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피로와 회의가 쌓이며 몸과 마음은 급속도로 상해갔다. 내 삶의 이유라고 믿고 있던 아이들과 눈 한번 맞출 기운을 낼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도무지 그만둘 용기가 나지 않았다.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진 상태로는 퇴직을 한다고 해도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이런 내가 아이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거라고는 어떻게든 일터에서 버텨서, 아니 죽더라도 직장에서 죽어서 조금이나마 경제적인 도움이 되어주는 거라고 믿을 정도였다.


‘다르게 살 수 있을 거라고, 다르게 살아보겠다고 삶의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게 살았는데 어쩌다 이 지경이 되어버린 걸까?’ 스스로 선택한 길을 따라 5년을 보낸 결과가 결국 여기라고 생각하니, 내 자신이 한심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내가 힘든 건 직장 탓이라고, 남편 탓이라고, 아니 이도 저도 아니라면 이 따위로 만들어 험한 세상에 대책없이 내던져 놓은 빌어멀을 놈의 운명 탓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던 시절과는 차원이 다른 심연이었다. 잠들지 못 하는 밤이 잦아졌고, 혹 잠이 든다고 해도 호러영화관에 갇혀버린 느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딸아이가 선물이라며 작은 노트를 만들어왔다. 노트 위에는 꽃모양의 동굴에 갇힌 슬픈 표정의 토끼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새벽같이 출근해 집에 들어오면 바로 이불 속으로 들어가 나올 줄 모르는 지친 엄마를 바라보는 아이의 마음이 느껴져 가슴이 미어졌다. 그날 정말 오랜만에 펜을 들었다. 그동안 몸에 차곡차곡 쌓아두었던 스스로에 대한 실망과 미움이 종이 위로 토사물처럼 쏟아져 내렸다. 그렇게 한참을 미친 듯이 쓰고 나자 간만에 숨이 쉬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바보. 어떻게 죽은 엄마가 살아있는 엄마보다 더 좋은 엄마일 수 있니? 욕심내지 말고 가능한 만큼만, 할 수 있는 만큼만 살아있는 엄마로 아이들과 함께 해 보면 안 되겠니?어차피 죽을 거라면서 더 잘하지 못할까봐 걱정하는 건 말이 안 되는 거니까’ 정신이 번쩍 들었다.


복직한 지 1년 4개월이 되어갈 무렵이었다. 그로부터 직장을 마음에서 완전히 지워내는데 채 두 달이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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