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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van greene Oct 21. 2023

감정의 스팩트럼




1. 어떤 일(선행) -> 어떤 감정(후행)


감정은 대개 어떤 일이 선행하고 나서 후행한다.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기쁘고, 일이 뜻대로 되지 않으면 화나고, 누군가 죽으면 슬프고, 맛있는 걸 먹으면 즐겁듯, 어떤 일이 있으면 그제야 희로애락(喜怒哀樂)을 느낀다.


우리는 이 메커니즘을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기분이 안 좋으면 굳이 원인을 규명하기보다는, 각자만의 방식(=운동, 맛있는 거 먹기 등, 이하 “A”)으로 다른 좋은 감정을 불러일으켜 기존의 나쁜 감정을 꺼져;;하고 몰아낸다.


요지는, 자의든 타의든 어떤 일이 선행해야, 감정이 후행한다는 것이다. 혼자 침대에 누워, 즐거운 감정을 불러일으키거나, 슬픔을 불러일으킬 수 없다. 뭐든 해야, 비로소 감정이 수반된다. 이 선후관계를 인지하는 게 중요하다.


2.


살다 보면, 예상치 못한 안 좋은 일도 있지만, 기대하지 않은 좋은 일도 생긴다. 이는 unknown unknowns라는 단어처럼, 애초에 세상은 내가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미지수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ㅠㅠ내 맘대로 되는 게 없냐’라고 한탄하거나, ‘ㅅㅂ 왜 되는 게 하나도 없지’라고 무력감을 표출할 수도 있지만, 이성적이고 객관적으로 보면 세상은 원래 내 뜻대로 되는 게 없는 게 ‘맞다’.


그래서 운칠기삼이라는 단어도 몹시 과학적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세상이라는 실험실에서 유일하게 통제할 수 있는 변인은 오직 자기 자신이며, 결과는 수많은 변인들과 맞물려 돌아가서 도출되는 것이니, 당연히 기술보다 운의 비중이 클 수밖에 없다.


인생에서 어떤 일이든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시인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1번 제목처럼) 어떤 감정이든 후행할 수 있다는 결론으로 도달하게 된다.


3.


가끔은, 석연치 않은 감정, 약간의 우울함, 기분 나쁨을, ‘매번’ A로써 생성된 좋은 감정으로 물리치는 것이, 최선의 방식은 아닐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감정에도 다양성이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잡초가 있어야 장미가 화려할 수 있는 것처럼, 평일이 있어야 주말이 달달한 것처럼, ㅈ같은 감정들도 드문드문 있어줘야 기쁨/즐거움이 비로소 가치가 있다.


A로 만들어낸 좋은 감정들로, 좋지 않은 감정들을 재빨리 상쇄시키거나, 그 위를 덧칠해 버리는 것은, 어쩌면 임시방편으로만 점철된 삶일 수도 있다. 그래서 ‘저는 기분이 안 좋으면 바로 헬스장을 가요’라고 말하는 것이 나름의 현명한 대처를 하는 사람으로도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감정의 다양성을 오롯이 감내할 수 없는 사람으로도 느껴진다.


적당한 우울함과 외로움, 쓸쓸함 등 그 녀석들을 어느 정도 포용하고 감내할 때 비로소 기쁨/즐거움이 존재하며 가치가 있다. 그래서 난 불현듯 찾아오는 외로움이 좋다. 외로움 자체를 사랑하기보다는, 외로움이 있어야(감정의 다양성) 누군가를 만났을 때의 반가움이 더욱 증폭되기 때문이다.


어쩌면 행복에 대해 강박을 느끼는 것도, 감정의 다양성을 말살시키고 오롯이 좋은 감정만 갖겠다는 그릇된 믿음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은 아닌가 싶다. 좋지 않은 감정들은 모두 살균실에 넣어 없애야 된다는 착각은, 잡초를 다 뽑아버리고 정원에 장미만을 심어야겠다는 접근과 다르지 않다. 얼마나 괴팍한가.


4.

그래서 나는 모든 감정을 그대로 직시하고 느끼려고 한다. 그 과정에서 글쓰기는 필수적이다.


기쁨, 슬픔, 설렘, 분노, 연민, 결핍, 고독, 외로움, 공감 등등 굳이 각각의 감정에 우선순위를 매기거나, 우열을 논하지 않는다. 오히려 감정의 스팩트럼을 넓혀두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래서 난 가끔 친구들이랑 클럽 가서 술 먹고 노는 것만큼이나, 혼자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시간이 재밌다. 왜? 양자는 서로 다른 감정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감정의 다양성(스펙트럼)으로 직결된다.


심플하다. 어제는 집에서 혼자 놀았으니, 오늘 밤에는 나가 노는 것이다.


놀 사람?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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