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카메라는 필수품중 하나이다. 다들 스마트폰 한대씩은 가지고 있으니, 전 국민의 80% 이상은 카메라를 가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누구나 사진을 찍고 기록을 남길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다.
참 좋은 시대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카메라는 특정 작가들의 전유물이었다. 카메라 가격도 비쌌거니와 필름 시대에는 필름 값도 만만찮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 나오는 DSLR 그러니까 디지털 카메라들은 가격도 저렴하고, 이미지가 파일로 정리되니 필름값도 들지 않는다. 그래서 요즘엔 기록을 남기는 일이 매우 쉽다. 그런데 주변을 둘러보면 이 좋은 카메라들로 객관적, 사무적 기록만을 남기곤 한다. 주변에 직장인들이 많아서일까. 문서를 찍고, 자료를 찍어 기록을 남기고 웹하드로 일시에 전송한다. 예전에 메모지와 펜이 했던 역할을 이제는 카메라가 하고 있다.
사실 이러한 원스탑 시스템은 매우 편리한 시스템이다. 사용해보니 편리하다. 그런데 이렇게 디지털 기계들이 발달할 수록 본인에 대해서는 무언가 잘 남기지 않는 시대가 온듯하다. 그나마 10대나 20대 여성들은 상황이 낫다. 폰 카메라로 가장 많이 찍는 것이 본인의 셀카일것이니까. 그런데 문제는 30대에서 40대의 회사 다니는 남성들, 사진 찍히기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진빨이 안 받는 우리들이 문제인 것이다.
뭐 다른 쪽으로도 이해는 가는 부분이다. 사실 사는게 바쁘면 무언가를 낭만적으로 찍는다던지 남기는 것이 쉽지 않다. 눈 앞에 닥친 일이 산더미인데 주변것들을 찍거나 나를 담고 있다면, 주변에 매우 한가한 사람으로 보일 수 있을테니까. 나 역시도 일이 아니면 카메라를 잘 들지 못할때가 많다. 아마 마음의 여유가 없어져서 일까. 하지만 그러다가도 한번씩은 기록적 사진의 필요성에 대해 깊이 느낄때가 있다.
필자는 사진을 거의 10여 년을 찍어왔다. 10년의 시간동안 카메라를 쥐고 살았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다. 이 10년의 시간동안 카메라도 많이 교체를 했었고, 셔터도 꽤나 많이 눌렀다. 처음에는 단순히 카메라가 신기해서 눌러보다가, 어느 시기에는 셔터 하나 하나에 고심을 다해 눌러보기도 했다. 또 어느 시점에는 모든 것이 덧없어 카메라를 놓기도 했다. 그렇게 흘러간 세월이 10년이다.
누른 셔터수만큼 컴퓨터의 하드 디스크에도 수많은 추억들이 쌓여있다. 매년 매월 단위로 정리되어 있는 사진 폴더들은 이미 가지고 있는 하드 디스크들을 가득 채우고 있으니까 말이다. 어떨땐 예전에 찍은 사진을 들쳐볼까 싶기도 해, 모조리 지워버리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만약 그랬다면 이런 글을 쓰지 못했을것이다.
그런데 요즘 들어 사진을 들쳐보는 횟수가 늘어나곤 한다. 그리고 그때의 과거는 계속 내게 진행형이다.
비오는 날 낡은 LP를 들으며 창가에서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마시다 문득 들쳐보게 되는 사진.
밤이 깊은 시간 창문틈 사이로 새어나오는 가로등 불빛 사이로 들쳐보는 사진.
이러한 시간이 되면 과거의 일이 주마등 처럼 스치며 마음을 설레게 한다.
옛 사진 들을 들춰보면 지금의 내가 보인다
옛 사진들을 들춰보면 지금의 내가 보인다.
그때의 생각과 행동들, 그리고 시선들.
게다가 10년 전의 대학로 모습도 볼 수 있고, 8년 전의 인사동 모습도 볼 수 있다.
그때 그시절의 기억이 아련히 다가온다. 그때도 비가 왔었고, 그때도 누군가 나를 떠났었고, 그때도 나는 셔터를 누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도 비 오는 날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삶 이란 반복되면서도 항상 새롭다.
10여년간 사진을 찍으면서 가장 잘 찍었다고 생각하는 사진은 작품사진도 상업사진도 아니다.
상업사진이야 나보다 훨씬 잘 찍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작품사진은 각자의 사고에 따른 표현방식이니 잘찍고 못찍고의 유무가 없다.
내게 가장 소중했던 사진은 바로 소중한 기억을 남기기 위해 찍었던 사진들이다.
이 사진들은 단 한장 밖에 없는 사진, 세상에서 유일한 사진이다.
그 어떤 가치로도 치환될 수 없는 이 사진들.
누군가의 말마따나 나를 키운건 이 소중한 추억이 담긴 사진들이다.
지금부터라도 주변을 촬영해 보자.
나중에 다른 집으로 이사 가고 나면 돌이켜보고 싶은 추억이 될 것이다.
나중에 내 가족들이 모두 떠나고 나면 돌이켜보고 싶은 추억이 될 것이다.
싫으니 좋으니 해도 나중 퇴사 하고 나면 돌이켜보고 싶은 추억이 될것이다.
술집이 폐업하게 되면 그때 보낸 시간들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헤어지고 나면 돌이켜보고 싶은 혼자만의 추억이 될 것이고
같이 하게 되면 둘이 보고 싶은 추억이 될 것이다.
내가 혹여 세상을 떠난다면 주변 사람들이 그렇게 나를 추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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