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나의 시선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van greene Dec 23. 2023

위축


자신이 잘못하지 않은 일임에도 부지불식 간에 위축될 때가 있다. ‘위축’이라는 상태는 자의가 아니다. 외부적 요인으로부터 기인하는 반사적인 감정이다. 예컨대 상대방이 자신보다 압도적으로 경제적인 우위에 있다는 것을 느낄 때이다. 이것은 자본주의 체제를 공유하고 있는 국가에 사는 국민들의 보편적인 감정일 수도 있겠다.



또 다른 예는, 자신의 생각을 표현해야 하는 상황에 처할 때이다. 분명히 자신은 해당 주제에 대해 뚜렷한 주관을 갖고 있음에도, 막상 의견을 개진할 때는 주저하게 된다. 그리고 나는 의견을 표현할 때 드는 위축을 개인의 느낌에 국한시키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사회 문제로 상정하고 이야기해보려 한다. 비일비재하게 목도할 수 있기에 객관적인 지표를 제시할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했다.



개인적인 경험 두 가지를 들면,



첫 번째는 대학 내 국제학부에 관한 사례이다. 국제학부는 수십 년 간 외국에서 거주한 재외국민부터 시작해, 해외고나 외고 혹은 일반고 학생들로 구성된다. 흥미로운 것은 출신지에 따라, 즉 어떤 환경에서 교육을 받았는지에 따라 수업 참여 태도가 확연히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영어가 능통함에도 쉽사리 입을 열지 않는 사람들은 국내파들이다. (물론, 진리의 사바사는 있다)


두 번째는 내 경험인데,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없이 오로지 토론과 글쓰기로만 평가받는 수업이 있었다. 그런데 20명 의학생 중 한 학기 동안 토론에 임하는 학생은 5명이 채 되지 않는다. 다른 학생들이 과제로 제출한 글을 보았을 때, 대부분이 토론 주제에 대한 명확한 주장을 갖고 있었다.



의견을 표현하는 상황에서 느끼는 위축은,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대한민국의 교육 시스템이 가장 크게 작용할 것 같다. 한국 사회의 교육 시스템 속에서 성장한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할 때, 위축이 하나의 조건반사처럼 작동한다. 그냥 입 다물고 있는 것이 중간은 간다, 지금 손을 들고 이야기하는 것은 쓸데없이 나서는 것이다.. 등등



한국 사회의 고질적 문제를 지적하며 교육 개혁에 이바지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미 상당수의 사람들이 이를 인지하고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내가 지적하는 것은 기존 교육 시스템 속에 배출된 ‘위축된 개인’이다. 다양성에 대한 불관용은 비단 개인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사회 도처에서 생산성을 저하시키고 우리를 옥죈다.



나도 내 생각을 어떤 주제에 대해 가감 없이 1분간 말하는 영상을 올린다고 생각했을 때 두려움이 컸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가치관, 사용하는 단어, 뉘앙스, 표정 및 나이, 성별, 직업 등 모든 요소들이 녹아들어 가니까, 나와 다른 이해관계가 있거나, 내가 선택한 단어, 혹은 내가 바꿀 수 없는 특징 하나만으로 누군가가 나를 미워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주저했다.



근데 주장이라 함은, 본질적으로 발화되는 순간 누군가의 지지를 받을 수도 있지만, 필연적으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게 된다. 친근한 예로, 다이어트를 위해 몸에 좋지 않은 음식과 배달음식을 줄이자고 주장하면, 코로나로 그동안 고생하신 자영업자분들, 곱창, 대창 파는 사장님들 흠칫 놀라신다.



'진짜 죄송한데, 당신의 건강과 외모도 중요한데, 우리도 먹고살아야지 않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장을 하지 않게 되면, 정작 주장을 해야 되는 상황에서도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게 된다.' 할 수 있는데 안 하는 건 간지인데, 해야 되는데 못하면 짜친다.



위축되지 마라. 그리고 타인의 주장에 대해 너무 인색하게 굴지말자. 인간은 애초에 불완전하며 모순적이다. 뭔가 숭고하며 대단한 존재라는 생각 자체를 버려라.


...


사회학은 눈을 감고 코끼리를 만지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내가 지금 눈을 감고 더듬는 것이 코끼리의 앞다리인지, 배때기인지 모른다. 그래서 코뿔소를 만지고 코끼리라고 할 수도 있다. 완전 헛다리 짚는 것일 수도 있다. 그래도 '주장해야 된다고 주장'해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소셜미디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