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은 하나의 공간 예술이다
그곳은 돈이 없어도 배부른 곳이다. 심지어 돈이 없어도 구매와 소장에 대한 욕구가 끊임없이 일어나는 곳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책을 소유하고 싶은 마음은 책에 담긴 지식 때문만은 아니다.
책은 꽤나 아름다운 외형을 가지고 있다. 얇고 촉감 좋은 종이에 빼곡히 적힌 활자, 종이가 깔끔하게 엮인 하나의 입체감 있는 사각형, 그 고유의 아름다움을 기가 막히게 잘 표현한 형형색색의 표지.
이 모든 요소들은 책에 담긴 내용보다 책을 더 책답게 하는 요소들이다.
그런데 심지어 이러한 책들이 수천 권 수만 권 정열 되어 있는 공간을 생각해보라. 그것은 하나의 예술작품이고 공간 예술이다. 이 미적 결정체를 몇 장의 사진으로 담기 위해 한 중고서점으로 걸음을 옮겼다.
책이 모여 있으면 결이 된다. '결'의 사전적 의미를 보면 <조직의 굳고 무른 부분이 모여 일정하게 켜를 지으며 짜인 상태나 무늬>를 말한다고 되어있다. 그러므로 책은 결이 된다. 누군가의 굳은 삶과 인생이 함축되어 종이라는 일정한 켜에 담겨 한 권의 책이 완성된다. 그것은 글쓴이가 가진 삶의 무늬이고, 또 누군가의 무늬가 되기 위한 한 조각의 비스킷이다. 우리는 이 많은 누군가의 결들을 볼 수 있음에 얼마나 감사하고 있을까.
누군가 책의 용도에 대해 한마디로 정의하라 한다면 나는 서슴없이 '커뮤니케이션'이라고 말할 것이다. 우리가 배우고 살아가는 일련의 과정의 바탕에는 '소통'이라는 알갱이들이 내재되어 있다. 이 소통을 위해 우리는 부정확하지만 그나마 무언가를 전달할 수 있는 말과 글이라는 고리를 사용한다.
서점은 이 고리들이 부유하는 몽환의 숲이다.
한 독자가 서서 책을 읽고 있다. 왼손에 들려있는 책은 오른손에 의해 한 장씩 넘겨지고 있었다. 산재된 수많은 책 중 선택한 한권의 책은 그렇게 그와 인연이 되어간다. 책은 저자의 향기를 남기고, 독자는 그 향기에 심취한다. 우리는 그것을 인연이라 부른다.
살아가는 동안 인연은 매일 일어난다.
그것은 느낄 수 있는 육감을 지녀야 한다.
사람과의 인연도 있지만
눈에 보이는 모든 사물이 인연으로 엮여있다.
피천득 <인연>中
서점은 책만으로도 훌륭한 공간 예술이 된다. 하지만 용을 그린 화가의 붓끝처럼 결정적 한수가 필요하다.
그것은 바로 사람이다. 책의 결이 살아 있는 공간, 예술의 결실인 서점은 책을 읽는 이들이 모여 있을 때 거대한 작품이 된다. 그것은 생동감이 넘치면서도 정적이고, 죽어 있으면서도 살아 있다.
중학교 2~3학년쯤 되어 보이는 한 무리의 소녀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책을 읽고 있다. 아마 주말이었으니 단체로 더운 날씨를 피해 서점으로 온 듯했다. 그 모습은 그 어떤 모습보다 아름다웠고 늠름했고 기분 좋은 풍경이었다.
그 책이 만화책이든, 소설책이든, 판타지 소설이든 중요치 않다. 속도전에 불붙은 스마트 시대에 태어난 이들이 과외시간에, 지면에 적힌 활자를 천천히 읽는다는 것은 대단히 고무적인 일이다. 그들은 지식의 습득에 앞서 느림의 미학을 읽고 있다.
많은 자기개발서나 경제학 서적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아이들을 부자로 키우려면 어릴 때부터 은행을 데리고 다녀야 한다.'
그러하다. 무언가에 익숙해 지기 위해선 그 무엇을 할 수 있는 장소부터 익숙해져야 한다. 나는 아이들이 태어나면 어릴 때부터 서점을 데려갈 것이다. 그 아이들은 성장해가며 삶을 자율적으로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그 누구보다 빨리 터득할 것이다. 책은 삶의 해답을 주지는 못하지만 해답을 도출해낼 수 있는 많은 재료들을 던져준다.
책은 구매함으로써 그 설렘이 시작된다. 책의 구매는 어린 시절 놀이공원에 있는 어드벤처 놀이기구와 비슷하다. 자그마한 모형배를 타고 깊은 동굴을 들어가면 튀어나오는 해적들과 불을 뿜는 용에 오금이 저렸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한번 코스를 완주하면 다시 들어가고 싶어지는 그 마음은 아마도 새로운 세상에 대한 동경이었으리라. 책도 마찬가지이다. 책의 첫 장을 넘기면 머리말과 목차가 나오며 모험의 서막을 알린다. 우리는 기나긴 혹은 짧은 항해를 위해 일편엽주에 몸을 싣고 저자의 바닷속으로 뛰어든다. 그것은 신비롭고 흥미로운 일이다.
우리의 서점은 이러하다. 그곳은 하나의 아름다운 공간 예술이며, 항해의 시작을 알리는 뱃고동 소리와 같다.
삶에 여유를 잊고 있다면 오랜만에 서점을 한 번 들러보는 것은 어떨까?
더 많은 사진을 보시려면 아래로 ~
https://brunch.co.kr/@brunchqxk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