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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van greene Dec 12. 2023

깻잎논쟁과 주장


이제는 철 지난 다 식어버린 주제지만, 연인의 친구 깻잎을 떼주는 것에 대한 논쟁이 꽤나 첨예하게 대립했었다. 근데 돌이켜보면 그깟 깻잎 떼주는 게 뭐 대수라고 그렇게 화제가 됐는지 웃기다ㅎㅎ. 난 사실 지금까지 살면서, '야 너 근데 이 주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라는 질문을 사람들이 그렇게 기탄없이 주고받는 것을 처음 봤다. 왜 그토록 '깻잎 떼어주기'에 대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적극적으로 대화에 임했을까?


물론 재밌으니까. 어쨌든, 깻잎 한 장으로 자신의 연인에게 얼마나 헌신적인지, 남자와 여자 사이에 친구가 있다고 생각하는지를 엿볼 수 있으니까. 맞다


근데,


1. 지극히 개인적인 관찰이지만, 그 주제가 그렇게 점화되고 확산되었던 것은, '우리는 사실 주장을, 의견을, 입 밖으로 내뱉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적절히도, 깻잎 한 장은 내가 훼손되지 않은 범위에서 의견을 마음껏 개진할 수 있는, 명확히 정답이 없는 문제였기에, 사람들이 쉽게 참여할 수 있었다. 내가 깻잎을 떼준다고 주장해도, 파렴치한 카사노바 혹은 도덕적이지 않은 사람으로 매도되지 않는다. 설사, 깻잎을 떼주지 않는다고 주장하더라도, 내가 반인륜적인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며, 냉혈한이 되는 것도 아니다. 논거를 대며, 팩트 기반으로 피력하지 않아도 아무도 나를 부정하지 않는다. 그냥 '마음이 싫어'라고 이야기하는 것 자체로도 이미 존중받을 수 있다. 또 내 지식수준과도 관계없다. 심지어 내가 모쏠이든, 연애를 했든, 결혼을 하고 이혼을 했든, 깻잎을 떼주고 말고는 소신껏 이야기할 수 있다.


비약이 있을 수도 있지만, 나는 인간이 무언가를 주장함으로써 비로소 존재가치를 찾는다고 생각한다. 주장을 한다는 것은, 아직은 어설프고 그릇된 것일지라도 최소한 무언가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대외적으로 치켜드는 행위다.


그래서 난 양비론, 양시론처럼, 줏대 없이 둘 다 좋고, 둘 다 싫다는 걸 선호하지 않는다. 왜냐? 현실문제는 대개 둘 중 하나는 골라야 되거든


근데 애석한 것은 우리는 그렇게 자라오지 못했다. 남들 시선을 너무 신경 쓴다. 아.. 내가 이렇게 말하면 쟤가 날 ㅈ밥으로 보지 않을까? 그래서 입 닫고 있는다.


막상 그때를 돌이켜보면, 답을 알고 있어도 그냥 속으로 삭이고 남 눈치 보며 가만히 있었던 자신이 아쉬운지, 틀린 답이지만 당당하게 말했던 옆에 있던 친구가 아쉬울지.. 본인이 더 잘 알 것이다.


고로, 난, 깻잎논쟁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주장'에 대해 결핍되어있었는지 반증하는 해프닝이었다고 생각한다. 공연히 과몰입한 것이 아니라, 갈증이고 갈망이었다.


우리 사회가 건강해지려면, 비록 하찮고, 미완이더라도 그걸 자연스럽게 드러낼 줄 알아야 된다. 그 과정에서, 특정 주제에 대한 당신의 주장을 부정하는 사람들을 맞닥뜨리게 되고, 반복적으로 학습하다 보면, 결국 상대는 당신의 생각 '하나'에 동의하지 못하는 거이지, 당신 자체를 부정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니 타인이 당신과 다른 이야기를 한다고, 크게 열을 올리지도 말고 자존심을 세우지도 말자. 또 너무 인색해지지도 말자. 그럼, 우리는 자연스럽게 주장하게 되어있고, 비로소 사회 도처에 (정작 깻잎보다는 시급히 사람들의 관심이 필요한) 소외되어 있는 난제들에 조금 더 성숙하고, 적극적으로 임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 사회는 교육부와 같은 정부 부처 주관으로 분기에 한 번은, 깻잎 논쟁에 버금가는 주제를 이슈로 만들어서 사람들이 격정적으로 대화를 하게 만들고 서로 주장하게 만들어야 한다. 평생을 객관식으로만 풀다 보니까, 주관식, 논술에 대해 우리는 익숙하지 않다. 성인들에게도 A/S가 필요하다.


우리는 미완이고 앞으로도 완성되지 못할 것이다. 허무주의나 무용론에 빠지지 마라. 아무것도 못한다. 어차피 기존에 수천 년 동안 축적된 지식들, 석학들, 전문가들의 생각과 주장을 보며, 우리는 선택적으로 모방하며 생각이 형성되는 것이다. 그들 역시도 그렇게 형성되었었고.


그러니 주장하자. 당신의 의견이 짜치는지, 설득력이 있는지는 각 주제에서 논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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