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비움의 미학 갤러리

우리는 갤러리를 오픈하면서 더 많은 것들을 배웠다

by 감성수집가





모든 공간은 채움을 전제로 한다. 공간의 정체성은 무엇을 채우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테이블과 의자, 커피머신이 들어오면 커피 향이 가득한 카페가 되고, 책상과 컴퓨터, 서류철이 들어오면 바쁘게 돌아가는 사무실이 된다. 하지만 비움으로 그 의미를 가지는 공간도 있다. 여백이 수묵화의 정체성을 결정하듯, 갤러리는 비어있어야 비로소 그 정체성을 가진다



새로운 것을 잡기 위해선 손에 쥔 것을 버려야 한다. 손에 한 줌 모래를 쥐고 새로운 보석을 집을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가득 찬 공간에는 전시를 할 수 없다.



이것은 자연의 순리이다. 아름드리나무는 봄과 여름의 풍성함을 온몸으로 품지만 가을이 되면 스스로를 비운다. 그래서 낙엽은 비움의 미학이다. 스스로를 버릴 줄 아는 미덕. 그것은 다음 해의 풍성함과 화려함을 위한 준비과정이다. 이렇게 인간을 제외한 자연은 항상 비움에 익숙하다.





갤러리 인테리어는 비움에서 시작되었다. 휑한 공간을 무엇으로 채울까 생각해봤지만 무언가를 채우는 순간부터 그것은 갤러리라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최소한의 인테리어를 진행했다. 특히 작품을 걸었을 때 시선이 분산되거나 방해되지 않도록 주의했다.



컨셉은 느린 재즈를 들으며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편안함으로 잡았다. 그래서 빈티지한 공간을 만들어갔다. 들어왔을 때 따뜻하고 편안한 공간. 마음 한가득 짐을 가지고 왔지만 잠시나마 잊을 수 있는 곳. 예전에는 오래된 책방이나 인사동 거리. 선술집 등이 그러했지만 요즘엔 편안함이 묻어나는 공간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전체적으로 벽은 손으로 슥슥 칠한 핸디코트로 마감을 하고 노오란 조명들로 마무리를 했다. 가구들은 나무로 만들었다. 그랬더니 어찌나 낭만적인지. 거기에 slow jazz를 공간에 내려놓으니 로맨틱함이 빛을 발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었다. 바닥까지 모두 칠하고 완공을 앞두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이상하게 꿈자리가 뒤숭숭했다. 이상하다 생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갤러리로 와보니 40평 규모의 넓은 공간에 발목까지 물이 차 있었다. 비도 오지 않았고 물이 새어 나올 곳도 없었다. 집주인은 수도가 새어 나온 것이라고 일축했지만 수도요금도 별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집수정이 노후되어 그 기능을 멈추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집수정은 건물에서 사용한 모든 물이 외부로 빠져나가는 펌프였고, 지하이다 보니 갤러리 공간 한켠에 집수정이 있었다. 집수정이 멈추면 모든 물이 갤러리로 흘러 들어온다. 주인네는 집수정을 교체해주었다. 하지만 갤러리에 고인 물은 쓰던 물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깨끗했다. 그래서 이 사건은 유야무야 넘어가게 되었다. 그래서 이 사건은 아직까지도 미스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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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을 바구니로 퍼내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수작업으로 물을 퍼내고 나니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팠다. 하지만 더 문제는 곰팡이였다. 습기를 한번 먹은 벽은 지속적으로 얼룩이가 되었고, 물이 새어 나왔다.

당시 기분은 처참했다. 벽과 바닥을 모두 해놓았지만 물에 씻겨 내려간 부분과 곰팡이 때문에 다시 칠을 해야 했다. 돈은 돈대로 들어가고 오픈은 오픈대로 늦어졌다. 왜 이런 시련이 다가올까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라고 했던 누군가의 말을 떠올리며 일했다.



일단 습기를 모두 말려야 했다. 덕분에 무더운 7월의 갤러리는 덕지덕지 신문지들과, 때 아닌 석유난로의 풀가동으로 찜질방이 되어야만 했다.



그렇게 마음을 내려놓고 오픈을 했다. 아니 마음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얼마 후 이곳 일산에는 엄청난 장마가 왔다. 전국 곳곳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갤러리는 멀쩡했다. 나름 주변 배수시설이 좋았고, 당시 집수정을 교체했던 것이 주요했다. 만약 오픈을 한 후 그렇게 물이 찼다면 어땠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당시 사고가 공간이 준 선물이었음을. 이 공간을 끌고 나가기 위해 공간은 우리에게 경고를 했던 것이다. 덕분에 갤러리는 더 이상 천재지변에 피해를 입지 않게 되었다.



이 사건을 통해 나는 삶을 바라보는 약간의 지혜가 생겼다. 살면서 아무리 큰 사건이 찾아온다고 하더라도 그 사건은 이유를 가진다. 그것이 우리가 모르는 인과관계가 있더라도 말이다. 그러므로 안 좋은 일에 절망할 필요가 없다. 악재가 언제 호재로 바뀔지 모르기 때문이다. 인생사 새옹지마라 하지 않았던가. 중요한 것은 악재를 받아들이는 자세이다. 얼마나 마음을 비우고 의연하게 대처하느냐의 문제이다.

그래서 갤러리는 삶과 닮아있다. 그 안에 무엇을 채우느냐에 따라 항시 다른 색깔을 띠지만 고민거리로 가득 찬 삶은 새로움을 보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얼마나 잘 채워 넣느냐보다 얼마나 잘 비워내느냐를 고민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갤러리처럼.








<갤러리를 부탁해> 갤러리 오픈기 2화가 끝났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갤러리의 본격적인 모습들을 공개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꿈은 이루어집니다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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