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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전수필] 계절이 바뀌면

이번 가을은 어떤 내음이 날까








 갑자기 가을이 왔다. 그것은 마치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들고 가다가 손에 튀어 반사적으로 떨어뜨릴 때처럼 너무나 순간적으로 왔다. 단지 어젯밤 소식 없이 축축한 여름 비가 와서 검은색 장우산을 들고 신발이 젖어가며 커피를 사 왔을 뿐인데 말이다. 밤의 기억을 꿈으로 채우고 눈을 떴을 때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 밀려와 있었다. 석양이 지는 해변가에 밀려오는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처럼 오는 듯 마는 듯 보이지도 않게 그렇게 말이다.      


 2016년 여름은 그렇게 서서히 종말을 고하고 있었다. 올해 여름은 왠지 작년보다 더 더운 것 같았다. 하지만 작년 여름은 재작년 여름보다 더 더웠다. 뉴스에서는 몇십 년 만에 찾아온 더위라는 말을 앞 숫자만 바꿔가며 매년 기사화시킨다. 만약 이 말이 사실이라면 지구는 점점 더워지다 망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지구 온난화가 아니고서도 우리가 매년 최고의 더위를 느끼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고속도로의 스쳐지나가는 가을.2016




 바로 우리 머릿속에는 ‘망각’이라는 붓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늘로 올라가는 함박눈이 흩날리는 절정의 시기를 칠하고, 얼음이 녹기 시작하는 봄을 덧칠하면 우리는 어느새 숨이 턱턱 막히는 여름의 고통을 잊게 된다. 심지어 망각의 묘약을 심하게 마신 이들은 이런 말을 내뱉곤 한다.     


 “어이 춥다. 빨리 여름이 왔으면 좋겠네.”     


 그렇게 또다시 망각의 계절이 왔다. 

 여름은 봄의 망각의 계절이다. 

 그리고 가을은 여름의 망각의 계절이다. 

 그렇게 인간은 계속 망각을 하며 삶을 살아낸다. 


 라디오에선 연신 가을 노래가 들려온다. 운전대 너머로 선팅이 된 유리창에 비치는 가을의 풍경은 너무나 아름답다. 실물보다 더욱 진하게 보이는 하늘과 라디오에서 반복해서 틀어주는 가을 노래가 가을적 쓸쓸함을 불러왔다.     


 가을이 되면 그 새침한 공기라던지, 하늘이라던지, 시원해 보이는 초목이라던지 사람의 기분을 묘하게 바꿔놓는 여러 요인들이 생겨난다. 그것은 아주 미세하고도 측정 불가능한 요소들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을 바꿔놓는다. 거기에다 우리는 가을에 있었던 추억을 생각한다.     


 사람은 계절의 절정기에 있을 때보다는 그것들이 바뀔 때를 더 추억한다. 

 그중에서도 본인의 삶에 있어 가장 찬란했던 시기의 추억들로. 

 여기서 ‘찬란했던’이라는 관점은 모두가 다를 수 있다. 필자가 생각하는 찬란함이란 ‘감정적 찬란함’이라 생각한다. 바람의 소리, 하늘의 푸르름, 비가 내리는 냄새 등등의 감정적 변화를 오롯이 느낄 수 있었던 시기. 그것은 10대였을 수도 있고 20대였을 수도 있다. 이러한 계절의 내음을 느끼는 데 있어서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감정적 비염에 걸리게 된다. 대신 젊은 시절의 그 명확했던 기억으로 우리는 세상을 맡는다.     



이번 가을은 어떤 내음이 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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