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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전수필]모든 것에 때가 있다는 것의 의미

우리는 너무 늦은 게 아니라 너무 빠른 것일 수도 있다






the moment.2016 강릉 photobyhyeruu




 여기서 말하는 때는 ‘공부도 때가 있다 그땔 놓치면 하고 싶어도 못한다.’ 따위의 통속적으로 이야기되는 구태의연한 시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이다. 우리에게 아직 때는 찾아오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철학책을 읽다     


 요즘 진중권의 <미학 오디세이>라는 책을 읽고 있다. 읽을만하다. 지금 이 책의 내용들이 개인적으로 필요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사진 작업을 할 때는 기본적으로 미술과 철학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기술을 익히는 것은 어느 정도의 시간과 노력을 하면 일정 수준까지는 올라간다. 하지만 과연 무엇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가 문제이다. 모든 예술은 표현하기 전 인고의 시간이 더 중요하다. 미술은 붓을 들기 전, 사진은 카메라를 들기 전, 노래는 음표를 그리기 전 대부분의 창작활동이 끝나기 때문일 것이다.      


 중국에 한 유명한 화가는 왕의 요청에 따라 그림 한 장을 그리기로 한다. 10년간 아무것도 하지 않던 그는 단 몇 초만에 일필휘지의 붓놀림으로 그림을 완성한다. 그는 10년간 그림을 구상했다. 이 이야기는 예술의 특성을 가장 잘 표현한 일화가 아닌가 한다. 이러한 예술적 관조 활동은 마치 삼국지의 제갈량이 조조 군으로부터 10만 개의 화살을 얻어낸 장면과도 흡사하다.   주유는 제갈량을 골탕 먹이려 10만 개의 화살을 10일 만에 만들 수 있냐고 제안한다. 하지만 제갈량은 화살 10만 개 정도는 3일 안에 만들 수 있다고 호언장담한다. 당시 기술로 화살 10만 개를 10일 안에 만드는 것은 불가능했다. 제갈량은 3일 동안 술만 마시며 태연자약하다. 주변 책사와 장수들은 온갖 걱정을 하지만 제갈량은 복지부동이었다. 이윽고 3일째 조조 군이 쳐들어오기 시작한다. 이 날은 유난히도 안개가 가득 피어올랐다. 제갈량은 청포로 장막을 친 선박 20척을 이끌고 조조 진영으로 접근한다. 갑작스런 적의 출현에 놀란 조조 군들은 막무가내로 화살을 쏘아대기 시작했고, 그 화살은 장막에 속속들이 꽂히기 시작했다. 잠깐의 실랑이 후 제갈량은 주유에게 선박 20척을 가져다주며 이야기한다. 아마 10만 개 이상의 화살이 꽂혀 있을 것입니다. 

 물론 이 이야기는 허구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예술활동은 이런 것이다. 제갈량은 그 3일간 얼마나 복합적이고도 전략적 그림을 머릿속으로 쓰고 지우고를 반복했을까. 그러고 보면 우리 삶에서 철학과 관조, 사고 활동이 작용하지 않는 일들은 거의 없다.     


 그런 연유로 그날도 업무 미팅 전 자투리 시간에 카페에서 상대를 기다리며 책을 읽고 있었다. 몇 분 후 당도한 지인이 이 책을 보며 자기도 대학 1학년 때 그 책을 읽었는데,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맞아요 저도 아마 스무 살 초반에 이 책을 읽었다면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 전혀 몰랐을 거예요. 우리 둘은 슬그머니 웃었다.          




무엇이든 빠르다고 좋은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은 때가 있다. 우리가 무언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전 지식과 경험이 토대가 되어야 한다. 아무리 똑똑하다고 한들 이러한 배경 없이 무언가를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무엇이든 빠르다고 좋은 것은 아니다. 앎도 시기와 인연이 있다. 살다 보면 나도 모르게 그 인연이 닿을 때가 있다. 이러한 순간은 아르키메데스가 목욕탕 속에서 유레카를 외치듯 갑작스레 찾아올지도 모른다. 혹은 갑자기 책을 다섯 번쯤 읽은 고시생이 어느 순간 책의 목차가 머릿속에 자연스레 정리되듯 축척의 역사를 통해 정립되기도 할 것이다. 방법은 다양하겠지만 그때 우리는 무언가를 터득할 수 있다. 그 전에는 아무리 책을 읽고 이야기를 듣더라도 머리로 이해할 뿐 체득하기 힘들다. 무언가를 배우고 습득하는 이유는 삶에 적용하기 위해서이다. 체득하지 못하고 머리로만 이해하면 삶에 적용하기 힘들다.           




그래서 우리는 평생 공부해야 한다     


 아마 사람들은 이러 걸 ‘연륜’이라고 부르는 듯하다. 나이가 들어 쓸데없는 아집이 생길 우려도 있지만,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경험치가 쌓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평생 공부해야 한다. 같은 책을 읽더라도 나이에 따라 그 이해의 폭과 관점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것은 단순히 책을 읽고 저자의 지식을 받아들이는 개념이 아니다. 예를 들어 30대의 저자가 쓴 글을 50대의 누군가가 읽는다면 독자는 그 텍스트를 50대의 관점으로 이해한다. 이러한 이해는 저자가 생각한 부분보다 훨씬 클 수도 있다. 즉 각자의 경험을 통해 지식이나 정보는 재해석되기 나름이다. 이러한 재해석은 각자의 삶에 여러 방면으로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우리는 그때를 기다려야 한다. 내가 충분히 이해할만한 그릇이 나타날 때를, 그리고 그 그릇을 이해할 수 있는 나의 시기를. 그것은 조급해한다고 되지도 않으며 서두른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다. 만약 여러분의 책장에 10년 전 읽었지만 이해하지 못하고 덮어버린 책이 있다면, 다시 한번 펼쳐보면 어떨까. 그 책이 지금 당신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금언을 담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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