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관전수필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관전 수필] 마지막인 것처럼 살아라

우리는 매번 우리가 살아온 날의 마지막을 달리고 있다



불꽃놀이에 늦어버리다


 매주 불꽃놀이를 하는 지역이 있다. 평소 잘 보기 힘든 불꽃놀이를 매주 한다니. 그 희한한 곳은 바로 경기도 김포이다. 김포 아라뱃길 쪽을 가면 매주 토 일요일을 격주로 저녁 8시 30분부터 대략 10여 분간 유람선에서 쏘는 불꽃놀이가 펼쳐진다.

 불꽃놀이. 참 본지 오래됐다. 여의도에서 거대한 불꽃놀이를 본다고 인파속에서 전쟁을 치른것이 벌써 5년전. 오늘은 꼭 불꽃놀이를 보러가고 싶었다.그리고 촬영하고 싶었다.


 지인에게 물어보니 8시 30분쯤 불꽃이 터진다고 했다. 8시 10분쯤 도착할 수 있도록 출발했다.

 8시 10분쯤 도착하니 이미 주차장은 빼곡했다. 발 디딜 틈이 아니고 타이어 디딜 틈 없이 차가 들어서 있었다. 서행을 하며 차 댈 곳을 두리번거리자 뒤에서 클랙슨이 버럭 울린다. 빨리 안 가고 거기서 왜 머뭇거리냐 바보야!


 그렇게 한 10여분을 팽이처럼 빙글빙글 돌았을까. 주차선은 없지만 통행에 불편을 주지 않을 곳을 겨우 찾아 차를 주차시켰다. 마음이 급했다. 생각보다 늦어졌다. 핸드폰을 꺼내보니 벌써 8시 20분. 역시 이렇게 마음이 급한 날은 뭘 해도 잘 안된다. 뒷 자석에서 카메라 장비들을 꺼내는데 줄이 엉켜서 잘 꺼내지지도 않는다. 이거야 원. 겨우 카메라 배낭의 끈을 풀고 삼각대를 들었을 때 바로 옆에서 ‘펑’하는 소리가 들린다. 젠장!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 오늘은 폭죽이 일찍 터졌다. 보통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자리선정부터 카메라 세팅까지 꽤나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그런데 10여분밖에 안 하는 불꽃놀이 쇼가 벌써 시작했으니, 거의 반은 놓친 격.



불꽃놀이.photobyshinsagncheon.2016



 등에 가방을 둘러메고 양손에 카메라와 삼각대를 들고 뒤뚱뒤뚱 빠른 걸음을 옮긴다. 이미 검은 하늘에서는 축제가 펼쳐지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마음은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겨우 당도해 카메라 세팅을 마쳤다. 조리개를 맞추고 릴리즈를 장착하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급한 마음에 셔터를 눌러보지만, 이미 중반을 넘어 피날레를 장식하는 불꽃들은 카메라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결국 컷을 건질 수 없었다. 조금만 일찍 준비해서 나왔더라면 이러지는 않았을 텐데. 그래도 펼쳐진 카메라가 아까워 바로 옆에 있는 애꿎은 현대아웃렛 야경만 촬영해본다. 하지만 담으려 할것을 못담았기에 이번 촬영은 실패였다.


hyundai premium outlet.photobyshinsangcheon.2016





우리는 희소성의 원칙에 따라 움직인다


 왜 그랬을까.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보통 한 시간 여전부터 도착해서 세팅을 하는 게 습관인데. 차를 타고 오면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답은 하나였다.


 바로 매주 하는 불꽃놀이 때문이다. 보통 불꽃놀이는 1년에 한 번정도 볼 수 있을뿐이다. 그래서 촬영하지 못하면 한해를 기다려야 한다. 그런데 불꽃놀이를 매주 한다고 하니 마음속으로 희소성이 떨어져 보였다.

 사람은 희소성의 법칙에 의해 움직인다. 얼마 전 한 명품회사가 한 해 동안 팔리지 않는 제품은 이월 하거나 세일 하지 않고 모조리 소각시켜버린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아마도 그 명품회사는 장인정신과 함께 희소성의 원칙에 대해서 아주 잘 이해하고 있었을것이다.


희소성의 원칙은 중요하다


 이렇듯 사람들은 흔하지 않은 것, 쉽게 가지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가치를 부여한다. 아마 다이아몬드가 발에 차이는 조약돌처럼 깔려 있었다면 우리는 다이아몬드를 그렇게 비싸게 사지 않을 것이다. 

 어찌 보면 참 사람이란 게 간사하다. 하지만 인간의 본성이 원래 그러한데, 꼭 그걸 가지고 간사하다 뭐다 이야기할 이유가 있을까. 차라리 이러한 인간의 본성을 스스로 잘 이용해 보면 좋을 것이다.





우리의 선택은 두 가지 최선을 다하거나 포기하거나


 흔하디 흔한 말.

 

항상 삶을 마지막인 것처럼 산다면?

 이 표현이 조금 과격하게 들린다면


 ‘10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축제에 참여해야 한다면?’


 ‘나이가 만료되어 더 이상 지원할 수 없는 마지막 면접 자리에 서야 한다면?’


 상황은 부드러워졌지만 전혀 여유롭다고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우리는 이 상황에서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행동할까? 뭐 아마 둘 중에 하나일것이다. 최선을 다하거나 포기하거나. 그런데 우리가 포기하는 경우는 끝이 정해져 있거나 끝이 보이는 경우일 것이다. 예를 들어 내일 죽음이 확정되어 있는데, 오늘 완성해야 하는 업무가 있다던가 하는 것처럼.


 뭐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는 이들은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내일 지구가 멸망하면 영화에서처럼 대 혼란에 빠질것이다. 사과나무 따위는 쳐다보지도 않을 이가 더 많을 테니까. 끝이 정해졌을 때 느끼는 인간의 절망과 포기 그리고 그에 따라 발현되는 동물적 본성, 그것은 끝이 정해진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인 정서가 아닐까. 


 그런데 우리가 사는 삶은 결코 끝이 정해져 있지 않다. 끝이 정해져 있다고 하더라도 그때가 언제인지 알 수 없으니 주관적 관점에서 봤을 때는 끝이 정해지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일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쉽게 포기하진 않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우리가 마지막을 가정하고 움직이면 더 나은 결과를 얻을 확률이 높아진다. 우리는 이미 여러 경험들을 통해서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단지 그렇게 하지 않을 뿐. 왜냐하면 그런 가정을 하게 되면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번씩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삶에서 꼭 나쁜것만은 아니다. 한 번씩 몰아서 일을 성취하고 또 어느 정도의 휴식기를 가지는 것이 대부분의 삶의 모습이 아닐까.




 휴식기가 어느 정도 있었다면, 한 번쯤 타이트하게 삶을 이끌어보는 것은 어떨까?

 반대로 너무 타이트했다면 휴식을 가지면 된다. 

 삶의 사이클은 수레바퀴처럼 돌고 돌 테니까.

 

 단지 중요한 것은 타이트한 시기에 얼마나 삶을 마지막인 것처럼 행하느냐가 문제일것이다.

 우리는 매번 우리가 살아온 날의 마지막을 달리고 있으니까 말이다. 






https://brunch.co.kr/@brunchqxk5


매거진의 이전글 [관전 수필] 우리가 사진을 꼭 찍어야 하는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