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 그것은 천천히 걷는 일
산책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휴식을 취하거나 건강을 위해 천천히 걷는 일>이라고 나와있다. 이 풀이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바로 '천천히 걷는'이다. '천천히 걷는'이 왜 그리 중요하냐고?
최근 스테디셀러들의 화두는 '느리게 사는 법'이다. 이 말을 들었을 때 생각했다.
아니, 사람들이 얼마나 급하게 살기에....
느리게 사는 법이 이렇게 각광받게 된 이유는 단 하나, 사람들이 너무 급하게 살기 때문이다. 그들이 조급하게 살지 않았다면 느리게 사는 법 따위를 책으로 펴내지는 않았으리라. 항상 책은 사회상을 반영하고 사회의 반대급부를 담아내기 때문이다. 그런데 참 우리나라라는 곳이 바쁘게 살지 않으면 나만 뒤쳐진다는 느낌을 받도록 잘 시스템화 되어 있다.
대체 왜 이렇게 되었을까? 무엇이 사람들을 이렇게 한숨 돌릴 틈도 없이 몰아넣었을까. 여기에 이유를 말하라고 한다면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삼일 밤낮을 떠들어도 끝나지 않을 대토론회가 될 것이다. 그만큼 이유는 산처럼 쌓여있다. 그리고 이런 이유들을 좔좔 언급한 이들도 토론회가 끝나면 부산하게 삶을 또 살아가야 한다.
그래서 '천천히 걷는'이 중요하다. 천천히 걷게 되면 내딛는 한 발 한발 정성을 다하게 된다. 정성스러운 한걸음이 모이면 마음이 가라앉는다. 마음이 가라앉고 고요해지면 비로소 우리는 자신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가지게 된다. 자신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가진다는 말은 스스로의 삶에 대해 돌이켜볼 수 있게 된다는 의미이다. 우리는 우리의 삶에 대해 얼마나 돌이켜보며 생각하는가.
햇살이 좋은 어느 날, 천천히 걷는 산책을 시행했다. 장소는 경기도 김포의 끝쪽에 있는 <문수산 자연휴양림>.
이곳은 산행까지는 미치지 못하지만 산책을 하기에 약간은 가파른, 하지만 충분히 용인될 수 있는 정도의 높이와 가파르기를 가지고 있는 곳이다.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천천히 걸었다. 최대한 천천히...
초입을 천천히 걷다 보니 따뜻한 햇살이 나무들을 가득 채운다. 기둥들은 하늘을 떠받치고 있고, 잎들은 천정을 만들어 아담하고도 소박한 집 한 채를 조성하고 있다. 그 사이로 끝없이 부드러운 흙길이 조성되어 있다. 그리고 그 길 위에 두 명이 멈춰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의례 주말 나들이로 산행을 하게 된다면 목적지인 정상을 위해 쉼 없이 걷곤 한다. 휴식을 취하러 왔는데 열심히 쉼 없이 걷다니. 이것 참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산행의 목적이 무엇인가에 따라 다를 것이다. 우리는 길 위에서 잠시 멈출 수 있다. 그것은 산행도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힘들 땐 쉬는 게 인지상정이다. 잠시 이야기를 하며 딴청을 피울 수도 있다. 그렇다고 결코 정상에 늦게 도착하는 것만은 아니다.
천천히 걷다 옆을 보니 숲이 우거져있다. 올라가기 쉽게 만들어 놓은 계단 옆의 숲은 보는 이가 많지 않다. 앞에 십여 명의 등산객 무리들이 지나갔지만 어느 누구 하나 길옆의 숲을 보지 않고 올라갔다. 땅만 보거나 혹은 앞만 보거나. 하지만 천천히 걸으면 숲이 보인다. 이것이 과연 우리나라의 숲인가 싶을 정도로 숲은 절경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러한 비밀스러운 풍경은 선택받은 자들에게만 보인다.
대략 초입에서 10여분 정도 올라가면 비바람을 맞아 빛이 바랜 낡은 평상이 있다. 그리고 그 평상을 둘러싸고 있는 나무숲이 있다. 평상을 손으로 만져보니 따스하다. 생명이 담긴 나무의 부드러움과 내리쬐는 햇살의 따스함이 담겨있다. 평상, 그것은 휴식이다. 굳이 앉아서 쉬지 않아도 느껴지는 따뜻함과 편안함. 우리는 살면서 이 따스함과 편안함을 얼마나 갈구하는가.
조용히 걷다 보면 일광욕을 하는 나무들을 볼 수 있다. 조금 더 자세히 보면 나뭇잎사귀의 미세한 무늬를 볼 수 있다.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들의 떨림을 볼 수 있고, 궁극으로 그들이 숨 쉬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포착하는 과정이며, 인간 역시도 자연의 한 부분이기 때문에 우리는 천천히 걸음으로써 자연과의 교감을 이뤄낼 수 있다.
20여분쯤 올라가다 보면 바위들이 있는 코스가 나온다. 이 코스가 대략 10여분쯤 계속되는데 꽤나 경사가 있어 자연스레 빨리 올라갈 수가 없다. 처음에는 힘을 내서 무리한다 하더라도, 조금만 지나면 금세 숨이 차오른다. 그래서 이곳은 본의 아니게 느리게 걷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이 바위 코스를 걷게 되면 내 숨소리와 심장소리가 들린다. 맥이 뛰는 소리가 들리며 폐와 간의 움직임을 느낄 수 있다.
우리가 장기의 아우성을 듣기 위해서는 몸이 아파야 한다. 몸에 고통이 느껴질 때 우리는 우리 내부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건강하게 나를 느낄 수 있다면 그 얼마나 좋은 일인가.
초입에서 대략 40여분 정도를 걸어 올라가면 이렇게 세상이 한눈에 보이는 탁 트인 풍경을 만끽할 수 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광경인가. 저 멀리 보이는 곳은 강화이다. 돌아서 가든 천천히 가든 빨리 가던지 결국 우리는 정상에 도달하게 되어있다. 그 정상은 과정에 대한 달콤한 결실이다. 하지만 이 달콤한 결실을 위해 기나긴 과정을 무시해 버린다면 우리는 어떤 의미를 삶에서 찾을 수 있을까.
정상에서 5분 여정도만 옆으로 걸어가면 이렇게 산성이 보이는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이 정상은 문수산성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이곳으로 내려갈 수도, 올라갈 수도 있다. 우리는 정상에 섰지만 다시 새로운 여정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타의적이든 자의적이든 우리의 삶은 끝이 없는 여정일 뿐이다.
이렇게 느린 걸음으로 산책을 하고, 정상에 올라가 세상을 바라보고, 세상의 공기와는 다른 바람을 맡게 되면 내면이 성장됨을 느낀다. 성장의 발로는 결국 느림에서 나오는 것이고 느림은 평소에 느끼지 못했던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든다. 우리 마음에 여유가 필요하다면 산행이 아닌 산책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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